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의 나일 강에서 자녀를 지키라!
출1:15-22
말씀 : 라인권목사
할렐루야!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지만 진도해역에 침몰한 세월 호 참사로 마냥 축복하고 기뻐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번 세월 호 참사가 우리에게 더욱 충격적인 것은 수학여행 중이던 고등학생들이 집단적으로 희생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세월 호에 승선한 학생수가 325명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 탈출하여 구조된 학생이 77명이라고 합니다. 오늘이 사고 19일째니 실종자들의 생존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결국 248명의 아이들이 피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사고 19일째 정부는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고 슬픔을 당한 가족도 이제 희망을 접고 희생을 거두고 있는 중입니다.
돌아보면 이 나라에는 다 키워서 장대 같은 아들과 딸들이 죽어나가는 참담한 일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4,19로 죽고, 5,16과 유신으로 5,18로 청년 학생들이 죽어나갔습니다. 이런 정변만 아니라 서해 페리호 침몰. 씨랜드 화재,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경주리조트 붕괴에 이어 이번 세월 호에서 248명의 아이들이 죽는 사고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출산을 장려하라고 하는데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이런 나라에서 마음 놓고 자녀를 기를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 놓고 학교와 군대에 자식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왜 이 나라에는 이런 어쩌구니 없는 참사가 계속되고 우리 자녀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런 나라에서 우리 자녀를 지키고 구하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오늘 봉독한 이 본문이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라고 믿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번성하자 요셉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새 왕 바로가 이스라엘의 번성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을 쇠약하게 하여 소멸 시키려고 합니다. 바로는 세 가지 방법을 썼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노동으로 고역하게 하여 약해지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했습니다. 두 번째는 은밀하게 산파들을 시켜서 히브리 여인들이 아들을 낳으면 죽이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남아를 죽이는 일을 하지 못해서 실패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바로는 공공연하게 학살령을 내렸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이 아들을 낳으면 낳는 대로 나일 강에 던졌다는 것이 오늘 말씀의 내용입니다.
이 일의 그 배후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바로를 이용해서 이스라엘의 남아를 다 죽이려고 했습니다. 언약 백성 히브리인들의 남아를 다 죽이면 메시야가 오는 혈통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달랴가 다윗의 씨를 다 죽이려고 했고 헤롯은 베들레헴의 영아를 죽여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바로는 사탄의 종이면서 사탄의 화신입니다. 사탄은 바로의 무엇을 통해서 히브리 남아들 나일 강에 던지게 만들었습니까? 즉 히브리 남아들 죽인 바로의 나일 강은 무엇입니까?
“히브리 남아를 죽이는 바로의 나일 강은”
첫째, 권력이라는 세상 영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히브리 남아들을 나일 강에 던져 죽이게 했습니다. 9,10절이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히브리인들이 수가 많아지고 강해지면 자기 왕국의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번성하고 강해지면 바로의 통치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권리를 주장하고 자유와 해방을 요구하고 대항 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의 권력과 영화에 위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히브리 남아을 죽였습니다. 따라서 히브리 남아들을 죽인 나일 강은 “바로의 권력이라는 나일 강”이었습니다. 역사는 대부분의 전쟁이나 정변이 특정인의 권력과 야망을 위한 것이었음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권력욕이라는 야망의 강이 인명을 재물로 삼고 있는 한 지금도 우리의 아들과 딸들은 그 희생재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 경제적 이득을 지키려고 히브리 남아들을 나일 강에 던져 죽였습니다.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이스라엘이 강해지면 노예로 있으려고 하겠습니까? 