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욥이 악에서 떠난 이유
025,5,18, 주일
본문 : 욥28:1-28
말씀 : 라인권목사
참 싱그럽고 향기로운 주일이라서 야외로 나가서 예배하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부부사랑주일인데 우리 은혜로 교회 부부들이 오월처럼 아름답고 건강하며 향기로운 부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욥 28장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므로 은금을 찾듯 여호와를 찾으라는 잠언의 가르침과 괘를 같이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교사들이 본문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참된 지혜라는 메시지를 전하거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참 지혜는 인간의 이성이 아닌 계시라는 은총으로 되는 것임을 가르치는 말씀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해석들은 주인의 말에 따라서 장에는 갔다 왔는데 장은 보지 않고 온 것과 같은 꼴입니다. 즉 욥이 이 말로 친구들에게 하려는 말, 무엇을 주장하려고 했는지는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욥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를 논하는 취지
이것은 본문을 27장의 문맥에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7장에서 욥은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양심도 자기를 정죄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악인과 같이 재앙을 당하고 있지만, 나의 재앙은 악인이 받는 형벌로서의 재앙이 아니며, 불경건한 자들은 재앙을 당할 때에 영원한 심판의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경건한 나는 재앙을 당해도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에 소망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8장은 자기는 이렇게 재앙을 당해도 소망이 있는데 왜 악인들은 영원한 멸망이라는 심판을 피하지 못하는 차이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겁니다.
욥 자기와 사악자들이 영멸에 이르는 차이는
여기서 욥이 말하는 사악한 자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욥 자기와 같은 부자를 말합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외적으로 보면 하나님께 축복받은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자들이 경건한 자기 같은 사람과 다르게 마치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영원한 멸망이 그들의 운명이 되는 이유와 차이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그 차이가 바로 지혜에 있다는 겁니다. 성경에서 지혜는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실제적인 것입니다. 이 지혜는 하나님께만 있으므로 그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데 있다는 겁니다.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없어서 악인들은 영원한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욥이 이 말로 하려는 말, 이 말로 주장하려는 것이 무엇일까?
맘몬 숭배자와 다르게 하나님을 섬기는 고상하고 경건한 사람이다
첫째, 욥 자기는 사는 것과 행복을 부에 두고 그 물질을 믿고 의지하고 섬긴 것이 아나라, 하나님께 두고 살아왔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섭니다. 왜 자기와 달리 부자들이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영원한 멸망을 피하지 못하냐, 그들이 무지하고 지혜롭지 못해서냐? 오히려 부자들은 세상적으로는 가장 유식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부자들은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인지 보는 눈과 그것을 취득하는 능력, 즉 지식과 지혜와 추구성과 성실성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가장 가치로 여기는 보배가 무엇입니다. 그게 물질적 부입니다. 물질이 살게 하고 더 많은 부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지혜는 부를 이루게 돈 잘 버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가치의 대표적인 것이 은과 금입니다. 그래서 욥이 “은이 나는 곳과 금을 제련하는 곳”이라고 은금으로 시작합니다. 부자들은 이 은금을 얻는 능력인 지식과 지혜와 기술이 탁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1-11절까지 은금과 각종 보석들은 찾아내고 채굴하고, 제련하는 기술을 말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은금보화를 얻는 지혜는 경이롭습니다, 인류의 과학과 기술, 첨단 문명과 기술은 다 부를 위한 겁니다. 이렇게 부자들은 물질적 부를 얻는데 천재들인데 왜 영원한 멸망을 피하지 못하느냐? 그 지식 지혜는 돈과 부를 섬기게 하는 할 뿐입니다. 그 지식 지혜는 물질과 육신과 세상을 유익하게 할 뿐입니다. 그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니라, 부를 하나님처럼 믿고 의지하고 섬기기 때문에 영원한 심판의 멸망이 운명이 된 겁니다.
