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고통을 살아내는 기도
12-18절은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하나님께 토로하는 기도입니다. 바산의 힘센 소로 비유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 사두개인, 바리새인들과 헤롯과 빌라도가 하나가 되고 친구가 되어 주님을 대적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상에서 하나님께 끊어져 주님께 쏟아질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과 지옥의 고통은 주님의 마음을 밀납 같이 녹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의 고통과 공포의 가공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주님의 수족이 못 박힌 고통은 뼈가 어그러지고, 모든 뼈의 숫자를 셀 수 있게 하는 아픔이었습니다. 주님께 십자가의 쇠못보다 다윗에게서 보듯 함께 떡을 먹던 자들이 발꿈치를 드는 배신이 더 주님의 뼈아픈 십자가의 고통이었을 겁니다. 압살롬의 반역이 다윗의 뼈를 아프게 한 것 같이 제자들의 배신이 주님의 뼈마디 마디를 아프게 했을 겁니다. 출혈로 인한 타는 갈증이 혀가 입천장에 붙고, 벗은 부끄러운 몸으로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습니다.
이 참혹함을 하나님도 참마 보시지 못하여 잠시 고개를 돌리셨고, 하늘의 해도 얼굴을 가리는 때에 주님이 이 십자가의 고통을 어떻게 참으시고, 삭이시고, 이기고 살아내셨는지를 보이는 말씀이 19-21절의 기도입니다. 이 주님의 십자가의 기도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소망적입니다. 하나님은 버렸으나 주님은 가까이 하십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도움으로 믿고 기도하십니다.
생명을 원수에게서 구하시기를 간구하십니다.(20) 저는 이것이 아버지께 영혼을 부탁하신 기도로 이해합니다. 주님은 죄와 사망과 사탄에게서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셨습니다. 이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부활을 구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치욕의 고통을 이 기도로 받으시고, 참으시고, 삭이시고, 이기시고 살아내시고, 거기서 부활과 구주로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당할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고 살아내는 방도가 되게 하신 줄 믿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까닭이 없는 억울한 고통입니다. 우리가 단지 주님을 따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심지어 힘센 소, 공권력을 상대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의로운 고통입니다. 양심과 신앙을 따르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합니다.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배신하는 뼈아픈 배신의 시간이 인생의 날일 때가 있습니다. 이 고통을 허허벌판에서 소나기를 만난 것 같이 오롯이 당해야 하는 것이 외면의 시간의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믿음은 이 십자가의 고통을 어떻게 받고 삭이고 살아내게 하는 것입니까? 십자가의 고통에 믿음의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믿음은 주님을 따라서 십자가의 고통의 시간에 기도로 십자가의 고통의 시간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 중에 주님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기도가 고통을 녹여내고 내 속에 진주를 만들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 중에서도 주님처럼 하나님을 내 힘과 도움으로 믿는 기도가 고통에 약한 나를 견디게 하고, 이기게 하고 살아내게 하여 사명을 감당하게 할 것입니다. 사망의 고통 중에서도 부활의 소망과 능력을 바라보는 기도가 진토에서 영광으로 나가게 하며, 부활의 권능을 입혀 십자가의 고통에서 죽지 않고 불사조와 같이 일어나게 할 줄로 믿습니다.
기도야 말로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고 살아내게 하는 하나님의 약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기도로 당신의 자녀들이 십자가의 고통에서 불사조와 같이 살아나오고, 구원을 이루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은 십자가의 고통의 시간에 기도하는 것이요, 기도로 십자가의 고통을 구원으로 만들며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고 살아내는 주님의 십자가의 기도를 배우도록 갈보리로 나갑시다. 십자가 밑으로 갑시다. 거기서 고난당하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 십자가의 사랑에 부은바 되어서 십자가의 고통이 내가 마실 잔이 될 때에 “고난의 잔을 날 위해 다 마셨나이다. 나 항상 나의 십자가 감당케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십자가의 고통을 살아내며 부활의 영광으로 살아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