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연말 심판의 위로와 소망

아브라함-la 2019. 12. 29. 20:20

019,12,28,송년주일  

본문 : 창8:20-22 

말씀 : 라인권목사

       전도자가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라고 말씀하심 같이 어느덧 한 해가 기울어 금년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지는 것과 한 해가 가는 것이 일상이지만 이게 우리에게 심판이 됩니다. 신학을 할 때 박윤선 목사님은 목사는 주일마다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는 주일이면 강단에 서야 합니다,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면 목사는 청중의 반응에도 심판을 받지만, 말씀 사역에 대하여 스스로 심판을 받습니다. 이것은 목사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것이지만 이것이 목사를 성장시키는 한 요인이기도 합니다.

 

연말이 심판이 되는 현상

이렇게 정상적인 사유의 사람이라면 하루해가 지면 그날 삶에 심판을 받습니다. 특별히 한해가 기울어 연말이 되면  조직에서 평가를 받습니다.  물론 금년 한해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평가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별다른 성과가 없습니다. 년 초에 기도하고 계획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입니다. 평년작도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금년이 작년만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금년을 잘 못 살았다는 후회가 가슴을 치기도 하고. 연말이 되는 것이 괴로울 뿐만 아니라, “나는 안 되는구나!” 이렇게 좌절하고, 새해와 인생에 대하여 소망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아의 생명의 언약

오늘의 본문은 이런 연말 심판을 받고 있는 우리에게 복음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홍수 심판을 통과한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시고 주신 언약입니다. 사람이 나면서부터 악해서 항상 악한 계획을 해도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않으셔서, 땅이 있을 동안에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않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여기의 심음과 거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쉬지 않는 다는 것은 인간의 악함에도 생존조건을 계속 보장하신다는 뜻입니다. 즉 오늘도 여전히 아침에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생존을 보장하는 하나님은 은총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노아의 생명의 언약이라고도 부르는 이 말씀이 지금 금년을 보내며 연말의 심판을 받고 있는 우리에게 복음인 까닭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홍수심판에 건재 하는 죄성이 심판 받게 만들어

첫째, 이 노아의 언약은 우리가 연말이면 심판을 받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진단해 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왜 우리가 안 되고,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왜 작년 송구영신 예배에 작정하고 결단한 것을 헛것이 되게 한 까닭이 무엇이지를 규명해 주시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 마음의 죄성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즉 죄성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했어도, 그 홍수 심판에서 노아와 그 가족이 구원을 받았어도 아담이 하나님을 어기신 그 죄성은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죄성은 노아와 그 가족도 타락케 함

여러분! 이 죄성이 노아와 그의 후손들을 어떻게 만들었습니다. 노아와 그 여덟 식구가 홍수가 걷히고 방주에서 나와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노아와 그 가족은 홍수에서 구원하신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제단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이 제단을 쌓을 때에 이 감격으로 하나님 앞에 결단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죄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렇게 다짐하고 결단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결단했던 노아와 그 후손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노아는 취해서 시험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손들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 후손 아브라함 때는 아브라함도 우상을 섬기는 실정이 된 것입니다.


죄성이 인간을 어쩔 수 없는 존재로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인간은 홍수심판에서 구원 받았어도 별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인간을 이렇게 별수 없게 만들었습니까? 나면서부터 악한 이 죄성 때문입니다. 이 죄성이 방주에서 나와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으며 드린 맹세와 결단을 무위로 그치게 했습니다. 이 죄성이 사람을 육신과 이 세상에 취하게 합니다. 그래서 바벨탑을 쌓게 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따르게 했습니다. 이 죄성이 있는 한 어쩔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해서 다시는 땅을 저주하시지 않겠다고 하신 겁니다. 인간의 죄성을 따라서 심판하신다면 이 세상은 남아 있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죄성은 인간을 어쩔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겁니다.

