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 봄은 어떻게 피어나는가?
봄처녀 제 오시네!
2016년 봄을 중계합니다.
봄꽃 찬란한 봄은 어떻게 와서
추위에 지친 우리네 앞에서
확짝 피어나는지
그 험난하고 가열찬 봄의 진군을
그 치열하고도 조용하고 질서정연한
장엄한 생명의 장정을
폰카에 담아 보려 합니다.
봄! 봄이 확짝 피기까지를,
작년 쌍계사 들목 화계천변의 벚꽃입니다.
교회 어른들을 모시고 갔는데
때늦어 입구의 꽃은 거의 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위쪽의 벚꽃은 한창이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간간히 비가 내려 불편하기는 했지만
산허리에 내려오는 비안개와
푸른 녹차밭과 벚꽃빛이 어울어져
봄이 녹아 흐르는 진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찬란한 금년 봄은
어떻게 태동하고 있을까요?
4일 후면 절기상 입춘입니다.
아직 동장군의 위세가 등등하지만
그래도 가지에 비취는 햇살은
곱고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아직 엄동에 봄의 시작을 둔
선인들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소망은 고통에서 잉태하고
자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설지나고 정월 대보름도 지났습니다.
이때 쯤 볏 좋은 날 숲을 보면
숲이 씻은듯 말끔해지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숲이 말끔해지는 것은
나무들이 물을 올리기 시작하여
나무의 빛이 연해지고
나무가지에서 말랐던 잎들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볏좋은 날 남향의 낙엽덮인 산기슭에
나무들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말끔한 숲을 보면 '아! 봄이로구나'
이렇게 저는 처음 봄을 느낍니다.
2월도 중순
얼음이 풀린 호수에 눈보라가 몰아칩니다.
금년 봄이 피기까지
몇번의 눈바람을 더 맞아야 할까요?
그래도 호수의 철새들은 여유롭기만 합니다.
봄은 와야하지만
봄을 기다리는 이의 마음은
저렇게 조급하지 않고
여유로운 것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봄은 서두른다고
오는 것은 아닐터이니까요.
드디어 올것이 왔습니다.
2월 27일 폭설에 가까운 눈이 강습했습니다.
모든 것이 찬눈 속에 묻혔지만
눈꽃 속에서는 가지는 고요하게
봄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 잔인한 춘설은 시련이 아니라
오는 봄을 축복하는 포근한 서설일 겁니다.
눈쌓인 저 골짜기에는
지금 다 녹지 않은 얼음장 밑으로
봄이 흐르고 있을 겁니다.
경칩입니다.
내린 눈 녹자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습니다.
전날 오후부터 저녁까지
여름 소나기 방불하게 내린 비로
이제 언 대지는 완전히 해동했습니다.
비를 잔뜩 머금은 가지들 마다
방울 방울 이슬처럼 영롱하게
봄이 맺혔습니다.
아! 지금쯤 산골 시내에는
버들 강아지가
뽀얗게 살이 오르고 있을 겁니다.
삼월 첫 화요일
한동안 찾지 않던 산에 올랐습니다.
양지쪽 골짜기에는
벌써 봄의 선각자 생강나무가
노랑 꽃눈을 맺고 있습니다.
생강나무 꽃이 피면
매화, 산수유, 할미꽃이
서둘러 봄을 피울 것입니다.
이제 그 누구도 봄을 부정 할 순 없습니다.
저기 아슴하게 동장군이
봄의 진군에 꼬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얘는 애기똥풀입니다.
벌써 애기똥풀이 낙엽이불을 제치고
슬며시 얼굴을 내밀고 있네요.
마치 '여기는 내 영토요!'
이렇게 외치는것 같습니다.
애기똥풀이 그 노랑꽃을 피우면
찬란한 신록의 계절이지만
우린 찬란한 봄을 여읠 준비를 해야합니다.
구상나무 잎은 여전히 바늘 같습니다.
그래도 가지 끝에는 금년 한 마디를 키울
눈을 맺고 봄을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 바늘 같은 잎이
아기 손 같이 부르러워지면
눈부신 오월이지만
먼저 봄이 피어나야 합니다.
드디어 창꽃이라 부르던
진달래도 제법 꽃눈이 부풀어
찬란한 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진달래야말로 이땅을 살아온 이들의
애환이 담긴 고향의 꽃이자 민족의 꽃이지요.
