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브라함-la 2016. 9. 25. 16:42

016,9,25, 주일강론   

본문 : 사62:1-5

말씀 : 라인권목사 

 

“나무젓가락처럼 내버려질 수는 없잖아.” 이 말은 “청춘의 문”이라는 소설로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츠키 히로유키”의 소설 “사계 하루코”의 주인공인 이혼녀 하루코가 유능한 의사와 재혼을 앞두고 자신은 다시 버려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며 한 말입니다. 그래서 하루코는 재혼을 앞두고 개업하려고 했던 리사이클 가게를 포기하고 자기 손으로 제품을 만들어내는 수공예품 가게를 엽니다. 왜냐하면 재활용품은 리사이클해도 결국은 중고품이고, 새것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혼녀의 하루코의 자아 상태입니다. 자신이 중고품 같이 느껴집니다. 이런 자기를 누가 다시 써준대도 이미 새것에 비해 가치성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누가 다시 써준다고 해도, 새것 같이 애지중지 해주지 않고, 적당히 사용하다가 버림을 받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재혼해도 또 실패하면 어쩌나 이렇게 자신감이 없고, 또 다시 버림을 받을까 두려운 것이 이혼녀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혼녀의 마음일 뿐만 아니라 실패를 계속하거나 깊은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의 심정이기도 합니다.


이혼녀와 같은 포로 된 히브리인의 자아

오늘의 말씀은 포로 된 히브리인들의 자아가 이렇게 남편에게 버림을 받은 여자와 같았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구속하신 남편인 하나님을 두고 우상이라는 연애하는 자를 따라 음행했습니다. 그 결과 남편이신 하나님께 싫어버림을 당해서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기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아내로 아는 것이 아니라 “버림받은 자” “아주바”로 알았습니다.(4) 시온을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의 영광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불륜으로 “버림받은 아내” “셰마마” 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포로된 히브리인에 대한 이방인들의 대우였습니다. 이방인들은 히브리인 알기를 불륜으로 이혼당한 여자 취급했습니다. 이방인들에 히브리인들은 한낱 포로에 불과 했습니다. 이런 포로의 깊은 밤은 포로 된 히브리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부정을 저질러 이혼 당한 여인처럼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재혼을 앞두고도 자기를 부정하게 여기고, 실패를 두려워하고 또다시 버림 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는 이혼녀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유하시고 돌아가서 예루살렘을 다시 쌓게 하신다고 하셔도, 또 다시 실패하고 또 다시 버림을 당하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와 영광을 주셔서 새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혼당한 불륜녀 취급을 받던 시온이 멸시나 무시가 아니라 칭송과 찬양을 받게 해주신다고 하십니다. 존경을 받게 해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버림받은 아내와 같이 된 당신의 교회와 백성을 어떤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게 하십니까? 

 

“아주바”를 “헵시바”로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신랑이 신부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하는 말입니다. 너는 내 삶의 의미요, 존재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고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아주바가 된 이스라엘을 이토록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과 언약의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은 변했지만 하나님은 변함이 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부정한 여인 같은 이스라엘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자기 아들을 주셔서 아들의 피로 구속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임을 입증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포로 되어 불륜녀 취급받는 이스라엘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모든 원수들과 이방인들이 보게 하셔서 아주바로 알던 백성을 헵시바로 불리 움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호세아서에서 말씀하신 백성 아닌 자를 백성이라고 하시는 언약의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은 이혼녀에 불과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살되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장가들어주십니다.(호2:19,20) 그래서 롬5:8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므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구속된 하나님의 백성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이 타락해서 아주바가 되었도 그들을 다시 사랑 받는 아내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의 피로 값 주시고 구속하여 새 피조물로 만들어 몸 된 교회 신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짜리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버림을 당하면 어쩌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자기가 아주바가 되었을 때에도 은혜 안에서 자기를 헵시바로 알고 자기에 대하여 실망하지 않고 자기에 대하여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받는 아내로, 사랑받는 자녀로 아는 것이 믿음이요 이 믿음으로 일어서는 것이 부흥인줄로 믿습니다. 

 

