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가장 위대한 시간

아브라함-la 2015. 7. 26. 18:30

2015, 7, 26,주일강론       

본문 : 고전16:1-9, 

말씀 : 라인권목사


    운동경기를 보면 게임을 하는 시간과 잠간 쉬는 휴식시간이 있습니다. 경기를 하는 시간은 공식적인 시간이라면 연습하는 시간이나 휴식시간은 비공식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달리 말하면 경기하는 시간은 일하는 시간, 휴식시간은 노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근해서 근무하는 시간은 공식적인 시간이고, 쉬는 시간과 퇴근해서 집에 있는 시간, 휴일은 비공식적인 시간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공식적인 시간과 비공식적인 시간 중에서 어떤 시간이 더 중요하겠습니까? 두말없이 공식적인 시간인 근무시간이라고 하겠지요? 그 증거가 근무시간은 절대적으로 알아서 최선을 다하지만, 비공식적인 시간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시간은 공식적인 시간일까요? 비공식적인 시간일까요?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의 시간은 공식적인 시간이 아니라 비공식인 시간일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온 세상을 부요케 하는데 생애를 바친 사람입니다.(롬10:12)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울의 필생의 사업이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는 시간은 공식적인 시간일 것이고 복을 전하지 않고 쉬는 시간은 비공식적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지나가는 길에 잠간 보는 것이 아니라 한해 겨울동안을 고린도에서 쉬기를 원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소원대로 행20:3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석 달을 지냈습니다. 바울은 삼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교회를 구제할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고린도에 들러서 3차에 거친 선교여행에 지치고 상한 몸을 겨울 석 달 동안 휴양하며 고린도교인들과 함께 보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고린도의 3개월 동안은 휴양기간은 공식적인 시간이기보다는 비공식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생에서 가장 위대한 시간은

그러면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3차에 거쳐서 복음을 전파한 시간과 고린도에서 보낸 3개월 동안 쉬었던 비공식적인 시간 중에 어느 시간이 더 위대한 시간일까요? 물론 3차에 거쳐 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파한 시간도 기독교선교사에 가장 영광스럽고 위대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바울의 선교에 비견하는 선교적인 성취를 이룬 사람이 없는 전무후무한 위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시간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하는 공식적인 시간보다 고린도의 비공식적인 3개월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왜냐면 이 3개월이야 말로 사도바울이 소원하던 대로 복음으로 모든 사람을 부유케 할 수 있게 했고,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바울은 이 고린도의 비공식적인 시간을 이렇게 가장 위대한 시간으로 만들 수가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울은 이 고린도의 삼 개월의 쉬는 시간에 저 위대한 로마서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왜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했을까요? 이것을 롬15:22-33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선교의 최종목표는 서반아 즉 스페인이었습니다. 스페인은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 땅 끝으로 인식된 나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땅 끝까지 가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이루기 위하여 스페인에 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고린도에서 겨울을 보내며 쉬는 동안 이 스페인 전도를 계획하고 준비했습니다. 스페인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면 필수적으로 로마교회의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직 사도들에게 체계적으로 복음을 가르침을 받지 못한 로마교회에 복음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자신의 스페인 전도계획을 알려서 로마교회의 참여를 구하기 위하여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로마서는 바울의 스페인전도 준비의 일환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저 위대한 로마서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겨울을 보내는 여가시간에 기록된 것입니다. 이렇게 기록된 로마서가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로마서의 위대성

첫째, 로마서는 비공식적인 시간이 없이 항상 무시로 사람들을 부요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공식적인 시간은 마감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에서 기록한 이 로마서는 항상 공식적인 시간으로 있습니다. 바울이 낮에 복음을 전파하면 밤에는 전할 수 없지요. 밤에는 쉴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로마서는 비공식적인 시간이 없습니다. 오히려 로마서는 비공식적인 시간에 더 빛을 발하고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갔지만 로마서는 지금도 모든 사람을 부유케 하는 일을 영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의 3개월의 비공식적인 시간은 바울에 가장 위대한 시간입니다.


둘째로 로마서는 그야말로 모든 사람을 부요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부요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로마서가 사람을 부요케 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로마서는 독자가 누구이건 기독교의 진리를 가장 쉽게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된 성경입니다. 불신자도 읽기만 하면 복음에 나타난 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구원 받을 수 있고 변화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채워주어 부요한 인생이 되게 했습니다. 저 유명한 어거스틴이 이 로마서로 부유해져 사람들을 채워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의 고린도의 삼 개월은 그 생에서 가장 위대한 시간입니다.

