나의 이야기

보리밭의 향수에서 일어난 제언 - 청보리밭이 아니라, 보리밭이라고 부르자 -

아브라함-la 2024. 5. 19. 14:16

- 등성이의 보리밭 어릴적 고향 산하는 이렇게 푸른 보리밭이었다 -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고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던 가곡 “보리밭”의 첫 소절입니다. 6,25 때 부산에서 쓰인 향토적 서정이 물신한 이 가곡이 70년대 이르서야 비로소 각광을 받은 것은 급격한 산업화가 잃어버린 고향의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내 마음의 고향이자 서정의 원천

내게도 보리밭은 마음의 고향입니다. 어릴 적 고향은 산허리의 밭은 물론 논까지, 보리와 밀, 호밀을 재배했기 때문에 초봄부터 산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비알밭과 논벌은 온통 푸른빛에 젖어있었습니다. 이 보리밭이 어린 제 서정을 한껏 자극했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고향집을 동네 사람들은 “날망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삼 사월 봄날, 그 날망집 마루의 기둥에 기대앉아 내다보면, 북쪽에서 재를 넘어온 봄바람이, 고갯마루의 보리밭에 푸른 물결을 일게 하면, 이 푸른 보리의 물결은 바람길을 따라서 아랫말에서 윗말로, 윗말에서 맞은편 사기장골까지 밀려갔습니다.

 

햇살이 하얗게 부서져 빛나는 푸른 보리밭에 이는 파도! 그것은 봄의 왈츠와 같기도 하고, 바람의 속도에 따라서 잔잔하기도 하며, 때론 성난 말들이 내달리듯 하다가, 사나운 비바람에는 절규하듯 하늘을 향해 몸을 떨었습니다, 이 정경에 흠뻑 취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었지요. 바람은 푸른 보리밭 교향악단의 지휘자 같았습니다.

 

그 시절 중학교 교과서의 한흑구의 수필 <보리>는 이런 제 느낌과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흑구의 수필 보리에서 처음으로 글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저를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게 자극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보리밭은 제 마음의 고향이자 제 서정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고창 학원농자의 보리밭 푸른 보리속의 유채꽃이 이채롭다 -

 

노동의 보람과 괴로움도 배우게 한 곳

보리밭은 제 정서만 키운 게 아니라. 노동의 보람과 괴로움도 배우게 한 곳입니다. 가을걷이를 끝낸 늦가을 날, 보리를 파종할 때, 쇠스랑으로 이랑을 긁어 보리를 덮어 나가다 돌아보면 반반해진 밭이 뿌듯한 보람을 느끼게 했습니다. 보리를 파종할 때 잎이 다 떨어진 대추나무 꼭대기에 몇 알 남은 대추가 그렇게 맛있었지요.

 

봄날 엄니와 보리밭을 맬 때 다리 아픔과 보리를 벨 때의 허리 아픔, 한 여름날 보리타작할 때 흐르는 땀과 등에 들어간 보리 꺼럭의 그 깔끄러운 고통, 저물어서야 타작마당을 정리하곤 마을 앞 냇가로 나가서 어두운 시냇물에 몸을 담그던 그 오싹한 청량감을 잊지 못합니다.

 

보리단을 절구통에 태질하시던 아버님은 벌써 천국에 계시고. 구순을 넘은 어머님은 이제 요양병원에 계십니다. 엄니와 보리밭 매던 그 소년도 이제 칠순이 넘었습니다. 엄니와 보리밭을 매며 어머니께 ”유정천리“ ”봄날은 간다“을 배우던 날이 그립습니다.

 

근래에 보리 재배 면적이 느는 추세이지만, 이 마음의 고향 보리밭이 산업화로 사라져서 드물게 되어버렸지요. 민둥산이 녹화되자 지천이던 진달래가 사라져서 지금은 진달래 관광을 가야 진달래꽃을 볼 수 있음 같이, 지천이던 보리밭도 관광지나 관광농원에서나 볼 수 있게 되어버렸습니다.