셰마마를 쁄라로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라고 하십니다. 셰마마는 “버림받은 아내”라는 뜻입니다. 버림받은 아내는 마치 울타리없는 집과 같습니다. 아무나 넘볼 수 있습니다. 버림받은 아내는 멸시와 무시의 대상입니다. 존중 받을 수가 없습니다. 버림받은 아내는 안식이 없습니다. 이런 인생은 황무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포로된 이스라엘의 상태입니다. 한때는 성전이 있고 다윗의 왕성이던 시온이 버림 받은 아내와 같이 황무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라는 영광을 거두시면 마치 버림받은 아내의 인생이 황무지가 되는 것 같이. 성전도 황무지가 되고, 왕궁도 황무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역과 개정은 황무지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 떠난 인생의 현주소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버림 받은 아내와 같이 된 시온을 쁄라라 일컬어지게 하십니다. “쁄라”는 “결혼한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결혼한 여인은 임자가 있습니다. 남편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습니다. 그는 남편의 인생의 기쁨과 의미인 사랑과 존중의 대상입니다. 결혼한 여인은 남편이 모든 삶의 필요를 책임집니다. 안식이 있습니다. 마치 보아스와 재혼한 룻과 같은 것입니다. 포로된 시온은 버림 받은 아내와 같이 모압과 암몬도 무시하고, 애굽과 앗수르가 유린하고, 바벨론이 짓밟았지만 이제 결혼한 여인과 같이 그 누구도 감히 넘보지도 못하게 하시고, 귀부인 대우를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자기를 셰마마로 여기지 말고 쁄라로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내가 황무지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내 땅이 “쁄라”가 되게 하신 다는 것을 믿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엇이 헵시바가 되고, 쁄라가 되게 하나

그 이유를 1절과 2절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의가 빛과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과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시지 않으시며 쉬시지도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새 이름으로 부름 받게 하도록 하나님의 손의 아름다운 관이 왕관이 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자식이 아비의 영광인 것 같이 구속된 성도가 하나님의 면류관입니다. 구속된 성도들의 복된 삶이 하나님의 영광의 왕관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5절은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같이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선택과 구속의 사랑이 아주바를 하나님의 손의 관이 되게 하고, 셰마마를 하나님의 왕관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아주바가 된 백성은 헵시바로 칭송을 받고, 셰마마가 된 백성은 뿔라로 찬양 받고 존경을 받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아주바가 헵시바가 되고, 세마마가 쁄라가 되는 것은 백성들의 선함이나 의로움이나 경건이나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아주바가 된 백성이 헵시바가 되기까지 쉬지 않고 일하시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의 사랑을 이루시기 위하여 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쉬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영광과 이름을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항상 깨어서 눈동자와 같이 지키십니다. 이 은혜로 택한 백성은 끝까지 구원 받습니다. 이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는 승리합니다. 이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는 줄로 믿습니다.


믿음은 아주바와 셰마마바 인식을 헵사바와 쁄라 인식으로 바꾸는 것

그러므로 믿음은 아주바 인식을 헵시바로 바꾸고, 셰마마 인식을 쁄라로 바꾸는 것입니다. 우가가 자신을 아주바와 셰마마로 알아도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헵시바라 하시고, 셰마뿔라라고 하십니다. 이 백성은 피로 언약하고 피로 값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헵사바라고 하시는데 내가 나를 아주바로 아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누구도 정죄할 자가 없습니다. 누구도 이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자기를 이혼녀가 아닌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아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아주바와 셰마마로 알던 자기를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피로 사신 예수님짜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이혼녀, 불륜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신부로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혼 당해서 잊혀진 여인이 아니라 신부입니다. 신부는 사랑과 기쁨의 대상입니다. 사랑과 존중을 받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자기를 버림받은 아내와 같은 황무한 자기를 쁄라, 결혼한 여자로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황무해진 내 삶의 터전이 축복의 땅 뿔라가 되게 하실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버림 받은 아내 같이 황무해진 인생을 결혼한 여자같이 되도록 결코 쉬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불륜녀, 과부와 혼인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리폼이 아닌 새로운 창조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새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성도는 중고품이 아니라 새것입니다. 우리는 허투루 쓰다가 버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영원을 함께 하시기 위하여 끝까지 쓰시고 지키시고 아끼실 새 것입니다.그러므로 믿음은 자신을 이혼녀로 중고품 같이 아는 인식을 헵사바와 쁄라 인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혼녀 같이 또 실패하지 않을까? 또 다시 버림당할까 두려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랑받는 신부가 남편이라는 축복의 땅에 행복을 누릴 것을 확신하는 것 같이 신랑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황무지 같은 내 삶의 땅이 젖과 꿀이 흐는 축복의 땅 쁄라가 되고, 쁄라에서 살 것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것이 부흥이라고 믿습니다. 부흥은 아주바인 나를 헵시바로 알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흥은 황무한 내 땅이 쁄라로 변할 것을 알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이방이 헵시바와 쁄라로 부를 때까지 결코 쉬시지 않으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열심히. 이 은혜와 권능이 이혼녀 취급받던 나를 헵시바와 뿔라로 칭송과 존경을 받는 날을 반드시 보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 이혼당한 여자처럼 자신 없고 두려우십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은 이혼녀가 아니라 헵시바요, 쁄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받을 것을 확신합시오, 승리할 사람으로 알고 아주바에 일어납시다. 이 사랑으로 복 받을 것을 획신하고 셰마마바에서 일어나 쁄라의 땅으로 진군해 나가는 부흥의 불이 타오르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헵시바와 쁄라로 부름 받는 그날까지 우리 하나님은 결코 쉬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