당연히 바로에 맞서서 자유와 해방을 요구하고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노예로 부려 먹기가 힘들고 만일 장정만 70만 명의 노예를 잃으면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실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을 약하게 해서 영원히 노예로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히브리 남아를 죽인 바로의 나일 강은 “맘몬니즘” “경제우선주의”의 물질주의의 강입니다. 물질주의 라는 바로의 나일 강이 우리 자녀를 삼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셋째, 사람의 목숨과 인격에 대한 외경을 상실해 사람을 수단과 도구로 삼는 비 인도주의 와 비인격성이 히브리 남아를 나일 강에 던져 죽이는 일을 망설이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바로나 애굽의 기득권자들에게 히브리인 들은 그저 자기들의 권력과 부를 유지 시키는 수단에 불과 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인은 단지 통치의 대상일 뿐이고 필요하던 언제든지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수단에 불과 했습니다. 이 비인도주의와 비인격성이 바로의 나일강입니다. 이 강이 히브리인들과 그 자녀를 잡아먹고 삼키는 강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이 땅에서 지금까지 우리 자녀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근본적인 이유이자 죽이는 사탄의 세력이라고 믿습니다. 왜 4,19, 5,16, 유신, 5.18로 수많은 우리 아들과 딸들이 죽었습니까? 다 한 개인과 특정 집단의 권력 때문이었습니다. 4,19 묘지와 광주 망월동 5,18묘지에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작년에 4,19묘지에 가보니 희생자 가운데는 초등학생과 중학생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권력이라는 나일 강이 죽인 사람들입니다. 이번 세월 호 사고 초기에 구조하지 못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해당 부처가 구조보다 자기들의 권한을 지키려고 하고 행사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권력이라는 카르텔이 만든 부패사슬이 그 복원력이 없는 배를 세월 호를 취항하게 하고 운항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월호를 침몰 시킨 것은 경제 우선주의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노령화 선박 연령규제를 완화해서 20년으로 하면서 2천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본다고 했습니다. 국민의 안전보다 경제가 우선이었습니다. 청해진 해운이 복원력이 형편없는 배를 운행한 것도 오직 돈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물질주의라는 나일 강이 세월 호 승객을 수장시킨 것입니다.
이것의 근본 뿌리는 이 정부와 사회의 국민과 국민의 생명과 인격을 수단으로 삼는 비인격성에 있습니다. 국민은 통치의 대상에 불과하고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 합니다. 지금도 간첩을 조작하고 있다는 것은 이 정부가 한 개인의 인격과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유린해온 자유당과 군사독재자들의 생리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 나라가 정권도 기업도 비인도적이며 비인격적이고 비인간적입니다. 이 바로의 나일 강이 지금도 우리 자녀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바로의 나일 강에서 어떻게 우리 자녀를 지켜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이 바로의 나일 강에서 자기 아들 모세를 건져낸 모세의 부모에게서 그 방법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바로의 나일 강에서 아들을 건져낸 모세의 부모”
첫째 우리 가정이 돈과 출세라는 바로의 나일 강이 되지 않게 하여 바로의 물질주의와 성공주의라는 나일 강에서 우리 자녀를 지켜야 합니다. 모세가 육신적으로 나일 강에서 건짐을 받아 살아났어도 그가 후에 애굽의 죄악 된 권세와 부와 향락에 빠졌다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의 죄악된 권세와 부와 낙을 거절했습니다.(히11:24-26) 그 어머니 요게벳이 젓먹이는 동안 히브리 신앙과 혼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유모같은 실모의 교육이 모세를 애굽의 죄악된 권세와 부와 향락의 강에서 건져낸 것입니다.
지금 우리 자녀들이 빠져 죽는 나일 강이 무엇입니까? 돈과 출세입니다. 돈 때문에 심지어 부모도 죽입니다. 출세와 성공을 위하여 부모도 버립니다. 권세와 부를 위하여 사람도 죽이는 권력자와 기업가가 왜 나옵니까? 가정이 인격이 아니라 돈과 성공이 전부가 되게 해서가 아닙니까? 부모들이 인격보다 돈과 성공을 우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생활 안해도 돈잘 벌고 출세하면 별 걱정 안합니다. 우리가 정부와 사회를 탓하기 전에 가정을 탓해야 합니다. 요게벳과 같이 애굽의 돈과 출세보다 신앙과 인격을 중시하는 부모가 되고 가정이 되게 하여 저 유혹의 물결이 흉흉한 돈과 성공과 출세의 바로의 나일 강에서 자녀를 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우리나라와 정부가 바로의 나일 강이 되지 않게 국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깨여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친 소리 하기 싫어 긍정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2010년에 아이슬랜드의 화산이 폭발하자 영국은 자국의 모든 공항을 폐쇄 했습니다. 