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우리 부모 여한 없으시게

아브라함-la 2021. 5. 12. 22:20

021,5,9, 어버이주일

본문 : 창46:28-30

말씀 : 라인권목사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주께서 이 땅의 모든 어버이들을 축복하시고, 노후를 아름답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새 성전을 건축하다가 당한 어려움으로 아버님께 큰 걱정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제가 다시 성전을 건축하고 교회가 부흥하는 걸 보시기를 원하셨는데, 건축부지로 계약한 땅에 문제가 생겨서 끝내 예배당을 다시 건축하는 것을 보시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님께 여한의 자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런 저와는 대비를 이루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보시면 야곱은 참 기품이 넘치는 노인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애굽의 총리가 된 아들 요셉을 찾아왔습니다. 여생을 애굽에서 요셉과 지내려고 노후를 요셉에게 맡기려고 온 것입니다. 이 야곱이 애굽에 도 착 했을 때에, 그는 넷째 아들 유다를 먼저 요셉에게 보내서 자기를 영접하게 합니다. 이렇게 늙은 야곱은 기품이 있습니다. 성자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기품 있고 품위 있는 야곱이 아들 요셉의 얼굴을 보자, 지금 죽어도 족하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은 야곱의 품위가 아니라 감정을 드러낸 말입니다. 이만큼 야곱이 좋았던 겁니다. 제가 아버님께 한을 남긴 여한의 자식이라면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원을 풀어 드려서 여한이 없는 아들이었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부모님들 여한이 없으시게 하는 자식 된 도리, 효의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첫째, 자기 보중이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시게 하고 족하게 하는 효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과 창37:33-36을 비교하면 이게 분명해집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애굽에 팔고 아버지 야곱을 속이려고 염소의 피에 적신 요셉의 옷을 보여 주었을 때에, 야곱은 옷을 굵은 베를 동이고 오래도록 애통하고 네가 슬퍼하며 스올에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평생의 한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가 아파한 것은 요셉에게는 평생 한이 되었을 겁니다. 이런 아들이 건강하게 생존해 있는 것을 보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렇게 부모는 자식의 건강과 안위에 마음 편할 날이 없으십니다.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이게 부모 마음입니다.

 

유교에서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 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고 자기 보중을 효의 시작으로 본 것은 이 때문입니다. 자식의 건강과 안위는 부모의 근심과 아픔이며 한이 되고,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 여한이 없으시게 하는 효도는 이 부모의 마음을 알고 자기를 보중 하는 것입니다. 출입할 때 이 부모의 마음을 고려해서 보중 합시다.. 일할 때 부모의 마음을 고려하여 다치는 일이 없게 보중 합시다. 병들지 않게 합시다. 먹는 것도 해롭지 않게 합시다. 세월호의 부모들의 아픔을 보세요. 자중자애 하셔서 한이 되는 자식이 아니라,  여한이 없는 기쁨의 자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자식 된 내가 잘되는 것이 부모를 기쁘고 족하게 하는 효의 길이요, 효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제 죽어도 족하다, 나는 여한이 없다! 이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이 살아있었을 뿐만 아니라, 성공해서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요셉이 애굽에서 노예로 있거나, 고생하고 있는 요셉을 만나게 되었다면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요셉이 살아있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게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일 겁니다.

 

