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삶의 양식을 요구하는 축복의 땅(2)
021, 9,19, 주일
본문 : 레18:24-30
말씀 : 라인권목사
이번 추석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축복합니다. 명절의 키워드는 행복이고 행복은 명절의 당위입니다. 지금 우리는 축복을 생각하고 있는데, 이 축복이라는 말의 동의어가 “행복”입니다. “행복 추구권”이라는 말에서 보듯 인생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그 행복의 특성이 있다는 건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 행복의 특성이란 행복은 소유자와 단일성을 요구한다는 겁니다. 즉 축복을 소유한 사람이 그 축복과 맞아야 그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축복의 특성 축복은 단일성을 요구함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이걸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맥베스가 왕을 암살하고 이 죄를 경비병에 씌워서 죽이고는 왕이 되고, 레이디 멕베스는 소원대로 왕후가 되었지요. 그러나 이 왕, 왕후라는 복이 이들을 행복하게 한 것이 오히려 불행하게 했습니다. 레이디 맥베스는 죄책감에 시달려 몽유병이 됩니다. 왕을 죽인 피가 묻은 남편의 손을 잡았을 때 자기 손에 묻은 왕의 핏자국이 손바닥에 새겨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와 같이 손을 씻지만, 씻어도 씻어도 씻겨지질 않습니다. 그래서 탄식합니다. “아! 아라비아의 향수로 씻어도 이 조그만 손을 향기롭게 할 수 없단 말인가?” 살인은 왕위라는 축복에 맞지 않는다는 거지요. 사랑이라는 행복에 간음은 맞지 않습니다. 명예라는 축복에 불의와 거짓은 맞지 않습니다. 부라는 축복에 교만은 상극입니다. 이게 행복의 특성입니다. 행복은 자기와 이질적인 것이 있으면 안 맞아서 토해내는 겁니다.
축복은 도덕과 윤리적이며 인격성을
이게 무슨 말입니까? 축복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인격적이라는 겁니다. 이게 행복의 성질입니다. 이 성격과 단일되어야 축복을 누립니다. 사람이 왕위라는 복을 가졌어도, 그 사람이 비도덕적이면 행복과 맞지 않습니다. 행복이 그를 토합니다. 본문은 축복의 땅은 주민을 토하는 땅이라고 합니다. 이게 행복의 일반적인 원리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종교나 철학은 행복하려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 인격적인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행복 지수 세계 1위가 덴마크라지요. 이 덴마크인 작가 말레네 뤼달은 “덴마크 사람들처럼”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덴마크 사람들에게는 튼튼한 행복의 토대가 있는데, 그 행복의 토대를 만드는 열 가지 비결을 신뢰- 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교육-사회 안에 내 자리가 있다. 자유와 자율성- 내가 갈 길은 내가 정한다. 기회균등- 개천에서 났어도 꿈을 이룰 수 있다. 현실적인 기대- 최고가 아니어도 만족한다. 공동체 의식- 네가 잘 지내야 나도 잘 지낼 수 있다. 가정과 일의 균형, 돈에 초연한 태도-지갑을 채우기보다 자신의 길을 찾는다. 겸손-내가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녀평등이라고 했습니다, 국가가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국가를 만든다는 겁니다. 이런 일반적인 원리만 따라도 이 세상이 말하는 의미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독특한 삶의 양식을 요구하는 축복의 땅
그러나 이 율법의 요구는 이런 행복의 일반적인 원리와 다릅니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율법은 아주 독특한 삶의 양식을 요구합니다. 본문은 애급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과 같이 음란하고, 우상을 섬기고, 동성애를 하거나, 수간을 하면 이는 그 땅을 더럽히는 것이고, 이렇게 그 땅을 더럽히면 그 땅이 토한다는 말씀이지요. 즉 가나안 땅은 이 세상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생활양식을 요구한다는 겁니다. 우상 섬기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이런 삶의 양식은 이 세상 나라의 삶의 양식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동성애를 성적 취향, 평등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음행을 풍류, 예술, 오락이라고 합니다. 우상과 음행은 가증한 것이다, 이런 삶의 양식은 이 세상에는 없는 독특한 삶의 양식입니다. 축복의 땅은 이 독특한 삶의 양식을 요구합니다. 이 독특한 삶의 양식을 규정한 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면 왜 축복의 땅은 왜 이 독특한 삶의 양식이 요구됩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이 삶의 양식
그것은 그 축복의 땅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천국이 천국인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되는 나라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곳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이 해주시는 곳입니다. 내 능과 노력과 수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과 능으로 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사니 안식이 있습니다. 이걸 축복이라고 합니다. 이 안식하는 삶을 누리는 조건이 “나 하나님을 신뢰하라! 나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겨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만 신뢰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주십니다, 즉 천국은 이 믿음으로 사는 나라입니다. 믿음이 삶의 양식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천국에만 있는 독특한 삶의 양식입니다. 이 독특한 삶의 요구를 따르기만 하면 모든 게 다 됩니다.
