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딸아 기뻐할지어다!”
슥9:9-10
말씀 : 라인권목사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성탄의 주님을 맞이하고, 성탄의 기쁨을 전하기 위하여 우리 지역의 교회들도 성탄 장식을 하고 성탄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이 화려한 불빛을 보며 지난 한 주간 동안 성탄의 주를 맞이하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을 우리에 가장 요긴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지금 우리에 가장 필요한 것이 “기쁨”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왜냐하면 성탄 불을 밝히면서도 우리 안에 기쁨이 없다면 성탄이 없는 것과 같고, 우리 안에 기쁨이 없다면 주님이 없으신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성탄이 있다는 것이 기쁨이요, 재림이 있다는 것도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성탄 불빛은 화려하지만 기쁨은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형편입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도 같은 형편이었습니다. 스가랴는 바벨론에서 출생하여 고레스의 귀환 령을 따라서 스룹바벨등과 함께 제1차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제사장이자 선지자입니다. 이들이 처음 귀환하여 성전의 지대를 놓을 때에 환희와 감격과 희망에 넘쳤습니다. 그런데 성전건축은 착공만 해 놓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공작이 먹혀서 16년 동안 중단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안 되는 건 선지자에게는 괴로운 일입니다. 좌절의 세월이었습니다. 여기에 선지자를 더욱 낙심케 하고 좌절케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들의 세속화였습니다. 신정국을 이루어 다윗의 영광을 회복하기를 꿈꾸며 돌아왔건만 얼마가지 않아 율법에 무관심하여지고, 바벨론과 같은 세상의 번영에만 관심이 있고, 지도층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급급하니 얼마나 답답할 노릇입니까? 포로라는 징계에서 돌아온 백성이 이 꼴이니 이게 싹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다 생활고가 겹쳤습니다. 가진 자들이 고리 대금하니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삶의 우선순위-성전건축-를 바꾸어서 기근 닥쳐 생계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 삼중고로 해서, 어디에도 기쁨이 없고, 기뻐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도 백성도 맥이 풀렸습니다. 무기력해지고 좌절해 찌끼와 같이 침잠해져버렸습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기쁨이 있어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쁨은 동기입니다. 힘입니다.(느8:10) 그래서 학1:14절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전 역사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 기쁨이 있어야 성전을 재건해서 신정국의 기초를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의 백성을 에스겔은 마른 해골 떼라고 했습니다. 소망과 기쁨이 없는 백성은 살았으나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일으키기 위하여 기뻐하라! 고 하십니다. 그러면 기쁨이 없는 좌절의 시대에 기뻐하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 왕이 네게 임하시니” 네 왕이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왕이 임하시는 것이 좌절하고 낙심한 지도자와 백성들의 기쁨의 이유입니까?
첫째 왕의 오심을 기뻐하는 기쁨 여부가 시온의 딸들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왕이 오시는데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는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 왕이 왕 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싫어하는 것이든지, 아니면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온의 딸,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주님이 왕으로 오시는 것이 기쁠 것입니다. 그 왕을 보는 것은 소원이고 지상의 기쁨일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이 승리의 입성을 하실 때에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이 입성하실 때, 당국자들은 당황하고 시기하고 놀랐습니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따르는도다” 이렇게 낙심했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은 주님께 속하지 않고 마귀에게 속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것, 왕이 되시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무리들은 크게 기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왕으로 오시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은 주님께 속한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기쁨은 내가 어느 나라 백성이냐? 내가 누구 백성이냐의 시금석입니다. 예수님이 좋고 기쁨이면 예수께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왕 되심을 기뻐한다면 그는 천국에 속했습니다. 시온의 딸, 하나님 나라의 백성, 주님의 백성의 본성은 이렇게 주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쁨의 이유이고 권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뻐할 이유와 권리를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내 왕이라는 이유가 기뻐할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왕이라는 것이 기뻐할 권리인 줄로 믿습니다. 이 권리를 사용해서 좌절에서 일어서기를 축복합니다. 침잠된 영을 이 권리를 사용하여 기뻐하시므로 불사조와 같이 살아 나오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가 나의 왕 되시는 이 천국의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시온의 딸들은 소망으로 기쁨을 낳는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은 소망이 낳는 자식이요, 소망이 생산하는 축복의 열매입니다. 시온의 딸들은 사출기와 같이 소망에서 기쁨을 막 생산해내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이란 주님이 왕으로 오실 것과, 왕의오심으로 이루어질 구원과 그 결과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왜 지금 낙심한 지도자와 백성들에게 네 왕이 임하신다고 하십니까? 그 왕이 오시면 구원을 베푸십니다. 이 구원(노솨)이라는 말은 구원되다. 보호되다, 해방되다, 라는 의미입니다. 10절,14-17절이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메시야를 Savior, 구세주,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스라엘의 소망입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은 주님이 왕으로 오시는 겁니다. 그분이 왕으로 오시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이 소망이요 주님이 왕 되실 때의 일이 소망입니다. 