 

- 보리밭은 이삭이 나오기 전과 이삭이 막 나온 때가 가장 좋을 때이다 -

 

보리밭의 향수를 달래준 고창 학원농장

이런 제 보리밭의 향수를 달래 준 곳이 고창의 학원농장입니다. 이곳 학원 농장에서 십 대 시절 이후로 보지 못한 보리밭 풍경을 오롯이 본 것은 감격이었습니다. 해마다 사월과 오월이면, 이 보리밭의 향수가 나를 부르지만, 해마다 이곳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올해 사월은 이 보리밭의 향수가 저를 이겼습니다. 오래전부터 한 번 꼭 가보고 싶어 하던 선운사 동백꽃도 볼 겸, 학원농장의 보리밭을 찾았습니다. 농장 입구의 만개한 유채밭이 먼저 우리를 반겼습니다. 차를 대고 나서니 때를 맞추어 온 듯, 한 줄기 바람이 보리밭을 달리며 푸른 파도를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보리는 이제 막 패기 시작했습니다. 관광농원답게 보리밭 머리에 한줄기 유채꽃밭을 조성해서 샛노란 유채꽃이 보리밭의 푸르름을 더 짙게 하고 있었습니다. 선운사로 가려고 서둘러 보리밭에서 사진을 찍고 유채밭으로 갔습니다. 유채밭 머리에서 부는 바람과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 그림자에 따라서 그 빛을 달리하는 유채꽃밭을 잠시 감상하고는 서둘러 선운사로 동백꽃을 보러 갔지요.

 

                                                                  

 

국어사전에도 없는 청보리

그나저나 요새 사람들은 왜 보리밭을 "청보리밭"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없네요. "청보리"라는 보리 품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다음 어학 사전은 ”청보리“를 ”아직 여물지 않은 푸른 보리“라고 정의해 놓았습니다만, ”청보리 축제“ ”가파도 청보리는 제주 향토 품종으로 “라거나, 인터넷 백과사전의 ”청보리 재배 기술“등은 청보리를 보리 품종으로 여기게 합니다.

 

그러나 <금성판 국어 대 사전>의 ”청“ 항목과 거의 한 면을 차지한 보리 항목에도 역시 청보리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학원농장은 보리 출수기가 보리의 청년기에 해당하므로 청보리로 부르기로 했답니다. 이 신조어가 표준어가 되어서 이러다가 청보리를 보리 품종으로 알 것 같습니다. 안성팜랜드가 ”청호밀밭축제“라 하지 않고, ”호밀밭축제“로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겁니다.

 

- 학원농장 입구의 유채꽃밭 -

 

”청보리 재배 기술“ 난에도 정작 ”영양“이니 ”유연“이니 하는 여러 보리 품종이 있고, ”청보리 재배법“이 아니라, 건초용 보리 재배법, 또는 사일리지나 엔시리지용 보리 재배법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안성팜랜드의 ”호밀밭 축제“에서 보듯, 목장을 하는 이들은 기왕이면 키 높이로 자라는 호밀을 재배하지, 보리를 건초 작물로 재배하는 농가는 거의 없을 겁니다.  

 

한흑구도 수필 <보리>에서 ”보리다! - 푸른 보리다. 푸른 봄이다.“ 라고 했고, 시인 박화목도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이라“ 읊었습니다.. 이렇게 보리밭으로 충분치 않습니까? 안성팜랜드가 ”청 호밀밭 축제“라 하지 않고, ”안성 호밀밭 축제“라 하듯, 우리 그냥 "보리밭"이라고 합시다청보리라는 품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리가 익기 전의 보리밭을  청보리밭이라고 부르면 ,  익은 무렵의 보리밭은 황보리밭이라고 불러야 할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그리고 보리밭은 보리로 밭이랑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과 보리 이삭이 막 나온 즈음이 가장 좋을 때입니다. 보리밭의 향수가 부른다면 이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