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
본문 : 창12:1-5,롬4:11-12
말씀 : 라인권목사
지난주일에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를 통해서 인간의 자력으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대한 신뢰라는 믿음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믿음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브람을 통해서 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되돌아가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왜 하필 아브라함에게서 믿음을 배워야 하느냐의 문제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이 작업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 대한 아브라함의 의미와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러면 우리가 왜 아브라함에게서 우리 기독교 신앙을 배워야 하느냐? 그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우리가 믿는 믿음의 조상이기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로 이것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한 줄로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을 선택하여 부르셔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가 받은 복을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복을 한마디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 구원과 그의 나라를 말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요, 아브라함이 이 복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았습니다.(창15:6)그래서 우리가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복에 참여하려면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과 동일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롬4:1-18절까지 이 아브라함이 “믿는 모든 자의 조상”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인 것을 길게 설명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브라함에게서 믿음을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원조요, 기독교신앙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이 정도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불러서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큰 구원의 엄청난 스케일과 밑그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공부해 나가봅시다.
새 피조물이라 불리는 새로운 인류의 시조
첫째,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 새로 지으시는 새로운 인류의 시조라는 뜻입니다. 왜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새로운 인류를 이루시려고 하셨을까요?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의 죄와 죄 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아담을 인류의 머리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지 않고, 꾀를 내어 불순종하므로 죄를 죄어 타락했습니다. 이 인간의 죄와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노아의 홍수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인간의 죄가 하나님께서 아담 이후의 인류를 홍수로 쓸어버리시지 않으면 안 될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예 홍수로 이 사악한 세상을 심판하여 멸하시고, 노아를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예배를 보존해나가게 하셨습니다.
홍수심판으로 안 되는 인간의 죄와 죄성의 실상
그러나 이 무서운 홍수 후의 새로운 인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데라와 아브람은 홍수 이 후의 인간의 상태를 보이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셈의 족보를 계산해 보면, 아브라함의 소년 시절에는 노아가 생존했습니다. 그가 하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는 아직도 샘이 생존해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부르심을 받은 때는 홍수 후 365년 밖에 안됐습니다. 그런데 홍수로 심판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배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데라와 아브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셈족임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섬기는 정도가 되었습니다.(수24:15)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해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동물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고 하셨습니다.(롬1:21,23,25) 데라와 아브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거짓된 우상으로 바꾸어 섬긴 사람입니다. 이게 인간이요, 인간의 죄요 죄성입니다. 이 죄는 노아의 홍수심판으로도 고칠 수 없고, 홍수의 교훈으로도 안 되고 바벨의 심판으로도 고쳐지지 않는 특별 악인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인류가 되어야만
그래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변화 된 새로운 피조물, 새사람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영이 구속되고, 거듭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새로운 본성이 되어 진 사람,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에 새겨진 법이 된 새사람이 되어야 하나님 영화롭게 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인류를 만드시려고 우리 하나님께서 잉태할 수 없는 아브람을 선택하고 부르셔서 육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즉 하나님의 약속과 영으로 난 씨의 새로운 민족을 만드시고. 이 세상 나라와 다른 민족과 왕국을 세우게 하여 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드리고 그에 대한 예배와 섬기는 도를 보존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게 잉태하지 못하는 아브람을 세우신 이유입니다. 육정으로가 아니라 약속과 믿음으로 난 새로운 후사여야 이 거룩한 새로운 인류의 시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우리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의 구속으로 지으시는 새로운 인류의 시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죄는 홍수심판과 그 교훈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바벨의 심판이 임한 것을 보아도 인간의 죄성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인간의 마음이 구속으로 근본적으로 변화 되어서 하나님과 하나님을 섬기는 법이 마음의 법이 되게 성령으로 거듭난 새 마음을 가져야만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겔36:25-27)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선택과 부르심으로 이 큰 그림을 그리신 겁니다. 이 큰 그림, 즉 아들로 구속하시고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내시려고 아브람을 부르시고 아브람에게 이 복을 주셔서 거듭난 새로운 마음을 가진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 큰 구원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여호와 그는 거룩하시다!’고 하게 만드는 겁니다.