춘궁기가 있던 그 시절은 진달래는
어디나 지천이었지만
진달래 영토는 정남향보다는
북향의 음지쪽입니다.
나무도감을 낸 한 식물학자가
양지쪽 산위 메마른 곳이라고 함은
실상을 잘 모른 얘기입니다.
산골짜기의 습기가 많은 아래 쪽은
철쭉이 차지한 철쭉의 영토였고,
산등성이 위쪽 사면이나
산정의 평평한 지역은
온통 꽃장달이 진달래 밭이었습니다.
봄날 그 북쪽 사면을
뒤덥고 피어난 붉은 진달래는
숨이 막힐 만큼 장관이었습니다.
진달래 꽃 따러 떠들석하게
산등성이를 돌아든 아이들이
그 장관에 꽃따는 것을 잊고
침묵에 빠져 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은 숲이 우거져
멀리 진달래 명소를 찾아야
진달래를 볼 수 있는
아쉬운 봄 풍경이 되어버렸습니다만,
삼월 둘째 토요일
공원의 산수유 가지에
봄이 노랗게 맺혔습니다.
아직도 이른 아침 공기는 시리지만
산수유는 몽우리를 부풀리며
제 시절의 도래를 알리고 있습니다.
산수유에서 봄이 터지면
산에서 들에서 마을에서
여기저기에 마구 봄이 피어날 것입니다.
3월 15일
산성의 벚나무 가지에도
봄이 실하게 트고 있습니다.
저 벚이 꽃구름을 피우면
봄도 절정입니다.
그리고 봄은 봄인가 하면
어느덧 여름으로 가지요.
우리네 인생이 그런것 같습니다.
긴긴 봄날의 해 같던 유년의 기다림도,
벚꽃 처럼 부풀던 청년의 청운과 고뇌
그 치열했던 장년은 어디가고
어느덧 물들어가는 나무 같은
사람만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더욱 애틋하고
엄숙하며 진지하게
자신의 삶의 봄을 가꾸어 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쥐똥나무에 파란 잎눈이 뾰쭉하니 나왔습니다.
열매가 꼭 쥐똥 같아서 붙은 이름인데
얘도 봄의 선각자입니다.
목류중에 제일 먼저 봄이 피는 게
이 쥐똥나무가 아닌가 합니다.
3월 17일
아내와 함께 찾은 놀이공원의
목련이 붓처럼 부풀었습니다.
마치 먹물에 흠뻑 적셔 잘 다듬은 붓이
꺼꾸로 하늘을 향하여
다닥다닥 열린것 같습니다.
목련은 저 붓으로
하늘에 무엇을 쓰고 싶을까요?
창조주에 대한 경외를
아니면 봄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를 쓰려고
붓을 가다듬었을까요?
놀이공원의 튤립은
이제 고개를 들고 나오는데
온실에서 나온 튤립꽃만
미세먼지 자욱한 쌀쌀한 대기에
애처롭습니다.
자신을 상품으로 거리에 내놓은
사람을 보는 듯도 하고요.
3월 19일
삼월 들어 토요일이 세번째 입니다.
축대밑에 원추리가 제법 자라났네요.
원추리 무리가 봄품없이 땅을 차지하고 있어서
제가 사정없이 삽을 들고 파내버렸습니다.
제가 그렇게 야멸차게 구는데도
얘는 이렇게 봄만 되면
여기 저기서 살아나오는게 참 신기합니다.
이 강인한 생명력에 제가 손들었습니다.
어찌보면 뽑아내고 뽑아내도
오히려 번성한 히브리인을 보는 듯 하고.
우리 그리스도인을 보는 것도 같습니다.
이제 봄님이 제 작은 정원에 방금 도착했습니다.
제 국화도 한해살이를 출발하는 군요.
이 국화는 이렇게 이른 봄에 싹이 나와
늦가을에 피어 눈내릴 때까지 꽃을 피웁니다.
이제 금년 국화농사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장미접을 붙이려 대목으로 심어둔
찔레도 새 잎이 나오고
휘묻이 해두었다가
작년에 옮겨 심은 장미도
붉게 잎눈을 키우고 있습니다.
