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사의 광인
거라사의 군대 귀신들린 사람은 귀신 들린 사람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벌거벗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게 하는 것이 더러운 귀신들린 현상입니다. 그는 고랑과 쇠사슬로 매여도 끊고 깨뜨려버립니다. 양심, 윤리와 도덕의 사슬, 심지어 법의 줄로도 어쩌지 못하는 통제 불능의 상태가 귀신들림의 현상이라는 거지요.
거라사의 광인이 하는 일이란 밤낮으로 괴성을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자해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인생이란 자기 행복을 구하는 존재이지만 자기를 위하여 구하는 행복으로 도리어 자기와 자기 행복을 자해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아담이 그랬고. 아담의 자손들은 스스로 자신을 지옥에 멸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보통 귀신이 아니라 군대귀신 들린 현상입니다.
거라사의 광인은 이 군대 귀신 들린 사람만 아니라, 이 군대 귀신 들렸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도 귀신을 쫓아내 한 사람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리신 예수님을 자기들의 지방에서 떠나기를 간구한 사람들 또한 귀신 들린 거라사의 광인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돈 귀신이 들려서 사람보다 돈이 우선이었습니다. 거라사에 고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들을 고치고 자기를 구원 할 구세주를 제발 떠나라고 한 것은 귀신들림의 극치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는 이렇게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군대 귀신 들려 자해하고 자멸해 가고 있습니다. 신자가 영이 아니라 육신으로 살며, 새 사람이 아니라 옛 자기로 사는 것도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의 역사라는 것을 아십니까? 주님은 이 사탄을 멸하여 자해하는 멸망에서 자유하게 구원하십니다. 이 예수만이 귀신 들린 개인과 사회의 소망입니다. 믿음은 이 예수를 전하고 이 예수로 살아 자기를 영원한 행복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