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배운 감사
2015년 추수감사절
본문 : 시30:1-12
말씀 : 라인권목사
금년은 참 비가 적은 해입니다. 지나는 길에 보면 소양호 상부 지역은 봄부터 지금까지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이렇게 비가 적은데도 비는 꼭 요긴할 때에 내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년은 7년만의 대풍작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며 우리가 참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행위에 따라서 우리를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대하심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금년도 우리가 부족하지만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우리 수고를 축복하셔서 거두게 하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잘 되고 형통하면 감사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우리가 감사하고자 할 때에, 감사나 헌신에 대하여 착각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내가 잘되고 성공하면 감사하므로 교회일도 하고 선교도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을 위하여 살겠으니 성공하게 복을 달라고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잘되고 성공하면 정말 감사하고 감사하므로 주의 일에 헌신 할 수가 있을까요? 잘되고 형통한데 왜 감사치 못하겠습니까? 성공하여 승승장구하는데 감사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요? 얼마든지 자유롭게 마음껏 감사하고 헌금도 봉사도 잘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잘되고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는 오히려 감사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오늘의 본문에서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다윗이 중한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다가 회복되어 감사를 드리는 노래입니다. 여러분! 중병이 들어 다 죽는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는데 감사하지 못할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나 당연히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 다윗의 감사는 당연한 감사가 아니라, 다윗이 성공하자 교만해져서 감사를 모르다가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서 배운 감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잘되고 형통할 때 오히려 교만해짐
6절을 봅시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이형통한 때가 어느 때인지는 표제를 통해서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성전 낙성가”라고 했는데 다윗은 성전을 건축해서 낙성식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때를 다윗이 예루살렘에 법궤를 모실 때나. 모리아 산에 성전 부지를 준비해 두었을 때라고 합니다. 다른 주석가들은 시온성, 즉 다윗성을 건축하고 왕궁을 건축하고 낙성할 때라고 합니다. 이때는 다윗이 한창 잘나가던 전성기입니다. 이때의 다윗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6절입니다.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마음이 이다지도 뿌듯하여라 절대로 영원토록 흔들림이 없어” 막 자부심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교만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 보듯 자기를 산같이 생각했습니다. 그 누구도 자기를 흔들자가 없다, 이렇게 교만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만해지니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교만은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있는 성공과 그 성공을 보장-사람, 재력, 성, 왕궁, 국력-한다고 여기는 것들을 감사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카일과 델리취는 “주시는 자에게 감사하는 대신 그는 선물만 좋아하고 마치 그것이 원래부터 자기 것 인양 생각했던 것이다”고 했습니다. 마치 철모르는 자녀가 아버지가 주는 선물만 좋아하고 그 선물을 본래부터 자기 것처럼 알아서 받는 것을 당연하게 알아 감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는 것만 좋아하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여 감사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형통의 날, 성공의 위험입니다. 잘 되면 자만해지고 교만해져서 은혜를 당연히 받을 것으로 알아서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치 못할 때에 따라오는 현상이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하고 자신과 자신에게 있는 것들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교만이 인구조사도 합니다. 그래서 결국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된 것입니다.
다윗에게 감사를 가르치시는 하나님
감사를 모르는 것은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것은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해서입니다. 교만은 은혜를 받을 수 없게 합니다. 그래서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것을 염려하셨습니다. 이 멸망에서 건지시려고 감사를 가르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감사를 가르치셨습니까? 2절을 봅시다. “고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갑자기 병이 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카일과 델리취도 병에서 고침을 받은 것으로 봅니다. 어느 정도 중병이었습니까? 3절에서 보듯 무덤에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원수들이 기뻐합니다.(1)병들에 죽게 된 것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원수들을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41편은 이때의 상황을 세밀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5절 악담합니다.6절 보러 와서는 위로하고 나가서는 수군거리고 비방하고 죽기를 바랍니다. 무슨 말입니까? 잘 나갈 때에 친구로 있던 사람들이 병들어 죽게 되지 발톱을 드러내어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세상인심입니다.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죽고 망하기를 기다리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다윗이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열열 하게 기도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은혜의 필요성을 느끼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안위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죽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치 못할 것을 염려하는 간구를 하게 됩니다. 다윗이 중병과 원수들로 인하여 은혜를 배우고, 겸손을 배고 감사를 배운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은 다윗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원수의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응답받게 합니다. 감사는 회복되게 합니다. 감사는 승리하게 합니다. 감사는 해결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 비싼 수업료를 내고서야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져서 비로소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배운 감사는 어떤 감사입니까?
