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되는 일
018,1,7, 주일강론
본문 : 눅14:25-35
말씀 : 라인권목사
한 해가 가고 신년 주일을 맞았습니다. 금년 한 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주일예배에 복을 주시고, 일마다 때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새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원하기는 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오늘의 본문 25절은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 했지만, 26절 이하의 말씀은 “아무나 다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게 35절을 보면 심각해집니다. 참 제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이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된다는 것은 결국은 대우받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주님께도 세상에서도 쓸모가 없기 때문에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고 짓밟히는 대우를 받는 천한 사람으로 전락 한다는 거지요.
왜 이런 비참한 결과에 이르는 사람이 될까요? 참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확신과 신념이 없다는 거고, 자기 확신과 신념을 지켜내는 결단과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등학생들을 지도할 때 주일에 공부하는 문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청년부에서 온 청년 하나가 주일도 공부해서 대학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토론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일에 공부하느냐? 안하느냐는 여러분 믿음에 달려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믿는 신앙과 신념을 지켜내는 결단과 의지이다. 이런 결단과 의지가 없으면 무엇을 이루어내는 사람, 그래서 쓰임 받는 사람은 될 수가 없다. 자기가 확신하는 바를 지켜내는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제가 고등부 하던 때 대학에 가장 많이 들어갔습니다. 그 중에 목사 된 이도 여럿입니다.
따라서 참 제자가 되지 못하면 맛 잃은 소금 같이 된다는 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는 일에 우리 인생이 걸려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주고 있습니다. “가족과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이 말씀이 실제로 가족을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소유보다 예수님을 우선하라는 뜻입니다만, 필요하면 가족이나 자신의 생명과 소유까지도 포기할 만큼의 가치가 예수의 제자 됨에 있다는 걸 분명히 합니다. 제자 됨에는 금생과 내생의 모든 행복이 있지만, 아니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 때문입니다. 제자됨에 영원한 행복이 있다는 확신과 이 확신 때문에 심지어 사람을 가장 약하게 만드는 가족, 자기 목숨, 소유까지도 바치며 나가는 사람이 하나님께도 세상에서도 쓸모 있는 인생이 되게 하고 대우 받게 한다는 겁니다.
요셉이나 다니엘을 보십시오. 감옥에 가고 사자 굴에 가도 자신의 신앙과 신념을 지켜내는 믿음의 결단이 하나님께도 세상 임금에게도 없어서 안 되는 사람이 되게 하고, 이방임금에게도 대우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게 진짜 빛이요 소금 아닙니까? 제자 되는 일, 자기신앙에 성공하지 못하면 자기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되지 않은 이는 자기의 삶에도 성공할 수 없고, 쓸모가 없어 맛 잃은 소금과 같이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대우를 받게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명철이요,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신앙생활 분명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언가 해내고, 똑 부러지게 사는 것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이 본문에서 “내 참 제자가 되는 것은 선택과목이 아니라, 인생을 걸어야할 필수 과목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참 내 제자가 되어라.”고 하시며, 제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주님의 제자훈련의 오리엔테이션입니다. 제가 총신에 입학하자 원우회가 발간한 사육배판의 두툼한 책을 신입생들에게 배부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은 3년간 이수할 신학과목을 담당 교수들이 그 과목이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와 그 공부에 읽어야할 도서목록 기록한 거였습니다. 그 책 서문을 당시 학장이시던 김희보 목사님이 쓰셨는데 “나라면 앞으로 삼년 동안 이렇게 공부 하겠다”며 신학을 하는 방법과 목적을 서술한 거였습니다. 제가 그 서문을 읽고 신학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했습니다. 이게 제게 큰 빛이 되었습니다. 공부할 것이 무엇인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제자 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참 제자가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우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데 어떤 일이 요구되는지를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제자가 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망대를 세우려면 먼저 비용이 얼마나 들지, 그리고 자기에게 충분한 비용이 있는지를 파악해야지요. 이 작업을 안 하면 중도에 공사가 중단 되어서 비웃음거리만 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이 비유를 하셨습니까? 그것은 당시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각광을 받는 점만 보고, 주님의 십자가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이것을 알고는 다시는 주님과 함께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고향교회 장로님 아들이 육사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입교했다가 퇴교 당해 돌아왔습니다. 장교가 되는 일이 멋진 일일 줄 알았는데 실망스러운 점이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결코 낭만적인 것이 아닙니다. 필요하면 가족과 소유와 자기 목숨도 이선에 둘 것을 요구받고, 시험이 되고, 의지와 인내가 요구되고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거기에 자신과 가족의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 때에 시험이 올 때에 예수님을 선택하고 따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할 줄 알아야 공부도 되고 예술도 되고, 사업도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일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를 아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제자가 되는데 필요한 대가를 지불할 계획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31-32절의 뜻입니다. 임금이 전쟁할 때에 자기에게 있는 일만 군대로써 침략하는 적의 이만군대를 대적할 수 있는지를 헤아리라. 만일 못 하겠으면 화친을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계산해보고 능력이 없으면 포기 하라가 아니라 차선책이라도 택하라는 겁니다. 요지는 일만으로도 이만을 이길 전략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정말 대책이 없으면 차선으로 화친하라는 거지요. 이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막아낼 계획, 전략을 세우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하겠다고 결단을 하지만 어떻게 할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성경을 언제 어떻게 얼 만큼 읽을지, 새벽 기도하기 위해서 몇 시에 자고, 어떻게 일어날지 이렇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전도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전도 못하는 것도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서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공부와 사업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금년 새해 내가 제자 되는 그 일을 어떻게 할지를 구체적으로 계획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제자가 되는 일에 인생을 걸고 추구해 나가갈 것을 결단하라는 것입니다.(34,35) 맛 잃은 소금같이 된다, 요지는 이런 대우받는 사람 되겠느냐? 그러니까? 제자 되는 일에 목숨 걸라! 이 결단을 촉구 하신 것입니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멕시코 만에 상륙했을 때 코르테스 장군은 700여명의 부하들 앞에서 타고 온 배를 불태워버렸습니다. 군사들은 불타 멕시코 만에 가라앉는 배를 보며 자기들이 살길은 이기는 길 뿐이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 소수의 사람이 남미를 정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 인생이 어디 걸려 있는지를 알면 결단합니다. 목숨을 걸고 하게 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은혜로 가족여러분! 지금 우리는 어떤 처지입니까? 지금 우리는 어떤 대우를 받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받는 대우가 내 제자 됨의 정도는 아닐까요? 내가 참 제자 되지 못한 것이 내가 받는 대우의 원인이 아닐까요? 대우 받지 못함이 아니라 제자 되지 못한 것, 주님처럼 되지 못한 것, 이걸 원통히 여기고 금년 새해 온전한 제자 되기를 결단합시다. 제자 되는 일에 요구되는 대가를 다 내고 다 지불할 것을 결단합시다. 제자 되는 일에 목숨 거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일, 참 제자로 자기를 세워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은혜로 우리 은혜로 가족이 하나님께도, 이 세상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셔서 하나님께도 대우받고, 세상에서도 대우 받는 복된 역사가 일어나는 금년 새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