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경이와 영광
유다서는 성도들에 대한 축복과 장엄한 송영을 마칩니다. 이 유다의 축복은 삼위하나님의 이름으로“은혜”를 축복하는 사도들의 축복보다는 구약의 은혜와 보호와 평강을 축복하는 제사장의 축복을 생각나게 합니다. 무엇보다 이 축복에는 목회자로서 성도들에 대한 유다의 염원이 배어 있습니다.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그 영광 앞에 흠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즉 유다는 자기를 건축하는 성화의 길을 가는 경건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보호로 거칠 것, 즉 막히지 않고,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죄 없는 완전자로 하나님의 영광 앞에 기쁨으로 서는 것이 유다의 염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도의 경이와 영광이 있습니다. 성화의 도정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보호가 있어야만 걸려 넘어지지 않을 연약한 존재이며, 마치 공사 중에 입주한 건물과 같이 문제가 많고, 불편하고,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이 건축하여 가는 집입니다. 장차는 흠도 티도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설 영광의 장래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 영화로운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권세가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성도는 경이의 대상이요, 축복의 대상입니다. 하늘의 영화로운 천사들에게도 어떻게 사람이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존영의 대상이 되는지 경이롭고,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 다윗은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에게 있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이 성도들을 이 놀라운 최상의 축복으로 축복해마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지금 현재도 이 은혜와 영광이 임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성도인 자신과 교회의 지체들을 존귀하게 알고 축복하기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영광의 소망을 바라보고 서로를 축복으로 세워 가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흠 있는 사람에게 들어오게 하는 신비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영광, 사역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현재 이 존귀에 처해 있어도 지금은 공사 중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소망 중에 참고 견디며, 용납하고. 축복합시다. 그리고 이 공사 중인 성도를 완전하게 완공해 가시는 하나님은 찬양과 경배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완전함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우리를 지어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존귀한 성도들은 유다와 같이 장엄한 송영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