애기똥풀 한포기가
주소를 잘못 찾았군요.
돈나물이라 불리는 돌나물이
이쁘게 잎을 피운 걸 보니
어릴적 어머니가 담가주시던
돈나물 나박김치가 생각납니다.
이때쯤 들에 나가셨던 어머님께서
이 돌나물을 걷어오셔서
나박김치를 담으시면
참 시원하고 향긋했습니다.
왜 어릴적 맛은 잊지 못하는지
그게 참 신기합니다.
이때면 해주시던
달래양념장,
쑥을 비롯한 나싱게와 나물국과
나물죽이 그립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어려운 시절 나물죽맛은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춘궁기를 모르는
지금 아이들은 그 맛을
결코 모르겠지요.
옥잠화를 꼭 심고 싶었는데
친한 목사님네서 비비추가 와서
이미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비비추가 죽순 나오듯
머리를 내밀고
모란도 잎이 나오고 있습니다.
얘도 제가 원한 토종이 아니어서
그저 아쉽습니다.
이걸 판매한 그 묘목상이
좀 얄밉네요.
3월 21일
드디어 생강나무에 봄이 노랗게 만개했습니다.
생강나무야 말로 봄의 선각자이며
봄의 전령이자 선구자입니다.
이제 이 생강나무꽃이 채 시들기 전에
산수유와 매화가 피고
진달래 개나리가 제 시절을 만날 것입니다.
이때쯤 아지랭이 피어오르는
고향집 뒷동산 무덤가에
피던 할미꽃이 그립습니다.
그 흔하던 할미꽃은
지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저 멀리 숲에서
봄꿩 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번식의 계절이 도래한 것입니다.
김삿갓이 봄꿩 우는 소리에
임 생각이 나고 외로워졌데죠.
그렇습니다.
인생은 사랑을 잃으면
별것 아닙니다.
사랑의 계절왔습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후회없이 사랑합시다.
아! 봄바람이 붑니다.
얘는 벌써 잎을 다 피웠습니다.
시골뜨기라서 제법 나무이름을 아는 편인데
숲에 오면 모른게 더 많습니다.
인생은 결국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많고
아는 만큼 무지가 커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인생을 겸허하게 해줍니다.
하물며 신앙의 세계이겠습니까?
제자는 배우는 사람이지요.
주님이 당신을 따르는 사람을
제자라고 하신 것은
신앙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참 제자는 언제나 듣고 배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개나리에도 봄이 피고 있네요.
그동안 개나리가 일찍 피기 때문에
남 먼저 꽃눈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이제야 피는 군요.
무심과 유심의 차이
건성과 관찰의 차이를 이번에 알았습니다.
깨금나무에도 노랑 봄이 열었습니다.
개암나무라고 하지만
제게는 깨금나무가 더 친근합니다.
초가실 고소한 깨금을 따러 산을
휘젓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렇게 산을 휘돌아 다녀도
지칠 줄 모르던 소년은 어디가고
이제 산에 오르려면
무릎에 조금 부담을 느끼는
서리내린 사람만 남았습니다.
그 시절 깨금따던 동무들은
어디서 어떻게 늙는지
그립습니다.
이제 쥐똥나무 잎눈은 터지기 직전입니다.
3월 22일
쌓인 낙엽을 치우러 옥상에 올랐습니다.
봄비 내릴 시기라
옥상의 배수구가 막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유비무환이지요.
내려오다 보니
벚꽃 몽우리가 잔뜩 부풀었습니다.
이제 한 주 후면
벚나무에 꽃구름이 필것입니다.
그리고 곧 장렬하게 산화하고
벚은 파란 여름 꿈을 매달 것입니다.
3월 마지막 토요일 이른 아침입니다.
공원의 산수유가 노랗게 봄을 개화하고 있습니다.
지금쯤 남도에서는
매화가 상춘객을 부르고 있겠지요.
금년도 고난주간과
갈멜산기도회가 잡혀 있어서
벼르는 매화마을 여행은
물건너 갔습니다.
조팝나무도 파랗게 제봄을 키우고 있네요.
눈처럼 하얀꽃이
하얀눈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저 파란눈에서 피는 것 신기하네요.
아내와 함께 공부하던
글짓기 교실을 운영하는 아마추어 작가가
낸 동화책이 생각납니다.