그러나 나 욥은 이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생명과 행복을 부에 두고 부를 섬긴 아니라, 하나님께 생명과 행복을 두고 살아왔다는 겁니다. 즉 내 신은 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나는 돈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사람이다. 나는 이 지혜 중의 지혜를 가진 지혜자라는 겁니다. 이걸 욥이 자기 의로 삼은 겁니다. 이 자기를 내세우고 주장하려고 한 겁니다. 이거 마치 자기는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기 때문에 배와 돈을 신으로 삼은 저 세리와 같지 않다는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는 교만인 겁니다. 이 자기, 이 의가 살아있는 한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자기, 이 자기 의를 부정하는 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최고의 지혜로 아는 고상한 사람이다
둘째, 그러면 사람이 사는 것과 행복을 하나님께 두는 참 지혜는 어디에 있고, 어디서 얻느냐? 이걸 말하는 것이12-19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여 금생과 내생을 행복하게 하는 길은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고, 사람이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다, 깊은 물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보화로도 지혜의 본질인 하나님을 아는 것과 경외하는 지혜를 얻을 수도 살 수도 없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은금을 최고의 가치로 알아서 모든 지식과 지혜와 노력을 다해 부를 이루었는데, 사람이 늙습니다. 이게 죽음을 인식하게 합니다. 이때 살게 한다고 믿었던 은금이 위로가 되지 못하고, 소망이 되지 못합니다. 은금이 영생과 영원한 행복의 길을 알려 주지 못합니다. 은금으로 그 지혜를 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재벌 회장이 종교란 무엇인가? 영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묻게 되고, 철학을 하고 구도를 하고 수행을 하고 종교를 하지만, 피조물 중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찾지 못해서 영원한 멸망을 피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로 있다는 겁니다. 이게 은금의 무력입니다. 이게 인간의 지식과 지혜와 무력입니다.
그러나 나 욥은 이런 어리석고 무력한 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나는 은금에서 찾을 수 없고, 은금으로 살 수 없는 믿음의 지혜가 있는 지혜자다, 내가 이 지혜가 있는 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고, 계시로 알게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은금을 최고의 지혜로 아는 천박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지혜로 아는 고상한 사람이다. 나는 철학자 중에서 가장 고상한 철학자이다. 이렇게 욥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자랑한 겁니다. 이 신지식에서 나 같은 사람이 누구냐는 거지요. 그래서 나는 경건하다는 겁니다. 이게 욥의 교만입니다. 욥이 지금 이 의를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나, 이렇게 고상하고 경건한 사람이야! 이 자기가 살아 있으면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얻지 못합니다. 이 자기를 십자가로 데려가 못 박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나는 모든 악에서 떠난 경건한 사람이다
셋째, 그래서 욥은 영원한 생명과 행복에 이르게 하는 참 지혜는 오직 하나님께 있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명철이라고 합니다. 이걸 말하는 것이20-28절입니다. 참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고,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모든 악에서 떠나는 것이라는 겁니다. 욥이 왜 이 말을 합니까? 자기의 무죄함을 증거 하기 위해섭니다. 자기는 모든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는 겁니다. 왜 모든 악에서 떠나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에서 떠남이 명철이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기 신앙이 자기를 모든 악에서 떠난 사람이 되게 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욥이 자기가 모든 악에서 떠난 경건한 사람이라고 무죄를 주장하고 자기의 경건의 이유를 밝힌 겁니다.
한 마디로 나는 경건하다는 겁니다. 욥이 지금 악에서 떠난 이 의를 친구들과 하나님 앞에서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경건해서 모든 악에서 떠난 사람이다. 이게 욥이 세 번째 내세운 자기 의입니다. 내 신앙에는 부족이 없어, 이게 첫째 의요, 이게 내 인생은 내 양심도 정죄하지 않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삶이야, 이렇게 무죄함을 둘째 의로 내세우고, 세 번째로 자기 경건이라는 의를 주장한 겁니다. 욥이 이렇게 자기를 경건한 품위 있는 성자로 자기를 인식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이 욥과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는 바울과 비교해 봅시다.(빌 3:7,8)바울은 자기를 가장 고상한 지식자로 알지만, 자기를 경건한 성자로 안 것이 아니라, 죄인 중에 괴수로 알아았습니다.(딤전 1:15) 이렇게 성자는 자기를 성인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욥은 자기는 하나님을 아는 참 지혜를 가져서 모든 악에서 떠난 경건한 성자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욥이 이렇게 자기의를 주장하고, 이 자기가 살아있는 겁니다. 이 자기가 살아 있는 한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을 황무지로 만드신 겁니다. 그러므로 은혜 중의 은혜는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내가 물질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고상하고 경건한 사람이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장 고상한 지식을 가진 고상하고 경건한 사람이요, 모든 죄에서 떠난 무죄하고 경건한 신자로 안다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천박하고, 죄 많고 불경건한 사람이 되기까지 십자가로 그 자기를 못 박아 죽입시다. 십자가 앞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 되게 합니다. 성자가 아니라, 죄인 중의 죄인으로 알게 하는 것이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로 겸손히 하나님 앞에 입술을 가리고 재 가운데서 회개하는 사람만, 그리스도가 의가 되시고 전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