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의 도리
2021,1,31,주일
본문 : 고전15:7-10
말씀 : 라인권목사
추위가 한창이지만 이번 주 수요일이 입춘입니다. 한 겨울에 입춘이 있는 것 같이 우리 하나님은 고난 속에 소망을 두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로 소생의 봄을 맞이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여러 해를 제직을 임명하면서 직분에 대한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 직분을 받은 우리 직분자들이 가져야할 직분자의 도리, 또는 직분자의 길이 어떤 것인지 살펴서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바로 감당하는 은혜를 받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의 본문을 소개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어떻게 사도가 되고, 사도로 부름을 받은 이후 사도라는 직분자로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아주 짤게 간증한 말씀입니다. 여기에 직분자의 도리, 직분자의 길과 자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도바울의 간증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직분자의 도리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본문에 있는 직분자의 도리는 어떤 것입니까?
직분에 부적자라는 자기 인식이
먼저 이 본분은 직분자가 가질 올바른 자기 인식이 어떤 것인지를 밝혀주시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사도로서의 자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먼저 자기는 사도들 중에 맨 마지막에 보았다고 합니다. 사도의 자격이 부활의 목격자입니다. 맨 마지막에 보았다는 것은 사도의 자격에서 맨 뒤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라고 하셨습니다. 덜 된 사람,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한 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을 “사도라 칭함을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 로 알았습니다. 한마디로 바울은 사도직에 자신이 적격이요, 적합자가 아니라 오히려 부적격자요, 부적당한 사람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바울은 자신을 사도직에 부적격자로 인식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시는 직분은 자격이 아니라, 은혜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본래 교회를 박해한 박해자입니다. 그래서 심판이 합당한 사람입니다. 이런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용서시고 부르신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이는 자기를 죄인 괴수로 압니다. 이 은혜와 부르심을 감당 못할 부적자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에게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복음의 직분에 걸 맞는 인품과 재능과 능력이 없는 부적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본문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바울은 이 복음의 직분에 부적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치 싸구려 질그릇에 보물이 있는 꼴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자로 불리 우는 영국의 맥체인목사는 자신이 목사직에 부적하다는 느낌 때문에 고뇌 하지 않은 밤이 단 하루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인품도 능력도 재능도 미치지 못하지만 불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자격이 아니라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게 직분자의 도리입니다.
저는 이렇게 자기를 직분에 적격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적격으로 아는 이 “자기인식”이 진짜 직분자의 자격이라고 믿습니다. 자기를 이렇게 은혜 아니면 안 되는 부적자로 알 때에 구속하신 은혜에 감격해서 자기를 주님의 것으로 알고 주님만을 위해서 살겠다는 헌신의 결단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이것이 직분자의 도리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를 직분에 부적격으로 인식할 때 주님 앞에 엎드리게 되고, 이것이 능력이 임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적격으로 아는 사람은 나는 사도다, 나는 장로다, 나는 집사다, 이렇게 직분을 귀하고 영광스럽게 여기고 직분을 다하는 직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은혜로교회 직분자들은 자신을 직분에 부적한 자로 아는 이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은혜로 자기를 부적격으로 깊이 인식해서 구속의 은혜와 직분에 감격이 있는 진짜 자격이 있는 직분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더 많이 수고하는 충성이
그리고 이 본문은 직분자의 도리가 충성이라는 것을 아름답게 증언하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세요,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즉 교회를 박해해서 사도라 칭함을 감당할 수 없는 자기를 살리시고, 사도로 써주셨기 때문에 다른 사도들 보다 더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이 더 많은 수고를 고후11:23-29에서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라고 하셨습니다. 이 충성이 직분자의 도리입니다.
여러분! 충성이 무엇입니까? 더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하면 되지!’가 아니라 더 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박해와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게 충성입니다. 그러므로 충성은 어려움이 있고 고난이 있어도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있어서가 아니라 없어도 하는 것이 충성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거나 바꾸지 않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충성합니다. 그래서 충성은 다 하는 것입니다. 이게 죽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충성은 인생과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이게 살리심 받은 자의 도리이지요. 이게 주님께 충성이요, 교회에 충성이요, 자기에 대하여 진실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못할 것이 없고, 안될 것이 없습니다.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이 도리를 다하는 충성스러운 직분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일하고 영광은 하나님께
그리고 본문은 직분자의 도리는 일 한 후에 영광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 이게 바울의 믿음입니다.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와서 안디옥교회에 선교보고를 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라고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께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게 했습니다.(행14:27) 즉 사도로서의 바울은 자신을 영광 받을 자로 여기기 않았다는 겁니다. 영광을 오직 주님께 있고, 주님 것이요. 자신은 주님의 영화롭게 하는 종으로 안 것입니다. 그래서 욕은 자기가 당하고, 영광을 주님께 돌린 것입니다.