그는 밭구석 잡초 속에 하얗게 핀 꽃을
싸리꽃이라고 썼더군요.
아마 그분은 조팝나무를
싸리나무로 알았던 모양입니다.
하기사 유명한 유행가에
"찔레꽃 붉게 피는"이란 가사도 있으니까요?
이제 금년 봄도 만개할 준비를
끝낸것 같습니다.
부활주일이 지난 월요일,
오후2시도 훌쩍 지난 시간에
가자할 때는 시큰둥하던 아내가
매화마을 가자했습니다.
이미 매화는 진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 하고 광양매화마을로
훌쩍 떠났습니다.
이렇게 홀연히 떠나는 것에
여행의 묘미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기 합니다.
여지껏 벼르기만 하고
매화마을에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5시경에야 도착한 매화마을은 역시나였습니다.
매화는 이미 저렇게 지고
우리 부부처럼 뒤늦게 찾은 상춘객들이
벗굴집이나 막걸리집을 기웃거리고
볼것 없는 매화마을을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이 모양에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미련없이 차를 돌려 구례쪽으로 올라가다
산중턱에 하얗게 핀 매화밭이 있는
동네를 찾아들었습니다.
시간상 산중턱은 너무 멀어 포기하고
마을의 매화 밭에 제법 남은
매화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꽃진 매화 밭에는 봄나물 벌금자리등
새풀이 우거지고
머위도 많이 자랐습니다.
목자의 삶이라는 게
큰 목회도 아닌데 항상 이렇습니다.
여름 휴가를 떠나면 해수욕장은 폐장이고,
가을에 단풍을 보러가면
단풍은 끝나고 낙엽이 우수수지고 있었습니다.
매화마을 꽃구경도
결국 이렇게 끝물로 족해야 헀습니다.
매화꽃 흐르는 개울에 세월이 따라 흐릅니다.
그리고 저기 아슴하게 성춘이 와있습니다.
저만치 앞서 가는 아내의 뒷모습도
왠지 짠하네요.
섬진강, 하동포구 팔십리 길에 줄지은
벚나무에 봄이 붉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강언덕에 노오랗게 핀 개나리가
벚꽃을 재촉합니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이
가장 실감나는 곳이 이곳 섬진강이 아닐까 합니다.
해는 이미 서산에 걸려
산동산수유꽃 구경은 글렀습니다.
봄해는 서산에 기울어
꽃 피는 섬진강에
낙조를 담아 하동으로 가는데
봄 나그네 귀밑에 늘어가는
해묵은 서리는
어느 시절에 녹을까?
내일을 알수 없어
기약 못할 몸이지만
명년 봄 벚꽃 피는 날
다시 찾아오며는
꽃흐르는 저 강물이
녹여 줄까 하노라!
해는져 어둑해서 찾아든 식당 마당에
목련이 한창입니다.
푸른 저녁빛이 하얀 목련에 젖어
조금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짙어가는 봄 저녁
어디서 개구리 우는 소리라도
들릴 듯합니다.
3월 29일
축제를 앞둔 산수유마을을 찾았습니다.
아직 만개하지도 않았지만
금년 산유유꽃 개화 실적이 좋지 않습니다.
풍광이나 군락지에서 산동과 견주기는 무리지만
서울서 한 시간거리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지요.
그러나 산수유군락지가 처음인 분들에게는
신선한 경험이 될 곳입니다.
그래도 축제때는 차가 밀린답니다.
육괴정 앞의 산수유꽃입니다.
육괴정은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중심으로 이상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난을 피하여 이곳 도립리로
낙향한 엄용순이 건립한 정자입니다.
당시의 명현으로 일컬어지던 김안국 등
다섯명의 선비들이 함께 낙향하여
이 정자에서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였는데,
여기에 여섯 사람이 우의를 기리는 뜻으로
느티나무 여섯 그루를 심어
육괴정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이 육현들이 추구하던 이상정치의 봄은
지금은 이땅에 과연 왔을까요?
저 산수유는 지금도 그 봄을 기다리나 봅니다.
3월이 가고 4월 첫날입니다.
비비추가 벌써 이렇게 이쁘게 자랐습니다.
쥐똥나무 잎도 파랗게 피어 제시절을 만났습니다.
