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강 해/새벽 정신으로 읽는 욥기 강해

하나님과 대면하여 변백함

아브라함-la 2018. 10. 4. 12:29

소발의 말에서 욥은 자신에게 해당사항이 없는 것으로 자기를 고치려는 친구들이 쓸모없는 의원에 불과하며, 그들의 신앙과 신학의 수준이 자기에게 미치지 못함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욥은 너희들이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를 편들었지만, 그 논리는 오히려 하나님을 속이는 자로 만드는 토성과 같이 부실한 것이라고 합니다.(13:1-12)이로서 욥은 사람과의 대화에는 해결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제 직접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께 변백하려고 하나님을 상대로 말 합니다.인생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이를 용납하시지 않으신다면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합니다. 욥이 이렇게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말하려는 것은 이제 그는 고대 죽을 형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죽어도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 남지 않는 목숨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하는 것이 욥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욥은 비록 하나님 앞에 변백하는 자기를 죽이신다고 해도 자기는 그 하나님을 의지하겠다고 합니다.(15) 해답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죽이실 지라도 하나님께 직접 자기를 변백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말하는 것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기에게 구원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16,18)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치지 마시고, 주의 위엄으로 두렵게 마시고, 하나님이 먼저 나를 불러 주시고 대답하여 말 할 수 있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변백합니다. ‘내가 죄 없는 것은 아니지만(23)그래도 순전한 내게 이 큰 재앙을 주시는 것은 나를 원수처럼 대하셔서, 어릴 적에 참외설이 한 죄까지 들추어내어 벌을 주어 나를 좀먹은 옷같이 만들어 버리셨습니다.’(24-28)

 

이렇게 욥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 앞에 변명하고, 변백하고, 대화 하고 대답하려고 합니다. 9장에서 발원한 이 시도가 지금 13장에서 비등점을 향해서 막 끓어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라는 것을 성경은 찬연히 증거 합니다. 이것이 호세아가 이른바 우리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 한 다는 것이며, 찬미의 제사, 입술의 열매요, 바울이 말한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한 신앙고백입니다.

 

이 믿음이 일의 뿌리이신 그리스도에 이르게 하여 하나님을 눈으로 뵙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욥은 이렇게 목숨을 걸고 하나님 앞에 변백하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은 해결이신 하나님께 말하여 하나님께 육박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욥의 믿음에는 이렇게 하나님을 이해하고 만나려고 하나님께 육박해 들어가는 모험정신이 있습니다. 이게 욥의 친구들과 욥의 근본적인 차이이자 이게 욥의 신앙함입니다. 욥의 친구들이 같은 말을 고장난 엘피판 돌리듯 하고 발전이 없는 것은 이 정신과 이 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욥의 친구들과 같은 구태의연함을 버리고, 욥과 같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을 새롭게 이해하고 만나려고 그 분앞에 말하여 들어가는 신앙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새벽기도가 이 신앙함의 거룩한 모험이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만난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 믿음을 소원합시다. 이 믿음의 모험으로 더욱 그리스도를 얻으시고,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가는 은혜에 이르기를  절실하게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