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혼인을 꿈꾸는 이들께
021,5,16, 부부사랑 주일
본문 : 창2:18-25
말씀 : 라인권목사
작년 정인이 사건의 쇼크는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아동복지는 물론 교회에 이르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 근본은 성과 혼인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형편이라 혼인을 기피하는 현사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아이들이 성장하여 옛날 같으면 가정을 이루고도 남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혼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혼인예식에서 주례사를 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혼인의 원리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일남 일녀의 순결의 원리
첫 번 혼인의 원리는 하나님은 사람을 남녀로 지으셨고,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가 혼인이라는 제도로 부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이 당연한 소리가 부정되는 것이 정의가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 정부와 정치하는 사람들, 운동가들은 동성애를 “성적 소수자니, 성적 취향”라고 합니다. 이는 마치 독약을 드링크제라고 하는 것과 꼭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이제 동성애는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어느 날 아들이 결혼 상대자라면 산적 같은 남자를 데려오거나, 딸이 결혼한다며 미스코리아 같은 여자를 데려오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강단에서 이런 소리를 할 줄 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을 남녀로 내셨고, 혼인은 남녀의 결합이라고 합니다. 이게 순결입니다. 이 순결의 원리를 따를 때에 성과 혼인은 거룩하고 생산적이 됩니다. 그러나 동성애는 타락해서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죄가 성을 순리가 아니라, 역리로 쓰게 하는 죄입니다.(롬 1:24,25)이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의 축복을 정면으로 거스리는 죄입니다. 따라서 “혼인은 남녀가 하는 것이다.”는 이 당연한 말씀이 사람의 성과 혼인을 거룩하게 하는 울타리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울타리 안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내신 성과 혼인을 거룩하게 하게 하고, 행복이 있고, 생산적이 되게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남 일녀로 부부가 되게 하셨다는 것은 혼인은 순결한 남녀의 결합이라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순결이라는 정조를 지키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첫째 혼인의 신성과 행복을 보전하시기 위함입니다. 혼인은 일남 일녀가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간음은 이것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은 “결혼을 깨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간음을 영어 성경은 포니케이션fomication고하지 않고 어덜트리adultery”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순결을 지키지 않는 것은 결혼을 깨는 것입니다. 간음은 한 몸 된 것을 해체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음은 배우자에게 해체의 고통을 가져오고, 결국은 자기도 해체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순결한 배우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따라서 이 간음과 간음의 상처는 혼인이 행복을 방해합니다. 혼인의 행복 중의 하나가 성적 일치입니다. 죄 감은 이 행복을 방해합니다. 총신의 한 교수는 “순결은 사랑의 배터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성결한 자녀를 두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영이 유여해도 일남 일녀로 지으신 것은 성결한 자녀를 두게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말 2:15). 이성처럼 매력적이고 생산적이지만 음행은 죄 없는 자식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혼인을 위해서 순결을 지키는 것이며, 부부와 자녀를 정하게 하기 위해서 정조를 지키는 것입니다. 믿음도 신랑 예수님께 이 정조를 지키는 것입니다. 순결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되셔서 건강하고 행복한 혼인을 하시고, 행복한 부부가 되실 뿐만 아니라, 흠도 티도 없이 주님 앞에 서는 거룩함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부모를 떠나는 성숙과 책임의 원리
혼인의 두 번째 원리는 하나님께서 그 부모를 떠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명령을 성숙과 책임의 원리라고 부릅니다. 이 명령은 먼저 언제 가정을 이루느냐는 적령기를 규정한 말입니다. 언제가 결혼 적령기입니까?? 우리의 혼인 관계 법은 “남자는 만 18세, 여자는 만 16세에 달해야 하며, 만 20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육체적으로 성인이 된 때가 결혼 적령기란 말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부모를 떠나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모에게 의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자기가 자기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에 혼인하고 가정을 이루라는 말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가정이 되고, 자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겁니다.