감사는 모든 성공의 기반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성공하기 전에 감사하는 겸손을 배우지 못해서 성공했을 때 교만에 무너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감사가 성공의 기반이라는 것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감사할 수 있는 겸손이라는 기초가 없이 높아진 성공은 마치 기초가 부실한 건물과 같습니다. 도쿄의 제국호텔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는 미국의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것입니다. 그는 기초공사에만 2년을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공사비도 2배가 들어갔습니다. 이를 보는 사람들이 낭비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관동대지진이 나서 다른 건물이 다 무너졌을 때, 라이트가 지은 제국호텔은 건재하여 일본 건축계의 신화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할 수 있는 겸손이라는 기초가 약한 성공은 높을수록 교만이라는 지진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과 같이 성공의 탑을 올리기 전에 감사라는 기초공사를 든든히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하 줄로 믿습니다. 성공보다 어려운 공사가 감사입니다. 성공보다 어려운 공사가 감사할 수 있는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성공보다 감사가 어려워도 감사하는 겸손의 덕성에 더 많은 비용을 드려서 감사를 배우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게 주님을 닮는 길이자, 성공을 성공되게 하는 은혜위에 은혜입니다. 성공의 집을 짓기 전에 이 감사하는 겸손의 기초를 튼튼히 하여 성공의 탑이 높아질수록 더욱 겸허히 감사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감사는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숙성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기도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한 것입니다. 이렇게 겸손히 기도하자 하나님이 그를 만나주시고 응답하여 고쳐주십니다. 이 은혜를 받은 다윗은 비로소 영원한 감사의 삶을 다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환난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게 기도를 가르치는 교재입니다. 이 기도로 은혜를 회복하고 은혜를 입을 때 진정한 감사가 있습니다. 이렇게 진정한 감사, 깊은 감사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가 감사입니다. 그 증거가 감사가 없을 때는 기도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은혜를 알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은혜를 깨닫고 깊은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감사는 기도에서 나온 감사요, 기도하는 사람만이 깊은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는 기도를 배우셔서 응답을 받으셔서 진짜 은혜를 감사하는 실제적이고 깊은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감사는 내일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 같은 사람도 형통한 날에 교만해서 감사를 잃어서 감사를 배워야 했다는 것은 충격적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은 성공하면 교만해진다는 증거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를 섬기게 하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에 다윗같이 훈련된 사람도 틈만 있으면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성공의 날에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공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려울 때에 감사해야 하고 힘들 때에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을 감사하야 내일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감사로 겸손이라는 덕성을 길러야만 성공의 날, 형통의 날에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현재를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의미입니다. 아직 우리가 약하고 바닥에 있을 때 거기서 감사를 배우고 그것을 감사하여 감사의 덕성을 길러갑시다. 성공했을 때 교만의 지진에 흔들리지 않게 감사라는 기초를 튼튼히 쌓아 갑시다. 이것이 오늘 드릴 감사입니다. 없으면 없는 것에서 감사 하고, 있으면 있는 대로 감사합시다. 가난하면 가난함을, 부하면 부함을 감사합시다. 건강하면 건강을 감사하고. 아프면 아픔을 감사합시다. 이것이 지금 하나님이 받고 싶은 감사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닮는 구원이요. 참된 성공인 줄로 믿습니다. 감사는 금생과 내생을 감사하게 하는 은혜위에 은혜인줄 믿습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