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은혜
016,12,4, 주일강론
본문 : 벧후3:8-9
말씀 : 라인권목사
인생은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선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려면 어머니 복 중에서 열 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아기가 부모가 되려면 최소한 20년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농부가 씨를 뿌려도 넉 달을 기다려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기다림이지만 기다림과 같이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조상 아브라함도 기다리지 못해서 이스마엘을 낳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40일을 못 기다려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저도 기다리는 것이 힘듭니다. 고속도로가 막혀서 국도로 빠져나와 보면 오히려 고속도로가 더 빨리 갑니다. 그래서 후회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다 지친 초대교회
초대교회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다 지쳤습니다. 왜 초대교회는 재림에 지쳤을까요? 첫째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이 자기들의 세대에 주 다시 오실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기들 세대에 주님이 다시 오실 것으로 믿은 것은 당연했습니다. 우선 재림에 대한 주님의 말씀이 사도들의 생전에 주님이 오실 것으로 보여 지는 말씀들이 여러 곳 있기 때문입니다. 마10:23 “내가 진실로 이로노니 이스라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막9:1에 “여기 서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하셨고, 베드로의 죽음과 관련한 말씀도 주님이 사도들의 생전에 오실 것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재림에 대한 주님의 비유와 교훈은 모두가 “홀연히” “속히 오리라”로 귀결됩니다. 승천의 장면과 재림의 약속이 길고 장구한 세대가 아니라 가까운 시일의 이미지입니다.
둘째,초대교회는 모진 박해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해는 가난과 궁핍 유리하는 삶을 가져왔습니다. 이 박해 받는 성도들의 위로와 소망은 주님재림에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생전에 주님 다시 오실 줄로 알았기 때문에 속히 오실 줄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즈음에 사도요한이 받은 따끈따끈한 계시인 요한계시록은 주님이 속히 오실 것을 재삼 재삼 강조합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이것이 계시록의 종언입니다.(계22:7,12,20) 그래서 주님 약속하신 대로 속히 오실 줄로 믿고 박해와 궁핍을 참았습니다. 자기 것을 자기것이라고 하지 않고 필요하면 교회에 바치며 재림과 주님의 나라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주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 사도들과 함께 했던 사람들, 말하자면 복음의 1세대들이 다 세상을 떠나가는 형편인데도 주님이 오시지 않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재림이 지체되는 것이 초대교회를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했습니다.
재림의 지체로 야기되는 초대교회 문제
하나는 거짓선생, 이단이 일어나서 재림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고 주님이 임하시면 이 세상이 멸망을 받는다고 하는데 지금 1세들이 다 세상을 떠나도 이렇게 세상은 멀쩡하게 있지 않냐? 주님의 재림은 사기다” 이렇게 조롱했습니다. 마치 90년대 휴거운동자들이 받은 취급을 받은 겁니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교회 안의 신실한 성도들이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왜 안그렇겠습니까?지금까지 주님이 속히 오실 줄 알고 모든 박해와 고난을 견뎌왔습니다.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바친 것도 주님이 자기들 자기들 세대에 오실 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가정도 바치고, 자신의 인생의 가능성도 바치고,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인생의 행복도 바치고. 재산도 바쳤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하나씩 세상을 떠나가고, 복음의 1세대가 하나 세상을 뜨는데도 주님이 오실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당황스럽습니다. 약속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흔들릴 수밖에 없지요?
오늘의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이렇게 재림을 기다리다 지쳐 낙심하고 시험에 든 초대교회를 위로하고 세우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재림이 더디다고 하지만 그것은 유한한 인간의 계산에 불과 할 뿐이다.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없으신 영원한 현재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하루가 천년이요 천년이 하루 같으신 분이시다. 어떻게 유한한 인간의 시간으로 하나님의 시간을 계산할 있느냐? 굳이 재림이 더디냐 빠르냐를 따지고 계산한다면 너희가 기다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 회개하고 구원 받게 하시려고 참고 기다려 주시는 것이다. 재림을 기다리게 하시는 것이 은혜다.” 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재림을 기다리게 하신 은혜는 구원의 은혜는 어떤 것입니까?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을 보는 은혜
우선 재림을 오래 참아 기다리게 하심이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다 회개하기를 기뻐하셔서 아직도 주님 보내서 심판 하시지 않으시고 죄인들을 참고 기다려 주시기 때문에 구원 받은 성도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 받는 것을 보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구원 받는 성도들에게는 끊이지 않는 영적인 부담과 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불신 형제들의 구원입니다. 바울은 이 영적 부담 때문에 차라리 자기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했습니다. 이 영이 있는 것이 성도입니다. 그래서 고집하고 회개치 않는 불신가족을 보면 저러다 주님 오시면 어쩌나 걱정하고 근심 하는 마음이 있지요? 주님이 지금 오신다면 우리는 그들의 구원을 볼 수가 없습니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기다리다 보니 위해서 기도하던 영혼이 돌아오는 것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도저히 구제불능으로 보이던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 받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이게 기다림의 은혜입니다. 주님이 사도들의 생전에 오셨다면 우리는 구원 받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하루가 천년 같이 천년을 하루와 같이 참고 기다리시기 때문에 우리도 구원 받았고,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구원 받는 은혜를 누립니다. 우리가 기다리기보다 주님이 참아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 기다림의 은혜가 충만한 대림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재림을 기다리게 하신 것은 죄인의 회개와 구원을 기다리시는 이 하나님의 마음과 기다림을 알게 하시고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한 영혼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기다림을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이 하나님의 마음과 기다림을 배우는 것입니다. 은혜가족 여러분! 재림을 기다림으로 한 영혼을 참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웁시다. 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전도합시다. 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가 구원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립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하나님의 구원의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는 행복한 전도자가 되시고, 구원받은 사람이 예배자로 서는 것을 보는 은혜의 행복을 주님의 오시는 그날까지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자신의 사명을 이루는 것을 보게 하시는 은혜
