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건축하는 성화의 길(2)
20-21절이 자신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건축하는 성화의 길이라면, 22-23절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건축하는 성화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타인은 내게 있어서 구령과 봉사의 대상이자 나 자신을 건축하는 성화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유다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렇게 자신을 건축해나가라고 합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타인에게도 구원이 되고 내게도 구원이 되게 하려면 “긍휼”의 정신이 인간관계의 기반이 되게 하라 십니다. “의심하는 자”는 사도적 교회의 신앙에 의심하고 논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일 겁니다. 유다는 이들을 타도하려는 정신이 아니라 긍휼이 여기라고 합니다. 긍휼이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아들을 주시는 하나님의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나를 대하신 것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 긍휼의 태도로 악에 빠진 사람을 못 본체 하지 말고 지옥 불에서 꺼내는 것 같이 건져내야 합니다. 내게 불편하고 부대끼게 하는 그 사람이, 불신자이든, 교회 안의 신앙이 바르지 못한 이든, 심지어 사도적 교회와 신앙에서 벗어난 사람이든 우선 구령의 대상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 때에 비로소 그를 전도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고, 목회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자타의 구원을 이루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더럽게 한 것이 옷이라면 옷이라도 미워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나 자신이 죄에 물들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는 것이 자신은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고 상대로 하여금 회개와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타인을 자타의 구원의 대상으로 안다면, 노엽거나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악에 빠진 내 곁의 사람이 귀찮거나, 부담스럽거나 또는 무슨 해를 당할까 하여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건져내려고 하고, 주님께로 나가게 할 것입니다. 이런 정신과 태도와 섬김이 내게 주님을 닮는 구원수입을 보게 하고 상대는 회개와 구원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이 정신 이 태도를 가진다면 지상교회는 작은 천국이 되지 않겠습니까? 교인에게 데었다, 상처를 받았다, 이런 이들이 적지 않지요? 이것은 본질적으로 구원도, 교회도 천국도 바로 알지 못한 결과입니다. 교회 안의 지체는 섬겨서 구원을 이룰 대상입니다. 교회는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 가르치고 권하여 세워주는 곳입니다. 천국은 자기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종이 되게 하는 사랑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 사람의 천국의 삶입니다.
세상은 타인을 내 행복을 위한 도구로 알지만 천국은 나를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종으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충격이며 혁명입니다. 나를 통해서 타인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영광이 나타나나게 되고, 나 자신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이루어지는 것이 참된 신비요 경이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타인의 의미입니다. 내게 관계된 타인에게서 이 구원이라는 의미를 놓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지금 현재를 행복하게 할뿐 아니라 영원한 세계를 행복하게 한다는 이 엄연한 이치를 오늘 살아내시기를 힘써야 하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