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la 2019. 4. 10. 18:45

                     

 

  겨울이 꼬리를 내리던

 지난 2월 어느 날 밤

     인적없는 공원을 홀로 걷는 내 걸음에  

     그림자 하나가 앞서 가고 있었지요,

 

    가로등 밑을 지나면

         그림자가 하나가 까맣게 생겨나

      가로등에서 멀어질 수록

            그림자는 기다랗게 자라다가 

         다른 가로등에 가까워지면

         수묵화의 농담처럼 그림자 빛이 앝아지다

         마침내 가로등 바로 아래서는

       사라지고 마는 현상이

    어두운 산책길에 반복 되는게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제 그림자를 앞세우고 무심이 걷다가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시102:11)

             마치 지금 막 말씀하심 같이.......   

             

 

여기에 생각이 이르자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와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고"(시39:6)

이 시편의 말씀이 나를 찔렀습니다.

 

이제 몇년 아니면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인데

지금까지 한 다고 한 일들이

 괜한 요란을 떨지 않았나 싶고,

내가 무엇을 했나

    실없이 덧없어졌습니다. 

 

가도 가도 따라잡을 수 없는

내 외로운 그림자를

따박 따박 따라가는 것이 

  수행을 하는 것만 같고

   참 쓸쓸하게 하는 밤이었지요.

 

   그렇게 내 그림자 앞세우고 홀로 걷던 밤

내 인생의 날도 저물어

그림자 같음이 새삼스러워졌습니다.

"내 날이 기울러지는 그림자 같고"

그랬습니다.

해가 서산에 걸리면 

산 그림자 길어지듯

이제 내 인생의 산 그림자 길어저

 황혼에 물들기 시작했음을

그림자와 더불어 

제 몸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아직은 빛이 있어서

  일할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을 위하여

 길어지는 내 산 그림자를 

 어둠이 덮기까지를  

제대로 살고, 폐는 되지 않으려

숨이 차지 않는 그림자를 앞세우고

산을 오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

   후일에 사람은 가도  거두어지지 않을  

  내 인생의 그림자가

천하지 않도록,

 

 

이 그림자 인생길에

 때론 버성기기도 하지만

함께 그림자 드리우고

 드리운 긴 그림자를 함께 보며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입니다.

 

 격랑의 바다를 건너야 했던

그래서 마치 그림자가

다니는 것 같던 시절에

말없는 그림자같이

곁에 있어 준 사람의

  긴 그림자가 오늘 밤 안쓰럽습니다.

                                        

 

벗나무 가지에 봄이 잔뜩 부풀어 가는 밤!

그 사람과 걷다가 

앞서 가는 두 그림자를 보고

멈추어서서 폰카를 대자

 이 뜻을 알고 싱긋 웃습니다.

동반자 인식이 기분 좋은게지요.

그래서 우리는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 (아4:6)

가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 둘의 그림자에

그림자들지 않는 그 분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새롭게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자가 다니는 것 같은

덧없을 인생이

그분이 계셔 헛되지 않음을! 

 

그래서 오늘 밤

그림자 드리우며 홀로 걷는 산책 길의

이제 막 피어난 벗꽃이

더욱 곱고 애틋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