재림을 기다리게 하심이 우리 자신의 사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 중에 빨리 주님께 가는 것이 자기에게 좋고 소원이지만 너희를 위하여 여기 몸으로 있는 것이 좋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어서 주님이 오셨으면 하는 맘이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지금 주님 오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주님은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상 받을 날만을 기다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다 이렇게 준비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주님 오시면 내놓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상 받을 것이 없고 한 달란트 받은 종같이 책망 받을 겁니다. 만일 주님이 지금 오시면 우리는 상급이 없이 불 가운데서 구원 받는 것 같이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심판을 미루시고 참아 주시는 겁니다.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충성치 못한 우리에 타임아웃 하시는 것이 아니라 충성할 기회를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하지 못하는 “이제 그만! 여기까지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잘 할 수 있도록 참고 기다려 주십니다. 실패한 “우리에 싹수가 별로 없다, 이제 그만!”이렇게 잘라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만회 할 기회를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상 받을 일이 없는 우리게 상을 만들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재림이 더딘 것, 지체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일할 기회를 주시고 사명의 성취와 성공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을 기다림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재림을 오래 기다리게 하시는 것은 우리 사명을 성취하도록 하나님이 불충하고 부족한 우리를 참으시고 기다리신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을 기다림은 이 하나님의 마음과 기다림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주님처럼 밤이 오기 전에 충성할 것입니다. 마치 시인 스티븐슨이 “일을 마치기전에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까 조바심한다.”고 한 것같이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사명이 성취되고 성공하는 것을 보는 은혜를 누릴 주로 믿습니다. 이 마음과 기다림을 배운 사람은 사람을 일꾼으로 세우는 일에도 성공할 줄로 믿습니다.
내 성화라는 구원의 분량을 채우고 이루게 하심
또한 재림을 오래 참아 기다리게 하심이 성화라는 내 구원의 분량을 이루고 채울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께서 너희에 대하여 참으사”라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참으십니까? 하나님이 아들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가 주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목적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속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다 이루지 못하는 성화를 죽을 때, 죽음을 통해서와 재림으로 이루셔서 영화에 이르게 하시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아서 재림을 기다리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이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행위에 염증이 나신 하나님이 이 백성을 다 멸하고 모세를 통해서 한 민족을 이룬다고 하셨지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이런 식으로 대 하셔서 “싹 수 없다.”고 심판 주를 보내셨다면 우리는 대개는 지금 주님 오시면 불 가운데서 구원 받은 것 같이 구원받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우리를 참아 주십니다. 기다리십니다. 이걸 “견인”이라고 합니다. 이 은혜로 우리는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라 흠도 티도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는 단장된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을 기다리게 하신 것은 아직도 내가 고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꿀 자기, 만들 자기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 기회를 주시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기다림의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참으심과 기다리심을 아는 성도는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하여 구원을 자기 구원을 이룰 줄로 믿습니다. 나를 고치고 만들기를 원하시는 이 하나님의 마음과 기다림을 재림에서 배우시길 축복합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과 기다림을 알아서 날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기다림을 배운 사람은 결코 구원과 구원의 기회를 흘려 떠내려 보내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기다림을 배운 축복
은혜로 가족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재림의 기다림에서 하나님의 기다림을 배운 다면 어떤 축복을 덤으로 누리겠습니까? 이 사람은 소극적으로는 아브라함이 기다리지 못해서 일을 그릇치고 시험거리를 만드는 일에서 승리 할 줄로 믿습니다. 이 사람은 적극적으로 소망과 비전을 이루기 전에 결코 포기 하거나 낙심하지 않는 불굴의 사람이 되게 할 줄로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방법을 배울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닮게 하고 사람을 참아주고 기다리는 사람이 되게 할 줄로 믿습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인생 승리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일에 성공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구원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벌써 12월 첫주요,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성탄을 앞두고 이 기다림을 배우게 하는 절기입니다. 이번 대림절에 하나님의 기다림을 배웁시다. 기다릴 수 있는 성도가 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도 한 영혼을 기다려주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성도가 됩시다. 하나님은 불충하고 실패한 우리에게 충성하여 실패를 만회하도록 기다려 주십니다. 이 기다림을 알고 주신 시간에 주신 사명을 이루도록 조바심 합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더 다듬어지고 만들어 지도록 참아주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과 소원을 알고 이 큰 구원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게 삼가 조심하여 전심전력하여 주님의 형상을 이루어 갑시다. 이것이 기다림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주님이 오시는 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렇게 기쁨으로 주님을 맞게 할 줄로 믿습니다. 이 기다림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