이제 제가 사는 고장에도 봄이 폭발하기 사작했습니다.
길섶의 개나리에 노랑봄이 피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개나리빛 병아리들이
어미 닭을 따라 봄마중 가는 것을 볼터인데요.
개나리 피었으니 진달래
살구, 앵두도 봄이 피어
꽃동네를 이룰것입니다.
산기슭 진달래가 마침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봄의 진군이 그렇게 치열하지만
봄은 이렇게 조용히 질서정하게 옵니다.
생강나무에서 터지기 사작한 봄은
매화와 산수유를 거쳐 개나리 진달래를 피우고,
뒤를 이어 벚과 살구 앵두, 복숭아 배꽃,
조팝과 사과나무로 옵니다.
자연은 이렇게 생존을 질서있게 서로를 배려합니다.
아마 인간만이, 그리고 덜깬 사회일수록
독식 구조를 가질겁니다.
이번 총선은 이땅에 어떤 봄을 사출할까요?
"고향의 봄"에서 "왜 아기 진달래"라고
읊었는지 알만하지요?
산등성이 여기저기에 피어나는 진달래를 보니
불현듯이 아버님 생각이 납니다.
이맘때 먼산에 나무하러 가셨던
아버지께서 나무를 해서 돌아오실 때
진달래를 꺾어 두어 묶음을
나무지게 위에 꽂아 오셨습니다.
소문난 장사이신
아버지의 나무짐은 유달리 크셨습니다.
그 커다란 아버지의 나무짐의 진달래꽃을 따라서
노랑나비 한 마리가
나무짐 위에 나폴거리며 따라왔지요.
마당에 도착하신 아버지께서 꽃이 떨이지지않게
조심히 나무짐을 부리시고는,
저와 누이동생들에게 "창꽃이다!" 며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때 그 진달래 꽃다발을 받아들고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진달래가 그해 봄 첫 진달래였습니다.
그때 부터 몇일 지나면 고향 뒷동산에 진달래피고
꽃따러 다녔지요.
올해도 어김없이 진달래는 다시 피는데
육년전 주님 곁에 가신
아버님 생신만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 시절 진달래꽃 받아들고 기뻐하던 소년은
이제 이웃 애기 엄마들에게
할아버지 소릴 듣게 되었습니다.
막 개화한 진달래를 보니
아버님이 문득 그립고,
누이 동생들 생각도 납니다.
아! 이제 봄 봄입니다.
꽃바람도 불어 올것입니다.
국수나무에도 새봄이 파랗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국수가락과 같이 줄기가 죽 뻗어 나오고
속이 스트로폼 비슷한 고갱이
국수가락같이 채워저 있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하얀꽃이 흐드지면 향기도 좋습니다.
이제 졸참나무와 신갈나무에도 봄이 도착했습니다.
참나무들이 잎을 피우는 날 신록은 우거지고
이 봄은 제 일을 마치고 제 길을 갈것입니다.
뱀딸기가 앙증맞게 노랑꽃을 피웠습니다.
어릴적에 빨간 뱀딸기를
먹어보고 싶은 유혹을 여러번 느꼈지요.
아주 친근한 식물인데
뱀딸기꽃이 이렇게 예쁜지
예전에 미쳐 몰랐습니다.
나이가 들어선가요?
주차장 콘크리트 바닥 틈새에
제비꽃이 피어 예쁨니다.
삶은 이렇게 모질고
엄숙한 것입니다.
이제 주차장 바닥에도 봄이 가득합니다.
4월 4일
쌍계사 들목 십리길
화계천변에 벚꽃만발입니다.
금년은 제때 찾아서
이 유명한 쌍계사 벚꽃과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서
하동포구 팔십리길의
벚꽃을 원없이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구례나들목을 빠져나오자
구례는 온통 벚꽃 마을이었습니다.
때마침 살짝 내린 비로
지리의 산록에서 피어 내리는
운무와 벚꽃이 어울려
정말 몽환적이었습니다.
불과 세 시간 거리인데
이곳은 온통 봄!봄입니다.
화사한 벚꽃
날로 푸르러지는 녹차밭
흐르는 시내
산을 덮는 구름
막 봄이 녹아 흐릅니다.
문득 시정이 일어납니다.