 

여러분! 이게 꼭 내 일이고 내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우리가 해마다 연말이면 심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주에 나온 노아의 가족과 같이, ㅅ송년예배나, 신년에배에서나, 송구영신의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 앞에 새해는 믿음으로 바로 살겠다고 회개하고, 결단합니다. 그런데 다시 한 해가 가서 연말에 보면 여전히 알면서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결단하고 계획한 것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회개하고 고칠 것을 고치지 못하고,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금년이 작년과 다름이 없습니다. 변화와 발전이 없습니다. 그래서 연말이면 심판을 받고 후회합니다. 다시 송구영신예배에서 참회 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이게 연말을 맞는 우리의 실존입니다.


이 옛사람 거짓자기가 문제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되는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홍수로 심판해도 남은 죄성 처럼. 십자가로 구속받아 거듭나도 남은 이 비옥한 범과성 때문입니다. 이걸 옛 사람, 옛 자기, 거짓 자기라고 했지요? 이게 원인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 거짓자기 때문에 못하고 안하는 겁니다. 이 자기 때문에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치는 겁니다. 이 자기 때문에 계획하고, 소원하면서도 안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 해를 보내며 생각해 보면 내가 변화되지 못하고, 성장하고 발전하지 못한 것. 다 이 옛 자기로 불리 우는 거짓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절감할 것입니다. 이 자기가 믿지 못하게 하고, 순종하지 못하게 하고, 회개하고 고치지 못하게 하고, 아는 것을 행치 못하게 하고 게으르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이 옛 자기로 불리는 거짓 자기가 어떻게 나오는 지를 강해한 것입니다.

 

무엇이 병인지 아니 고칠 수 있어

여러분! 이렇게 거짓자기 연말이면 심판을 받게 하는 원인임을 규명해주시는 것이 왜 연말 심판의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됩니까? 무엇 때문에 병이 났는지 알아야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면 고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지난여름과 가을 내내 우리 인생 병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셨습니다. 이 거짓 자기, 옛 자기가 문제라는 충분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듣지 못해서 오늘도 우리 하나님은 이는 사람이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이렇게 우리 인생 병이 옛 사람, 거짓자기라는 것을 진단해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로 자기 문제를 알았습니다. 알았으니 회개하고 고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옛 자기 이 이 놈을 이 마지막 주일에 거짓 사람으로 고백하고 십자가로 처리합시다. 그러면 내년은 연말이 감사가 되고 찬송이 될 줄로 믿습니다.

 

심판이 아닌 구원계획안에 있게 하심

둘째로 이 노아의 언약이 연말의 심판에서 소망이 되는 것은 이 말씀은 우리의 문제만 규명한 것이 아니라 해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이 아닌 구원이신 예수 안에 있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이 어려서부터 그 마음의 계획이 악해서 사람을 인해서 땅을 저주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 때문에 포기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홍수로 심판해도 인간의 죄는 치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을 근본적으로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통해서 예수님이 오시게 해서 죄를 속하시고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새 마음을 주셔서 율법이 본성이 사람이 되게 구속하시겠다는 것입니다.(36:26,27)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고후5:17)

 

여기에 지금 연말 심판을 받는 우리의 위로와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후손들이 죄성으로 어쩔 수 없을 지라도, 하나님을 그들을 포기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계획 안에 두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계획 안에 두시니 문제가 있어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삼년구미 불위황모三年狗尾 不爲黃毛라는 말처럼 우리가 변화가 안 됩니다. 백년하청 百年河淸 같습니다. 이런 우리라도 하나님의 구원계획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신 예수 안에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 인생의 해답이시고, 해결이십니다. 예수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당신의 온전하심까지 자라가게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 안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금년을 우리가 옛 사람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 해도 예수 안에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는 것이 성공입니다. 인생성공은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은 인생을 구원하고, 영원한 심판에서도 승리하는 줄로 믿습니다. 지금 연말심판으로 이 예수를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구원 안에 기회를 주심

셋째, 이 노아의 언약은 죄로 말미암은 어쩔 수 없음에도 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기회를 주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땅이 있는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서두에서 밝힌 대로 생존조건을 지속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나면서부터 악해서 악한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이 다시 심판해서 쓸어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인 예수 안에서 구원에 이르도록 여전히 삶의 기회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해가 뜨는 것, 추위와 더위가 오는 것,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계속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생존을 보장하여 기회를 주시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해가 뜨는 것은 내게 아직도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내게 아직 시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낮과 밤이 지속 되는 것은 내게 소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잘라버리시지 않고 기회를 주심