이게 직분자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이 도리를 못하면 일하고도 버림받습니다. 모세가 므리바에 물을 낼 때 자기가 하는 것이 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지 못해서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습니다.(민20:12) 그러므로 일을 한 후에,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하고도 영광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성공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 들에게는 일하고 자기를 부인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은혜위에 은혜가 필요합니다. 직분자는 일하고 마음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자기를 자랑하고 나타내고 공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입술로 하나님을 내타내서 하나님이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게 하는 겸허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겸손을 배우게 합니다. 이게 겸손하신 예수님을 본 받게 합니다. 이것이 영원한 내 소득이 되는 것입니다. 직분자는 이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수고는 더 많이 하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돌리는 길을 가셔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승리하시는 직분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기를 강아지 똥으로 인식한 권정생
따라서 이 직분자의 도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직분에 부적하게 여기는 직분자의 자기 인식입니다. 이 인식이 사나 죽으니 주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 마음이 있으면 직분을 영광으로 알 것 입니다. 이 마음이 있으면 더 많이 수고 할 자로 알아 충성을 할 것이며, 일하고 영광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돌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진분자의 자격은 자신을 직분에 부적하게 아는 자기 인식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적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권정생은 아주 좋은 사례입니다.
이 분이 다섯 살 되던 해에19누나들에게서 예수님 이야기를 듣고 환상 속에서 십자가에 박힌 예수의 모습을 보고 평생 예수를 믿고 따르게 되었다. 이분은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를 겨우 나왔습니다. 19세 때 결핵에 걸려서 폐를 넘어 결핵이 늑막과, 신장, 방광에 번져서 평생을 오줌통을 몸에 차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함께 살던 형이 결혼하여 함께 살 수 없게 되어 몸 하나 기댈 곳이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1967년에 안동 지역 일직교회의 종지기가 되었습니다. 교회 옆의 토담집에 살며 청소하고, 종을 치며 주일학교에서 교사로 봉사하며, 글을 썼습니다.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 똥”으로 등단해서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81년에 우리가 잘 아는 “몽실 언니”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분의 동화 강아지 똥이 왜 교과서에 실리는 명작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강아지 똥과 같은 사람이지만, 똥이 거름이 되듯, 강아지 똥 같은 자기라도 예수님과 같이 남을 위하여 희생하면 아름다운 민들레를 피우는 빛이 될 수 있다는 믿음과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강아지 똥을 쓸 때 그가 기도하던 자라는 표가 났다고 합니다. 그가 교회를 청소하다보면 기도하다 흘린 눈물이 얼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살기가 좋아진 지금은 이런 기도의 자국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쓴 글을 제가 본적이 있습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병든 몸이지만 십자가의 은혜를 알고 이 은혜로 예수님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강아지 똥을 쓰게 했고, 유명작가의 반열에 올라서도 평생 서리집사로 살았습니다.
이 분이 2007년도에 돌아가셨을 때에 고장 사람들이 두 가지에 놀랐답니다, 하나는 그의 장례식에 수많은 사람이 참석한데 놀랐답니다. 그렇게 유명한 작가인 것을 고장 사람들은 모르고 산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재산 때문에 놀랐답니다. 그는 몽실 언니 후에 일 년에 1억이 넘는 인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십억 정도의 재산이 있었는데 이를 한겨레신문의 어깨동무에 기증해서 북한 어린이를 위해서 쓰게 했습니다. 이런 인세를 받으면서 평생을 움막 같은 집에서 단벌옷으로 살아서 마을 사람들은 그가 지독하게 가난 한 줄로 알았습니다. 이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게 직분자의 도리요 걸을 길인 줄로 믿습니다.
은혜로가족 여러분! 저는 지금 우리 예수님께서 이런 자기 인식을 가진 사람을 찾으신다고 믿습니다.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다, 나는 사도라 칭함을 받기를 감당치 못할 자라, 주님은 이런 사람을 들어서 쓰시고,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구원하시는 권능과 영광을 나타내실 줄로 믿습니다. 이 인식으로 직분을 감사하므로 헌신 하셔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렇게 칭찬 받는 직분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