 

셋째로 로마서는 세상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는 천국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구원론과 윤리관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서 구원을 믿음에 있게 한 성경입니다. 이것은 혁명이었습니다. 왜 유대인들이 바울을 그렇게 미워하고 죽이려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이방인들도 바울을 핍박했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유대인에게도 이방인에게도 기존의 가치와 윤리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공산주의보다 더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실제로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종교개혁은 한마디로 로마서의 산물입니다. 로마서가 이렇게 위대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지친 몸을 휴양하며 이 로마서를 기록할 때에 바울 자신도 이 로마서가 이렇게 위대한 역사를 이룰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사도 바울에게 당신의 생에서 가장 위대한 시간은 언제이었냐고 묻는 다면 바울은 고린도에게 겨울을 보내며 쉬었던 3개월이라고 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시간은 공식적인 시간보다는 비공식적인 시간입니다. 공식적인 시간은 비공식적인 시간에 의존하며, 비공식적인 기간의 열매에 불과 합니다. 운동선수들이 경기에서 잘하는 것은 연습, 훈련하는 비공식적인 시간에 달렸습니다. 유명한 연주자가 연습을 하루를 쉬면 자신이 알고 일주일을 쉬면 청중이 안다고 한 말이 이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시간 인식에 대한 혁명이 필요합니다. 공식적인 시간보다 비공식적인 시간이 더 귀하고 소중하고 위대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은 공식적인 시간에서 결정되기보다는 비공식적인 시간에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위대하려면 공식적인 시간보다 비공식적인 시간을 소중이 여기고 잘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공식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과 같이 비공식적인 시간을 살은 바울과 같이 살았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자리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만들고 발전하게 하고 위대하게 하는 것은 비공식적인 시간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있다고 믿습니다. 

 

믿음은 인생의 비공식적인 시간에 진실한 것

우리 인생은 원하든 원치 않든지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일할 수 없는 시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육신은 비공식적인 시간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사도바울이 왜 고린도에서 겨울을 지나며 쉬기를 원했을까요? 그간의 사역과 극심한 박해의 고난으로 바울의 몸도 마음도 상할 때로 상하고, 지칠 때로 지쳐서 휴양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도 일부로 쉬는 비공식적인 시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은 자신의 의사와 의지와 관계없이 비공식적인 시간을 만나는 때도 있습니다. 몹쓸 병을 얻어 공식적인 시간에서 비공식적인 시간으로 퇴진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업이 무너지거나 실직해서 일하고 싶어도 일 할 수 없는 때도 있습니다. 환난은 광야의 모세와 같이 남의 집 양이나 치고 있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뒤에 남아야 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남들은 나가는데 나는 나가지 못합니다. 이런 시간이 비공식적인 시간입니다. 이런 시간은 사실 없으면 좋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입니다. 시련의 시간들입니다.


우리 인생은 이런 비공식적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다 이 비공식적인 시간에 진실 되고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뒤에 남아 양을 치는 시간에 물매와 수금을 연습해서 왕궁으로 나갔습니다. 박종렬 목사님은 신학을 하고 목회 초창기에 병을 얻어 오래 동안을 병상에서 보냈습니다. 이 병상에서 그는 성경을 깊게 그리고 다독했습니다. 그 결과 성경에서 깊은 은혜를 받고 성경을 깊이 알아서 성경을 깊이 있게 전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도 이런 시간을 성경을 공부해서 이만큼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환난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절 글을 썼기 때문에 문필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비공식적인 시간에 진실한 것입니다. 믿음은 비공식적인 시간에 충실한 것입니다. 믿음은 비공식적인 시간을 귀하게 여겨 선용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비공식적인 시간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하는 비공식적인 시간이 내 생애의 가장 위대한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같이 인생의 비공식적인 어둠의 시간을 만났을 때에 그 비공식적인 시간에 진실하고 충실 합시다. 일할 수 없는 시간에는 내일을 계획하고 준비합시다. 여가 시간에는 조용히 기도하며 계획하고 준비합시다. 그리하여 일할 수 없는 비공식적인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시간이 되는 축복을 바울과 같이 누리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금은 조용히 기도하며 하반기를 준비할 때입니다. 휴가가 이런 위대한 시간이 되게 합시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과 같이 시간의 귀중성을 알아서 “세월을 아끼라”고 충고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시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