그것은 전에 영국의 여객기가 불시착 했는데 그 이유가 화산재가 엔진을 멈추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아이슬랜드 화산이 폭발하자 모든 공항을 패쇄 했습니다. 그러자 유럽의 항공사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소송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래도 영국 정부는 끄떡 하지 않았습니다.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자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군함을 동원해서 귀국하는 국민을 실어왔습니다. 이런 나라라면 아이들 키울 만하지 않습니까? 이런 나라에서 우리 자녀가 자라게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대통령과 정부를 탓하고 욕하지만 왜 이런 정부가 권력을 잡았습니까? 도덕성이니 정의보다 경제만 잘하면 된다며 박정희 전두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런 물질 만능주의 성공주의가 불의한 정권을 만들고 그래서 온 나라가 부패의 카르텔이 되었기 때문에 세월 호가 침몰한 것이 아닙니까? 이런 나라에서 못 산다고 이민 가겠습니까? 영국과 같이 국민 한 생명을 위하여 공항을 패쇄하고 군함을 동원 하는 국민과 국민의 안전이 우선인 인격적인 나라는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이 만드는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를 보세요. 모세의 부모는 아들을 강물에 빠뜨려 죽이는 국가 권력에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히11:23은 모세의 부모는 임금의 명을 무서워 아니하고 임금의 명을 어겨 아이를 석달동안 숨겼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바로에게 굴복하지 않고 믿음으로 항거했습니다. 아들을 나일 강에 던지라는 바로의 명을 거부했습니다. 대항했습니다. 그때 많은 히브리 인들이 아들을 출산 했습니다. 그리고 임금이 무서워서 자기 아들을 나일 강이 던지고 있는 때였습니다. 만일 그때 모세의 부모들이 다른 집 부모들과 같이 바로의 명을 무서워서 굴복했다면 모세는 나일 강에 죽어 물고기나 악어 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인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거역했습니다. 거역해서 나일 강에서 모세를 살렸습니다.
우리가 마치 자기 아들을 나일 강에 던지는 부모들과 같이 이 불의한 권력에 복종하며 용인한다면 이 나라에는 제2, 제3의 세월 호 사건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나라가 마음 놓고 자녀를 기르고 맡길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꿈을 꾸고 믿음으로 투쟁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은 성금이나 거두고, 조문이나 할 때가 아니라 이 나라가 인격적인 나라가 되도록 행동할 때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인종차별이 있는 나라, 외적인 조건에 의해서 차별을 받는 나라에서 자기 자녀를 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틴 루터킹 목사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이 꿈을 위하여 믿음으로 헌신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미국은 흑인이 대통령입니다.
우리도 루터 킹목사와 같이 우리 자녀가 인격으로 대우 받고 정의롭고 안전한 나라에서 마음 놓고 자랄 수 있는 나라를 꿈꾸고 이런 나라에서 우리 자녀들이 살 수 있도록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시민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불의와 싸워서 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 나라를 의로운 복지국가로 만들어 우리 자녀들의 삶의 터전으로 물려서 마음 놓고 자녀를 생산하고 기를 수 있도록 해봅시다.
모세의 부모들은 믿음으로 이 두 가지했습니다. 믿음으로 교육하여 자녀를 돈과 향락의 나일 강에서 건졌습니다. 믿음으로 바로의 명을 거절하여 자식을 지켰고 그 애굽에서 민족을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게 했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믿음으로 했으면 우리도 믿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우리 가정이 바로의 나일 강이 되지 않게 합시다. 신앙과 인격이 우선인 가정에서 우리 자녀를 자라게 합시다. 그래서 모세와 같이 세상을 거절할 수 있는 지도자를 만듭시다. 우리 가정이 이런 자녀를 만들고 나라를 만드는 베이스켐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으로 불의한 권력 용인하지 않도록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시민사회의 성도가 됩시다. 믿음으로 깨여 있는 시민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조국을 우리 자녀들이 마음 놓고 자녀를 생산하고 기를 수 있는 인격적이고 정의롭고 안전한 나라가 되게 하고 이런 나라를 자손에게 삶의 터전으로 물려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은 정치 운동이나 사회적인 운동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으로 됩니다. 이 어두운 조국과 사회에 저 불의한 권력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합시다. 그리고 복음적인 나라가 되게 기독시민의 의무를 다 합시다. 그리하여 주께 이 나라가 자식 기를 만한 축복의 나라가 되게 하시기를 우리 다 같이 기도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