여러분!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시고, 은혜입니다. 우리는 어떤 형편입니까? 해마다 마지막 주일과 송구영신예배에 후회하고, 회개합니다. 이걸 마치 개가 토한데 다시 가듯 반복합니다. 이런 우리는 참 개꼬리 삼년을 굴뚝에 두어도 그대로 인 것 같고, 백년하청입니다. 우리스스로 하다명년이라고 한탄합니다.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싹수없다고 잘라버리시거나, 배제하시거나, 버리시거나. 심판해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여름과 겨울이 낮과 밤이 계속되게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문제가 있어도 우리에 여전히 일할 낮과 쉴 밤을 주십니다. 여름과 겨울을 주셔서 심고 자라서 거둘 수 있게 하십니다. 추위와 더위라는 시련으로 연단해서 익게 하시고 회개케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살게 하십니다. 고치게 하십니다. 성장하여 당신의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오늘 아침 해가 동녘에 뜨는 이유입니다. 이게 여전히 하루해가 지면 내일의 해가 뜨는 이유이고, 한 해가 가도 새해가 여전히 오는 이유입니다. 한 해가 가고 새해의 해가 뜨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참아 주시고, 기다려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금년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금년이 후회스러워도 믿음은 낙심하고 좌절하여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과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뜬 해. 오늘 밤에 뜨는 달, 오늘의 추위가 하나님이 기회를 주신다는 확증이요, 소망이 있다는 확증입니다. 해마다 연말이 심판이 되는 어쩔 수 없는 우리라도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습니다. 새해가 있습니다. 새해에 잘하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연말이 심판이 되는 것이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는 은혜라고 믿습니다. 연말이 괴로운 우리에게 위로가 될 것 같아서 주보에 올린 제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본래는 나목의 기도이지만 여기서 송년을 위한 기도라고 바꾸었습니다.


섣달그믐의 해가 능선의 나목에 걸렸습니다.

발아래 쌓여 썩어가는 구습 위에 또 허물을 쌓고

허영허영 북풍에 떨며 우는 가지에 비끼는 빛은

저렇게 밝고 붉습니까? 

   

오늘이 어제 같이 그 키로 있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잎은 무성하나 열매 없는 내가 싫습니다.

땅만 차지하고 있다는 자괴로 떨며 가슴 치면서도

토한 데로 돌아가는 자기에 절망합니다.

 

지금 헐벗은 가지로 가슴을 치는 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안 했다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하지 못함을 믿으면서 살지 못함을

확신하는 것을 행하지 못함을 이렇게 자책합니다

    

매년 참회하면서도 참회로 끝나는 것이

내 키를 금년을 작년의 키로 있게 함을 압니다.

그래서 회개의 눈물이 스스로 가증할지라도

그래도 주 앞에 울며 몸부림치겠습니다.

그것이 내 소망이며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발아래 썩고 있는 구습위에 낙엽을 쌓아가는 나목이지만

그래도 참회로 우는 외로운 내 가지에

송년의 해를 걸어 주십시오.

그리고 황혼 빛으로 곱게 물들여 주소서!

엄동을 지나 썩은 낙엽을 거름 삼아 자라갈 수 있도록

주님! 소망의 해를 걸어주십시오.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말대로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직역하면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다,” 입니다만 번역자는 더 문학적으로 의미가 살아나는 멋진 번역을 했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거야!” 그렇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것입니다. 은혜로 가족여러분! 연말이 심판이 되는 우리게 우리 하나님은 내일의 해를 주십니다. 우리 죄성이 우리를 별 수 없게 해도 하나님은 내일의 해가 뜨게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구원과 해결을 만나도록 내일의 해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연말의 심판의 가슴을 찢는 후회로 예수님께로 나갑시다. 그래서 내일 동녘 하늘의 아침 해와 새해가 소망이 되시고, 소망을 이루시는 구원의 날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