이 주님과 이 나라를 바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가지게 하고 소망은 기쁨이라는 생명의 능력을 출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온의 딸들은 이 소망의 능력으로 기쁨을 출산하고, 생산해내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어렵고 어두워도 왕이 신 주님이 우리 왕으로 계십니다. 왕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두 번째 다시 오실 것입니다. 주님이 온전히 왕 되시는 날 우리의 소망은 이루어집니다. 믿음은 이 소망입니다. 불신앙은 자꾸 낙망케 하는 것이요, 믿음은 자꾸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소망의 사람이요 비전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는 임목사님 말씀하셨듯이 다사다난이 다사다복,낙,형,행,선,감,익,영입니다. 모든 것이 선, 은혜, 축복, 구원이 될 줄 믿습니다. 시온의 딸은 이 소망의 능력으로 막 기쁨을 출산하는 사람입니다. 이 능력으로 좌절에서도 기쁨을 생산합시다. 무기력에서 기쁨을 출산해 냅시다. 침잠한 영에서 이 능력으로 기쁨을 산출하여 아침 이슬처럼 영롱하게 살아나오는 사람입니다. 이게 예수님 왕이 되신 사람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으로 세상이 모르는 기쁨을 누리시고 이 기쁨을 세상에 흐르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로 기쁨은 사랑받은 시온의 딸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 예수를 왕으로 세우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하셨습니다.(시1:6) 이 하나님이 보내시고 세우신 왕이 임하셨습니다. 왕이신 예수가 우리가운데 계십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입니다.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은 지금 현재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증거이며, 예수의 구원이 현재하는 것은 지금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들을 주실 만큼 사랑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셨습니다. 이걸 가장 보여주는 말씀이 습3:17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여러분 하나님이 이렇게 좋아죽는 백성이 누군 줄 아십니까?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로 간 백성입니다. 자기 구원의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우상을 따라간 못난 백성입니다. 범죄 한 백성, 타락한 백성, 실패한 백성, 포로 될 백성입니다. 이 형편없는 백성을 사랑해서 친히 왕이 되어주시고 그렇게 좋아 죽어 하십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사랑을 받고 있어요. 지금 병들었어도, 지금 가난해졌어도, 지금 실패했어도, 안 되고 있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려울 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버리신다는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못 견디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나를 하나님 사랑해서 아들을 왕으로 주시고 그렇게 좋아하십니다. 시온의 딸은 이 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감동의 환희가 있습니다. 이 감동, 이 환희로 침잠에서 살아나오는 사람이 시온의 딸들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말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습3:15,17절을 보세요,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 결과 형벌도, 원수도 쫓아냅니다.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쫓겨난 자를 모으며 수욕을 받는 자를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합니다. 이게 하나님이 왕으로 현재적으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이 사랑 받는 몸이기 때문에 “시온의 딸아 노래할 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진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습3:14)
어려울 때면 우리가 왜 좌절하고 낙심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고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 이게 괴로운 겁니다. 이게 낙심케 합니다. 처량해집니다. 스바냐 때- 유다 요시아왕 때-에, 스가랴 때에 낙심한 지도자와 백성들은 하나님이 이 백성을 버리시나보다,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낙심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백성을 여전히 사랑해서 아들을 왕으로 보내십니다. 친히 왕이 되어 주셨습니다. 여전히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이 현재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환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 아무리 어렵고, 좌절이 몰려올 때 그때도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음을 믿고 기뻐합시다. 기뻐하는 것이 너희 힘이라고 했습니다. 기쁨은 동기입니다. 그러므로 기뻐하므로 낙심을 이깁시다. 좌절에서 기쁨으로 일어납시다. 그래서 영광의 나라를 보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쩌면 우리는 스가랴와 꼭 같은 실정입니다. 마치 성전건축이 좌절되고 있는 것같이 우리교회 하나님의 일이 좌절되고 있습니다. 부흥이 좌절을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참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이 상합니다. 믿음으로 살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헌신할 사람이 헌신하지 못하는 걸 보는 것은 괴롭고 탈진케 하는 일입니다. 우리 일꾼들이 경영하는 일들이 여의치 못해 경제적으로 힘이 듭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힘드시고 저도 힘듭니다. 적잖이 실망되고 의심의 구름이 일어납니다. 기쁨을 잃고 침잠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왕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왕이신 주님이 계십니다. 그는 우리 구원자이입니다. 그는 우리 기쁨이시며 소망이십니다. 우리가 어려워도 지금 현재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잘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낙심은 먼저 자신을 죽이고 곁에 있는 사람을 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기쁨은 먼저 자기를 일어나게 하고 곁에 있는 사람도 일어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기뻐합시다. 우리를 좌절케 하는 것이 있어도 기쁨을 생산해냅시다. 그래서 자신을 살리고 기쁨을 모르는 세상을 살립시다. 이 능력으로 일어나 부흥의 기초를 놓고,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보게 되어, 영원한 기쁨을 누리고 찬양하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왕이 오심은 기쁨입니다. 자녀가 대학 들어가도 자랑합니다. 손자보아도 자랑하는데 왕이 오셨습니다. 이 기쁨을 전합시다. 그래서 기쁨을 모르는 세상에 기쁨을 전하는 기쁨의 사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성탄의 주와 재림 왕을 맞을 가장 좋은 준비인줄로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