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하나님의 구원계획(2)

아브라함-la 2020. 12. 13. 15:15

 

2020,12,13, 주일

본문 : 출6:6-8

말씀 : 라인권목사

 

         평안들이시지요, 아무래도 이번 성탄절은 아무래도 비 대면으로 성탄절을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주께서 평강 주셔서 건강한 몸으로 성탄절을 맞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주일에 외부적인 원수에게서 구출로서의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말씀 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내부적 원수에게서 구원하시는축복(blessing)으로서의 구원을 공부하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내부적인 원수

하나님의 백성들의 원수는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부에도 있습니다. 이 내부에 있는 원수가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이 죄라는 내부적 원수는 외부적 원수보다 더 무섭고 치명적이라는 것은 이 세상나라의 역사에서도 입증된 것입니다. 저 로마가 망한 것은 외부적 원수들 때문이 아니라, 내부적인 부정과 부패와 부도덕에 있었습니다. 로마의 부패가 어느 정도였나를 단적으로 입증한 게 로마총독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준 사건입니다. 로마는 법률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부패해서 법이 도리어 폭력이 된 것입니다. 그때 로마가 망했습니다. 이렇게 미국의 지원을 받은 장개석이 망하고 남베트남이 망한 것도 내부적 원수 부정부패 때문입니다. 내부적 원수가 외부적 원수보다 무서운 원수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외부적 원수 때문에 넘어진 적이 없습니다. 자기의 죄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자기가 원수입니다. 이스라엘 왕들이 망한 것도 자신의 죄 때문이며, 애굽에서 구출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젓과 꿀을 먹던 이스라엘이 그 젓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뽑힌 것은 한 마다로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망하는 것은 외부적 원수 때문이 아니라, 자기 죄라는 내부적 원수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 만 안 지으면 하나님도 벌할 수 없으십니다. 그러나 죄에 빠지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셔야 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백성들의 약점입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치십니다. 그래서 발람이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한 것입니다.(31:16)

 

내부적 원수 죄란

그러면 이 내부적 원수인 죄란 어떤 것입니까? 16:21,22에 이 죄라는 같은 말을 세 가지 다른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범죄아원이란 말로 부정을 의미합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내게 부정이 있거든 죽이라”(삼상20:8)고 한 말에서 보듯 사악한 마음과 거기서 나오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리고 죄악폐사라는 말은 어긋나다, 거역하다는 뜻인데, 정치적으로는 폭동, 신뢰의 파괴, 반란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서 검찰 총장이 나는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니다.”고 한 것은 반란입니다. 이렇게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란입니다. 그리고 ” “하타는 말로 목표를 놓치다” “실패뜻으로 군대의 사격연습에서 온 말입니다. 이렇게 죄는 틀리고 놓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실패가 죄입니다. 이렇게 죄는 트리오입니다. 마음의 사악함이 하나님을 반란하여, 하나님을 놓치고 실패하게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게 죄입니다. 이 죄가 자멸하게 합니다.

 

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백성의 연약함

문제는 이 죄가 외부적 원수에게서 구출 받은 백성들에게도 이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이 죄성이 내재하고, 이 죄성이 보편적이라서 죄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출애굽과 홍해의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사실과 여호수와와 동시대 인물들이 죽자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따랐다는 사실이 입증합니다. 이게 육신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의 연약함입니다.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어도, 사흘 길에 물이 없으면 걱정되고 시험 드는 것이 육신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왕과 물질이 더 크고 무섭고 귀합니다.

 

이게 사실은 우리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 받았지만, 죄성이 있어서 영이 원하는 것을 행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않는 악을 행합니다.(7:15.18)무엇을 먹을까 마실까를 염려해서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과 물질을 따릅니다. 이것, 허물(범죄)이라고 하고, 이걸 죄악이라고 하고, 이걸 죄라고 합니다. 이 허물과 죄악과 죄가 하나님과 끊어지게 합니다. 하나님과 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어 불목하게 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삶을 살게 없게 하는 겁니다. 이게 우리의 약함입니다. 이 연약함이 죄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외부적인 원수에게서 구원 받은 백성들을 그대로 방치하시면 스스로 자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같은 사람도 이그 한번 죄로 자멸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제사의식으로 축복(blessing)으로서의 구원인 사죄를 경험케

우리 하나님은 이것을 내다보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자기 백성들의 약함을 아십니다. 이것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구원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당신과의 이상적인 관계 속에서 정상적이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사죄라고 하는 축복으로서의 구원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이 축복으로서의 구원인 사죄를 주시는 은혜의 방도가 예배라고 불리는 제사의식입니다. 따라서 이 제사제도는 하나님이 내신 죄인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제도요, 죄인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거기서 사죄 받고, 말씀을 받고. 해결을 받게 하는 은혜와 축복입니다. 따라서 사죄는 축복(blessing)으로서의 구원입니다. 이게 왜 축복으로서의 구원입니까?