따라서 이 명령은 혼인할 수 있는 자격 규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정상적인 부부가 되고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성숙입니다. 이게 책임의 원리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성숙하지 못하고, 생활력과 책임감이 없어서 가족을 비참하게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이런 걸 보면 그 무책임에 화가 날 지경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성숙하기를 힘쓰십시오.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경제적으로 성숙하여 능력을 갖추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렇게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러면 능력이 없는 사람은 연애도 결혼도 하지 말라는 얘기냐? 우리 사회에서 돈 벌고 집 사는 게 쉬운 일이냐? 제 말은 생활력-책임감, 근면-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거면 가족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은 인격적으로 경제적으로 성숙했거나 인생의 목표가 설정되었을 때에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분명한 꿈이 있고, 인생의 목표가 있으면 결혼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돕는 베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혼인은 꿈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목표와 비전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꿈이 있으면, 같은 꿈을 가진 배우자를 만날 겁니다. 그리고 그 꿈과 비전을 위해서 서로 돕는 베필이 되어서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는 행복한 부부가 될 줄로 믿습니다,
좋아해서 혼인하는 사랑의 원리
셋째, 혼인의 원리는 누구와 혼인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정혼하시고, 하나님께서 중신하시고, 하나님께서 주례하셔서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배우자는 하나님의 뜻으로 만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배우자를 하나님이 주신 천생배필로 믿고 선물로 알라는 것입니다. 족장들 중에 가장 금실 좋고 성결한 부부가 이삭과 리브가 부부입니다. 이들은 서로 얼굴로 보지 못하고, 단지 하나님의 정하심에 순종하여 혼인했어도 가장 행복한 부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확신하고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 18:22절은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배우자는 하나님이 정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혼인 관계가 흔들리는 것을 잡아줍니다. 이렇게 믿으면 어떻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셔서 아담에게 이끌어 왔을 때에,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사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셨다는 겁니다. 최고로 주시고, 꼭 맞는 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사랑의 원리”라고 합니다. 이 노래는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하와가 좋았고, 사랑스러웠다는 거지요. 성경에서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겁니다. 아내를 사랑한다, 남편을 사랑한다는 것은 감정보다 이성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혼인을 이루는 사랑은 이성보다 감정적인 것입니다. 배우자가 어떤 면이든 그게 외모이든, 마음씨이든 솜씨이든 능력이든 재주이든 신앙이 좋든, 좋아야 합니다. 너무 좋고 사랑스러워서 흉이, 흉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뜻 중의 하나입니다. 너무 좋아서 그 사람과 함께라면 가난해도 좋고, 병들어도 좋고 행복한 것이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고, 사랑하는 사람이면 결혼하십시오, 그러면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한 몸을 이루는 봉사의 원리
넷째, 혼인의 원리는 하나님께서 혼인으로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게 혼인하는 방법이고, 부부로 사는 방법입니다.. 바로 여기에 혼인에 대한 성경과 세상의 가 차관의 차이가 있습니다. 흔히 결혼을 나의 반쪽을 찾아 맞추는 것으로 압니다. 미국의 유명한 가정사역자 놀만 라이트가 “주님 나의 반쪽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은 배우자를 찾는 방법론입니다. 그러나 이 제목은 반성경적입니다. “나의 반쪽”은 프라톤의 <향연>에서 나온 것으로, 인간은 본래 남녀가 하나였던 “안드로 진” Androgyne이었다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받아서 반으로 갈라서 남녀로 분리되어서 사람에게는 그 반쪽을 찾는 본능이 있고, 그 반쪽을 찾아 하나가 되기를 추구하는 것을 “에로스”라고 본 것입니다. 이게 혼인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갖게 합니다.
자기 반쪽은 딱 맞습니다. 그래서 결혼하면 그 순간부터 행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딱 맞는 반쪽이 아니라, 온전한 한 사람, 한 인격의 남자와 여자입니다. 자기에 딱 맞는 반쪽을 찾는 것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배우자가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배우자가 아닌 자기를 행복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혼인하니 심지어 허니문에서 싸우고 깨집니다. 이게 파경에 이르게 하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혼인을 하나님의 형상인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고 합니다. 출생 배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가치관은 물론 심지어 입맛까지 다른 한 온전한 한 사람을 내 인생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다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기 부인의 고통이 따르고, 동화의 겸허와 희생이 요구됩니다. 이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며, 의지적으로 믿음이 요구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이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며 견디는 것입니다.(고전 13:4-7).(고전 13:4-7)이게 부부로 살아가게 하는 사랑입니다. 혼인한 순간부터 이 대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부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봉사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부부가 되는 방법이며 부부로 해로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혼인을 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결혼하면 행복할 줄만 아는 혼인에 대한 헛된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혼인을 배우자를 위한 사랑의 봉사로 인식합시다. 이 사랑의 봉사를 행복으로 삼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의 행복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이게 참사람입니다. 하물며 아내와 남편이겠습니까? 사랑의 봉사로 배우자를 행복하게 하려고 하면 그게 천국입니다. 이 천국이 되고, 이 천국을 누리는 가정의 그리스도인의 환상입니다. 이 환상을 가지세요, 이 환상으로 혼인합시다. 이게 흔들리면 사랑장을 읽으세요, 그래도 흔들리면 주님과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이걸 새기면 행복하고 성공하는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혼인해야 할 여러분! “성결, 성숙, 사랑, 봉사” 이게 하나님이 세우신 혼인의 대 원리입니다. 이 하나님이 내신 혼인의 원리를 따르라는 것이, 하나님의 종인 여러분의 목사로서의 자의 권면이자 하나님의 권면 입 니니다. 부디 이 원리를 따르셔서, 행복한 혼인을 하고, 천국을 누리는 행복한 부부가 되고, 천국과 같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혼인을 내시고, 축복하여 거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