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라!”

아브라함-la 2016. 10. 13. 08:44

016,10,9,주일강론  

본문 : 왕상18:30-40

말씀 : 라인권목사

     성경에서 믿음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은 친히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구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적 삶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살아가는 영적인 실제가 없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구원의 확신이 있지만 내 인생과 삶에 하나님께서 구원과 도움과 능력이 되시는 것은 믿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적 실제가 없는 현상은 실제로 기도하지 못하며. 기도응답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기도 응답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현현이며, 하나님께서 현재적으로 나를 사랑하시며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응답이라는 영적실제가 없으면 신앙은 이론적이고 형식적이 되어버린 영적인 실제가 없는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갈멜산에 모인 북방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실정이었습니다. 이들이 왜 바알 숭배에 빠졌을까요? 아합과 이세벨의 꾀임과 박해 때문이겠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실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는 여호와는 자기들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역사속의 하나님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여호와는 관념적이고 교리적인 하나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인지 바알인지를 택하라는 엘리야의 말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백성들이 엘리야의 기도응답으로 내리는 여호와의 불을 보자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라”고 외치는 영적실제가 있는 백성으로 거듭났습니다. 

 

내일 새벽부터 갈멜산 기도회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교회가 일 년에 두 번하는 특별새벽기도회를 “갈멜산 기도회”라고 하는 목적 중의 하나가 이런 기도응답을 체험하여 기도의 영적 실제가 있는 성도가 되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새벽기도회의 이름을 갈멜산 기도회라고 한 것입니다. 갈멜산과 같이 기도응답의 불을 체험하는 기도회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갈멜산 기도회를 앞두고 기도응답이 어떤 영적실제를 가지게 하는지를 본문에서 배우려고 합니다. 갈멜산의 응답의 불은 영적 실제가 없던 이스라엘로 어떤 영적실제를 가지게 했습니까? 

 

첫째, 기도응답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참된 예배자가 되게 했습니다.

갈멜산의 엘리야의 제단에 응답의 불이 내리는 것을 본 모든 백성들의 첫 번 반응은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여호와냐? 바알이냐를 선택하라는 엘리야의 말은 백성을 돌이키게 하지 못했지만 엘리야의 기도의 제단에 내리는 응답의 불은 모든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만들었습니다. 기도응답이 하나님을 계신 그대로 만나게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신 하나님을 계신 그대로 만나는 길은 예수를 하나님과 구주로 만나는 것과 기도응답 뿐입니다.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장 찬란하게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하나님과 구주로 만나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엎드려 경배하는 영적인 실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만나 사람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지금까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하셨습니다.(요16:24) “너희가 내 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도응답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여 진정으로 엎드려 경배하는 예배자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시편은“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회롭게 하리로다”고 기도응답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신 겁니다.(시50:15) 그러므로 이번 갈멜산에서 기도응답을 체험하여 참된 예배자가 되는 영적실제를 가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기도응답은 실제적인 신앙고백이 있는 성도가 되게 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응답으로 내리는 불을 본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에게 언약하신 여호와는 살아계신 참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하나님은 그들에게 옛적 역사속의 하나님에 불과하고 교리적이고 관념적인 존재이고 신앙이었지만 갈멜산의 응답의 불을 보고 여호와를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오늘의 하나님으로 실제적으로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피터 마샬은 스코틀랜드에서 맨손으로 신대륙으로 건너와 고학으로 목사가 되고 상원원목이 된 유명한 목사입니다. 이분이 돌아가신 후 나온 첫 설교집이 “존즈씨 구주를 만나다”입니다. “존즈씨 그 분을 만나셨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도 번역되었습니다. 여기에 “무제한의 탐구”라는 강론이 있습니다. 이 강론은 맨손으로 대서양을 건너와 철공소 직공으로 일한 자기가 상원원목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해 주셨는지를 간증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하나님은 구속의 하나님만이 아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믿음과 기도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은 무제한 탐구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실제로 나와 함께 하시고 지금도 내 삶의 구원이 되심을 믿지 못하는 것은 기도 응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해야 하고 기도응답을 확신하고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기도응답이 있어야 실제적인 신앙고백을 하고 삶에서 실제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영적실제를 가지는 줄로 믿습니다. 이번 갈멜산에서 이 영적인 실제를 갖게 되어 이 영적 실제가 삶의 능력이 되어 이것이 무제한의 탐구의 대상이 되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기도응답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의 증명이 되게 했습니다.

엘리야는 우상숭배에 빠져 갈멜산에 나온 백성들에게 여호와가 하나님을 입증하기 위하여 유신론증을 하지 않았습니다. 교리나 논설을 한 것이 아니라 응답의 불로 증거하고 입증하려고 했습니다. 기도 응답이야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인격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란 사실과 우상과 차이점이기 때문입니다.(사44:15-17,46:1,2,7)


우리가 엘리야 때와 같이 완악하고 완고한 사람들에게 유신론증을 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 하겠습니까? 아니면 신학논설로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응답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엘리야 때와 같이 완악한 영혼들로 하여금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라”고 엎드려 경배하게 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의 증명이요, 증인이 되게 할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도 기도와 응답으로 이방 왕으로 하여금 다니엘의 하나님이 살아계신 참되신 하나님임을 고백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단6:26,27)


이게 진정한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지금 우리 은혜로교회에 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해야 합니다. 우리 은혜로교회에 기도응답으로 인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는 것이 지역사회로 하나님 보게 하고 하나님께로 나오게 하는 부흥인줄로 믿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교회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로다”(시50:15)를 표어로 삼은 것입니다. 이번 갈멜산 기도회에 응답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온지역 사회가 보고 엎드리게 임하시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 능이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세상을 우리 같은 비빌 데도 사람이 어떻게 살아내겠습니까? 저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비결로 주신 은혜의 방편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마지막 밤 다락방 강화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며, 기도응답을 강조하신 겁니다.(요14:1,15:7,16:24)


피터 먀샬의 부인 케더린 먀살은 시골 교회를 섬기는 목사의 딸로 자랐습니다. 그가 명문 아그네스 스콧트 대학에 합격하고 부상과 근로 장학금을 받았지만 등록금의 절반이 부족했습니다. 이로 고민하는 그를 어머니가 함께 의논하자며 기도의 의자 앞에서 함께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이 기도로 단지 자신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응답이 연방정부가 어머니에게 지역사회에 대한 글을 쓰게 하는 것으로 왔습니다. 그 원고료로 등록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남편 피터가 죽은 이후에도 그의 삶의 방법이었습니다. 이 삶이 자기 자녀들에게 삶의 지침이 되도록 “어려울 때에 도움이 되신 하나님”라는 회고록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가 방법입니다. 실제로 기도를 알고 기도하는 기도의 영적실제를 가졌다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요, 이 기도로 세상을 넉넉히 살고도 남게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갈멜산 기도회에서 엘리야와 같이 기도에 믿음으로 인생을 걸고 기도하여 응답의 불을 받아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라”고 엎드려 고백하는 영적인 실제가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받은 이 기도의 영적 실제로 이 험한 세상을 넉넉히 살아내시고, 이 완악한 불신의 세상에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풍성하고 영광스런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