새로운 인류의 대표 둘째 아담이 오시는 가계의 시조
둘째,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은 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지으실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자손으로 오시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한 성업에 왜 하나님께서는 잉태하지 못하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까요? 후사를 생산하지 못하면 새로운 민족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생산하지 못하는 아브라함 부부를 선택하셨을까요? 이것의 첫째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옛 세상 사람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민족을 만들기 위함이기도 하시지만 아브라함은 이 새로운 인류의 대표이신 둘째 아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오시게 하는 가계 조상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둘째 아담으로 아담과 같이 택한 백성의 대표가 되셔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담과 같이 땅에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시고, 아담의 자손과 같이 혈과 육으로 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십니다. 따라서 이 예수가 오시는 씨는 혈과 육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씨는 약속을 따라서 낳아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아브라함의 몸에서 나야 하되(창15:4)신령한 자손이여야 하기 때문에, 육신으로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후사가 되지 못하고 믿음으로 사라가 낳은 이삭이 후사가 되게 하셨습니다.(창21:12)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스마엘을 육신을 따라서 낳았다고 했고, 이삭은 약속과 성령을 따라서 난자라고 한 것입니다.(갈4:23,29)그래서 하나님은 잉태하지 못하는 아브라함부부를 선택해서 약속과 믿음을 따라서 하나님의 이적으로 된 이삭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셔서 우리 조상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 큰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이 없으면 참 이스라엘이 아닙니다.(롬2:28,29,4:12) 하나님의백성이 되는 것은 혈과 육,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믿음으로 이삭을 낳은 것과 같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혈과 말씀과 성령으로 위로부터 나야만 하나님의 백성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요1:12,13) 이 믿음으로 거듭나 구원에 이르고 위로부터 영으로 나게 하신 아브라함 안에 있는 모든 새로운 인류가 예수로 한 몸, 교회를 이루는 이 놀라운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아브라함이 조상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도가 분명하게 아브라함을 통해서 계시됨
셋째,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 것은 아브라함은 이 구원에 이르는 기독교의 믿음의 도가 인류역사에서 처음으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고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아브라함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아담 자체가 둘째 아담의 계시이고, 타락과 함께 지어 주신 가족 옷과 여자의 후손이라는 원복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벨과 노아를 통해서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이 믿음의 도는 마치 수수께끼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브라함에게서 마치 정오의 태양과 같이 믿음으로 되는 구원이 드러났습니다. 창15:5-6을 봅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조상 아브람이 믿음으로 의롭다 인치심을 받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에서 믿음으로 되는 구원과 그 구원 받는 믿음이 무엇인지 인류역사상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믿음과 동일한 믿음으로 가져야 구원을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과 거룩한 나라가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원조요, 믿음의 기준입니다.
믿음의 은혜성이 아브라함에게 확실하게 나타남
넷째, 아브라함이 믿음이 조상인 것은 그에게서 믿음이라는 하나님의 은혜가 새롭게 그리고 분명하게 나타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을 들으면 아! 아브라함이 대단하다, 이런 생각과 더불어서 ‘왜 하나님은 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기관으로 아브라함을 택했을까?’라는 질문이 나올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더 종교적이고, 더 신앙적이고 헌신적이며, 경건하거나 의로워서 일까요? 오히려 아브람은 홍수시대 사람들을 보았으면서도 우상을 섬긴 사람입니다. 거기에다 혼인하면 누구나 자식을 낳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까?
이것은 그 선택의 원인이 아브라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이게 은혜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이 먼저 아브람을 찾으시고 부르십니다. 아브라함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나타내신 것 같이 당신을 나타내시고 말씀해 주신 적이 없습니다. 이 부르심이 아브람의 경건으로 된 것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 약속한 복, 즉 그리스도와 그 나라가 행위가 아닌 은혜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믿음이라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계시가 가장 인상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은혜로 되는 구원의 백성의 조상인 줄로 믿습니다.
믿음이라는 인간의 반응의 모본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 이유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게 아브라함은 우리 믿음에 대한 하나의 임상적인 사례요 표본이라는 점에서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 같이 믿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은혜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은 이것의 가장 정확한 모본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언약은 자동적이 아닙니다. 여기에 대한 믿음의 반응을 한마디로 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믿고 순종하므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약 2:23)여기까지 어떻게 믿음으로 반응하여 성장해 나가야 할지, 아브라함을 모델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공부해나갈 것이기 때문이 이 정도만 합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세워서 우리로 하여금 믿음이 무엇인지 그 믿음으로 우리가 무엇을 행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알게 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교육은 모방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라는 좋은 믿음의 본을 주셔서 우리도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으로 동일한 복을 받게 하신 것을 찬양합시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본을 따라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온전히 배워서 우리도 우리 자손에게 믿음의 본이 되시고, 우리 뒤에 믿고 믿어야 할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