저무는 섬진강 양안 가득
벚 꽃 화사하고
강 언덕에 버들 푸르러
봄은 깊었어라!
아! 꽃지면 저 사람 가면 아픈 추억만 하나 느노니
꽃빛 어린 무심한듯한 저 강물만
내 마음 같아서야
봄 가는 해 홀로 서러워
속으로 울어에
울어 가노라!
배밭에 배꽃이 온통 하얗게
봄이 만개하여
저무는 빛에도눈부십니다.
산에도, 들에도, 시내와 강에도,
가로와 마을에도 봄, 봄! 입니다.
청명도 지난 4월7일
이곳 설봉공원 벚나무에 봄이 구름처럼 일었습니다.
벚나무 꽃구름 그늘아래
다정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도 보입니다.
너무 닭살스러워
부디 3일 천하 꽃구름 사랑이 아니라
눈내리는 날에도 푸르른
불변의 동백같은 사랑이기를
빌어 봅니다.
황홀한 꽃지면 꽃 떨어진 자리에
벚은 푸른 꿈을 맺습니다.
이 푸른 꿈은 곧 빨갛게 타오르다
보리익는 오월에 까맣게 익습니다.
이렇게 벚은 마치 우리 인생사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풀이요, 인생의 영화는 풀의 꽃입니다.
헛된 쾌락 영화에 속지말라고
바람이 붑니다.
이곳이 이천 도자기축제 엑스포장입니다.
철쭉이 한창일 때, 아니면 낙엽지는 가실에
도자기축제와 쌀축제가 열립니다.
이곳 벚꽃도 볼만하지요.
이제 저기 운무속에
봄이 산넘어 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4월 8일
진달래가 산에도 공원에도
제 시절을 만났습니다.
진달래는 겨울을 보낸 희열의 꽃이자
소월의 진달래에서 보듯 서러움의 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진달래를 이렇게 읊어보았습니다.
제 자작시 "진달래"의 둘째 단입니다.
화려하지 않게 연히 붉은
네 모색이 오히려 고와
시샘을 받는 가녀린 넌,
힘없는 네 땅의 주인을 닮아
한 깊이 묻은 가슴
내연으로 타고 타올라
저토록 애잔히 하얀 미소로
붉게 붉게 사랑을 피우는가?
봄의 선구자 생강나무에 꽃이 마르고
새잎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선구자는 여름에도 선각자입니디.
제가 산을 찾으면 기도하는 곳입니다.
이 산성 꼭대기에도 봄은 무르익어
철쭉이 붉게 꽃 몽우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저 철쭉이 피면 이미 여름입니다.
봄은 모질게 와서
쉬이갑니다.
우리네 인생처럼,
골짜기 아래 보리수나무가
먼저 푸르렀습니다.
그리고 참나무 숲이 푸른 빛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제 정원의 모란이 저렇게 봉우리를 맺고 있습니다.
영랑은 이 모란을 두고 이렇게 노래했지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중략-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그렇습니다.
벗꽃 진달래 만발한 봄은 이미 왔지만
모란이 피기까지는 아직 기다려야 할 봄이 있습니다.
영랑이 기둘리는 모란이 피는 봄은
이 강산에 왔을까요?
저도 영랑과 같이 나의 모란이 피는
나의 봄을 아직도 기다립니다.
4월12일
꽃지는 밤
봄 밤이 깊었습니다.
남쪽 산위 하늘에 뜬 초승달이
이 밤이 새면 신록으로 떠나야할
봄과 이별을 나누고 있습니다.
제일을 다 한 봄은
추억 한장을 남기고
저기 아슴하게 어둠속으로
고요히 가고 있습니다.
저 가로등이 꺼지고
이 밤이 새면
벚꽃은 간데 없고
초록 천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린 다시 그리움으로
봄을 기다릴 것입니다.
봄은 언제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초록이 숲을 물들이며 산등성이를 넘는데
진달래꽃 떨어져 마른 산에
봄을 여읜 철쭉이 핼쑥한 얼굴로
신록을 부르고 있습니다.
푸르러지는 참나무 숲속으로
부드러운 신갈나무 새잎을
살포시 흔들며
봄이 가고 있습니다.
열매를 부탁하고
조팝꽃 향기속으로 멀어져 갑니다.
안녕!
안녕!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