제가 지난 12월 수도원에서 원로 목사님 한 분과 한방을 썼는데, 그분이 제게 명함을 주셨는데 제가 그런 명함은 생전 처음 보았습니다. 그 명함은 그 목사님 명함이라기보다 아들의 명함이었습니다. 연세대 부교수인 아들의 이름과 직함과 학교 주소가 큰 글자로 박혀 있고, 당신은 명함 왼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이름과 전화번호만 박혀 있었습니다. 아들 자랑이지요. 이분은 입만 여시면 거의 아들은 목사에 교수요, 딸은 사모라고 자랑이시고, 손녀 자랑이셨습니다, 이분, 족하고 여한이 없습니다. 이게 부모 마음이지요. 사실 저도 부러웠습니다. 그러므로 효는 자식인 내가 잘되고,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되는 자식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학업에서 일에서 믿는 일에 성공하는 자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면 야곱은 그의 신앙으로 보아 단지 요셉의 성공과 출세를 좋아하고, 이것으로 족하고 성공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야곱은 애굽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묻히기를 부탁했습니다, 이건 야곱이 조부의 신앙을 따라서 이 세상 애굽을 사모하지 않았고, 애굽의 부귀영화를 탐하거나 그걸 성공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박정희 시절 이 지역의 국회의원이 차지철 씨었습니다. 그 장인 되시는 분이 목사인데, 이분이 이천읍 교회에 부흥회를 오셨는데, 강론 시간에 걸핏하면 사위 자랑입니다. 담임 목사님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하셨습니다.. 그분은 사위가 권세를 잡고 출세한 것 자체를 믿음으로 알고,  성공으로 알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이런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부모는 잘된 자식과 성공 못 한 자식을 차별도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은 아들 요셉이 총리가 된 것도 좋았지만, 그 성공보다 요셉이 충성되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잘되게 하고, 자기의 지혜와 지위로 칠 년 기근에서 세상을 살리는 어진 권세를 행한 것을 성공으로 여기고 족히 여긴 사람입니다. 만약 요셉이 자기 지혜와 권세로 세상을 괴롭게 했다면 야곱은 분명히 그 아들을 근심하고 슬퍼했을 겁니다. 요셉의 재능과 권력이 착한 일에 쓰임 받음을 야곱은 성공으로 여기고 면류관으로 여겨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한 것이지요, 이게 참 부모의 마음이지요.

 

그러므로 효는 자식으로 잘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요셉과 같이 총리는 될 수 없지만, 자기와 타인에게 진실하고 충성되어 자기 일이 잘되고, 내게 있는 것이 사람들을 유익하게 한다면 그것이 요셉과 같은 성공이요, 이것이 효의 길이요, 효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진실하여 잘되는 자식이 되시고, 상사에게 진실하고 하나님께 진실하여 인정받고 쓰임 받는 자식이 됩시다. 성공은 영향력입니다. 내 영향력이 세상을 복되게 하는 도구가 되게 하는 자식은 부모의 면류관이요, 여한이 없게 하는 효의 길이요, 이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라고 믿습니다.

 

셋째, 부모 앞에서 형제가 우애하고 화목하는 것이 효의 길이요 여한 없는 부모가 되시게 한다는 겁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원수들입니다. 어린 아우를 죽이려고 하다가, 노예로 팔아버린 원수 같은 형들입니다. 이 원수들이 애굽으로 곡식을 사려 왔을 때에 요셉은 그들을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때 요셉은 원수를 갚을 수 있었지만,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하고 용서하고 선대 했습니다. 만약에 요셉이 형들의 과거사를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면 아버지 야곱은 편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부모 앞에서 형제가 불화하는 것은 부모의 고통입니다. 요즘 재벌 가족이 싸우는 걸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는 것이 효입니다. 형제간에 우애 있고 화목한 자녀가 되어서 부모님이 족히 여기시고, 여한이 없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부모의 신앙을 계대하면 금상첨화입니다. 야곱이 여한이 없는 것은 요셉이 아버지의 신앙을 그대로 계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가나안 땅에 묻히려는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애급 사람 되려고 한 것이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같이 선영 막벨라 굴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요셉의 신앙이 야곱을 족하게 하고 여한이 없게 했을 겁니다. 신앙은 영생의 문제이자, 인생이 걸린 문제입니다. 이 믿음 하나이면 인생 해결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자식을 둔 부모는 죽을 때 눈을 감지 못 하게 합니다. 가끔 중직자의 자녀가 믿지 않아서 냉가슴을 앓는 것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불효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효는 내가 부모님의 신앙을 계승하는 것이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보다 더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 부모께 여한이 없게 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 어머님을 모시고 제주를 다녀왔습니다, 효는 부모의 마음을 아는 것이요, 이 부모의 마음과 기대에 부응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여한 없는 부모가 되게 할 것이요, 이게 결국은 자기가 잘 되어서 여한 없는 자식이 되게 할 줄 믿습니다. 이게 바로 오계명의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다 같이 보중 합시다.. 진정으로 성공하시고, 형제간에 화목하고 부모의 신앙을 계승하여 우리 부모님들 여한 없게 해 드리는 여한 없는 자식이 되시기를 오계명을 주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