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나의 이야기

추억은 감물 처럼

아브라함-la 2024. 11. 22. 10:44

- 늦 가을 산수유와 감, 추억은 시간이 갈수록 새로워지며 ,  오래되어도  생각할수록 그 빛이 선명해지는 감물 같다 -

 

창밖에 안개가 축축한 한 가을 아침입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안개가 촉촉한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아랫집 친구가 시끄럽게 부르는 소리에 깨어 나가보니, 그는 자기 집 울안의 감나무 위에 있었습니다. 마루에 나온 나를 보고 신이 난 녀석은 따기 어려운 곳에 있는 홍시를 따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감나무 가지를 밟고 가장자리로 나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제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딱”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감나무 가지가 부러지더니 녀석은 마치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날 듯, 감나무 가지를 밟은 채로 감나무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닙니까?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높은 가지에서 떨어졌음에도, 그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짱하게 학교에 온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지금도 감나무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에 함께 감나무 가지들을 때리며 떨어져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 시절 가을이면 아이들은 감나무에 매달려 살다시피 했습니다. 아침엔 눈 비비며 일어나 마당의 감나무 아래에 가면 홍시들이 떨어져 있습니다. 점심 먹으러 와서도 감나무에 올라가 홍시를 몇 개 따 먹어야 직성이 풀렸고, 하교하여 돌아오면 책 보따리 놓기 무섭게 감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옷에 감물 들지 않은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아침, 창밖에 촉촉한 안개를 보자 그날의 추억이 옷에 든 감물처럼 새롭습니다. 추억은 감물 같습니다. 입성에 처음 감이 묻을 땐 물이 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번 감이 묻으면 시간이 갈수록 감물이 드러나며. 빨래하면 감물이 선명해집니다. 이렇게 추억은 시간이 갈수록 새로워지며, 오래되어도 생각할수록 그 빛이 선명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웠던 추억은 평생을 기쁘게 하지만, 어떤 추억은 평생에 아픔으로 남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가는 세월이야 잡을 수는 없지만, 추억은 남고, 추억이 된 시간은 언제나 가슴에서 의미 있는 새로운 시간을 창출해 줍니다.

 

오늘은 그 감나무에서 떨어지던 친구댁이 두 번째 큰 수술을 받는 날입니다. 이번 수술로 더욱 강건해져서 오늘의 아픈 추억이 남은 인생을 함께  추억하는사고의 틀이 되어 여생의 행복을 함께 하는 부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문득 고향 집 감나무가 그리워집니다. 지금도 가을 내내 매달려 살던 감나무가 고향 집 마당에 그대로 서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