 

첫째 예배로 불리 우는 제사라는 제도를 주신 것이 은혜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용서와 사죄라는 구원은 제사제도를 통해서 왔습니다. 출애굽은 유월절제사와 관계있습니다. 유월절의 피 뿌리는 의식을 순종한 사람은 죽음에서 넘어감을 받았고, 비웃은 사람은 죽음의 재앙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사죄라는 구원이 제사를 통한 다는 것은 번제를 기반으로 한 5대 제사법이 입증합니다. 이 예물을 가지고 죄인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4:2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이같이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속죄한 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이렇게 제사의식을 통해서 사죄의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제사의식, 이 제도를 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께 나갈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 제사의식을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십자가와 믿음이라는 축복의 제도로 구원이라는 축복을 주십니다.

 

둘째 제사의식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제사제도는 희생 제물로 자기를 대리하고, 대속하게 하는 것입니다. 제사는 대리적이며, 대속적 입니다. 따라서 제사의식으로 사죄를 받는 것은 일한 값이 아니라, 선물이며 축복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자는 복이 있도다고 한 것입니다.(32:1)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이 되시고, 대리적으로 고난당하고 죽으시므로 우리를 대속하는 축복으로 주시므로, 구원의 축복을 받습니다.

 

셋째, 이 제사를 통한 구원이 축복인 것은 제물이 사죄의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사유하시는 용서의 축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죄는 이 제사제도를 주신 하나님과 이 제사제도를 믿는 믿음이 필요하고, 회개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사죄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51:17) 믿음과 회개로 사죄라는 구원을 축복으로 선물로 주시는 겁니다. 이렇게 주 예수께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9:12) 그래서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도덕과 윤리, 종교와 수행이 아닌 -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피로 하신 것입니다.(벧전1:18,19)이를 마음으로 믿고 회개함으로 값없이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죄는 축복입니다. 선물입니다. 은혜입니다.

 

사죄 받은 축복

이 사죄라는 말 카파는 아람어 어원은 덮다바벨론어는 깨끗이 닦다입니다. 이 사죄에는 실어 나르다 위로 올리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32:1“ 허물의 사함을 받고가 이 말의 어원이 나사입니다. 미 항공우주국을 나사라고 부르지요. 위성을 로켓으로 쏘아 올리듯 사함은 죄와 범죄의 이륙입니다. 죄와 죄책의 이륙입니다. 성경은 제사로 사죄 받은 축복을 이렇게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너희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멀리 옳기 셨다”(103:12) “모든 죄를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38:17) “우리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7:19) 제사로 이 사죄를 선물, 축복으로 받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사죄의 선물을 받습니다. 이 사죄가 금이나 은 같은 것, 즉 도덕이나 윤리, 종교나 수행이 아니라 오르지 믿음으로 됩니다.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게 우리 하나님의 구원은 이중적입니다. 먼저 외부적 원수에게서 구출하시고, 구출한 백성의 죄를 제사의식이라는 은혜의 제도로 사함 받게 하셔서, 하나님과 화평한 정상적인 관계가 되게 하시고, 자신과 자신이 사람과 사람, 모든 것과 화목 하는 풍성한 삶이 되게 구원하십니다. 이 순서는 상호 유동적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로 죄와 그 결과에서 구속하시고, 구속한 백성을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모든 원수에게서 구원하십니다. 구원은 이렇게 구출로서 구원과 축복으로서의 구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구원계획 안에 있고, 이 구원 안에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라하나님의 열심 이이를 이룰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택한 백성은 반드시 구원받고 이 구원을 경험해 갈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 우리에게 너희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여호와가 누구냐?“고 묻는 다면 우리는 즐거이 그는 우리 구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성탄절은 이 여호와의 열심히 하나님이 구원하는 사람이 되신 구원의 날입니다. 성탄은 이 이중적 구원이 하나 되게 한 날입니다. 따라서 성탄은 이 구원을 현재적으로 경험할 구원의 날입니다. 이번 성탄절이 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번 성탄절을 통해서 여호와 그는 나의 구원이다! 예수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다! 분명히 대답해 줄 수 있게 하시기를 우리 구원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