이 ”믿음이라는 삶의 양식“을 신11:10-12이 잘 보여 줍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축복의 땅 가나안 땅과 애급 땅을 대조하시며, 너희가 차지할 가나안 땅은 애굽 땅과 같지 않다고 하십니다. 애굽은 나일강이 있어 비옥합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애굽과 달리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합니다. 그러면 애굽과 가나안 어느 쪽이 더 안전하고, 편할까요? 애굽 땅은 수리 안전 답입니다. 가나안 땅은 천수답입니다. 애굽은 가물어도 물만 푸면 되니 안전하고, 비만 기다리는 가나안 땅은 불안하고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나 12절을 봅시다, 그 땅은 ”하나님이 돌보시는 땅“입니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하나님의 눈이 항상 있는 땅“입니다. 애굽은 인력으로 물을 퍼야 하지만, 가나안 땅은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으로 섬기면, 즉 믿는 일만 하면 늦은 비와 이른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십니다. 즉 하나님이 물을 대 주시는 겁니다.
여러분! 물을 푸는 쪽, 하나님을 믿는 일하는 쪽! 어느 쪽이 안전하고, 편합니까? 우리 이천은 70%가 지하수로 농사합니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두레로 펐습니다. 이게 허리가 휠 지경이고, 자칫하면 깊은 웅덩이로 떨어집니다. 전기 모터로 물 대다가 감전사하는 경우 있습니다. 이게 애급 땅, 즉 이 세상의 삶의 양식입니다, 그러나 축복의 땅은 은혜로 되기 때문에 믿는 일만 하면 됩니다. 말하자면 애굽 사람들이 허리가 휘게 물을 풀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물을 대 주시니 소파에서 앉아서 TV나 보고 있으면 되는 겁니다. 믿는 일은 그일 자체가 즐거움입니다. 이 믿는 일만 하면 하나님이 물을 대 주십니다. 하나님이 돌보십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하나님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게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걸 축복이라고 합니다. 이게 축복의 축복됨이요,, 믿을 때 구원과 함께 선물로 받은 축복을 누리는 행복의 길입니다.
거룩하고 신령한 삶이라는 독특한 삶의 양식을
그리고 천국은 거룩 성과 신령한 나라이기 때문에 축복의 땅은 거룩하고 신령한 삶이라는 세상과 다른 독특한 삶의 양식을 요구하는 땅이라는 겁니다. 다시 본문으로 갑시다. 본문에서 축복의 땅을 더럽혀서 토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게 애급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이 하는 우상숭배, 음행, 동성애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삶의 양식입니다. 우상이 사는 방법이고, 음행을 스포츠와 같이 여깁니다. 그러나 축복의 땅은 거룩하고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삶의 방식은 가증합니다.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땅과 단일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거룩하니 거룩해야 합니다. 신령한 나라이니 신령해야 맞아서 그 땅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이 거룩이며, 신령하고 영적인 삶입니까?. 지금 우리는 거룩과 신령을 착각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신령한 걸 예배나 교회일, 신비적 체험 정도로 압니다. 그래서 거룩하고 신령하기 위해서 철야기도 하고, 금식기도 합니다. 신령해지려고 산에 가서 소나무 뽑으며 기도합니다. 그래서 불 받고, 신령한 줄로 압니다. 그런데 신령해선지 비인간적이 됩니다. 소나무 뽑는 힘으로 사회적 불의를 행하고, 심지어 음행 합니다..
여러분! 무엇이 거룩이고, 영적입니다. 돈이 아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사는 것이 거룩이며, 영적이고, 자신과 이웃의 정조를 보호해 주는 것이 신령한 것이요, 이웃을 사랑해서 불의를 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이 거룩이며. 신령한 것입니다.(약1:27) 이게 경건입니다. 이게 믿는 일입니다. 이 믿는 일이 축복의 땅을 사는 방법이요, 축복의 땅의 삶의 양식입니다. 이 독특한 삶의 양식을 따르면 내가 하나님과 축복의 땅과 단일성을 이루어서, 그 땅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게 됩니다. 앞으로 이 독특한 삶의 양식을 공부해 나갈 것입니다, 이 작업이 우리로 가나안 땅을 젓과 꿀을 먹게 하는 것이 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축복의 땅이 요구하는 이 독특한 삶의 양식은 유별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세상에 가장 편한 길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풍성하게 해 주고,, 우리를 구별되게 하고. 오히려 세상에 매력적인 삶이 되게 하여 증거가 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이 시간! 이 길에 힘 있게 섭시다. 이 길을 믿음으로 걸어갑시다. 그래서 구원과 더불어 받은 풍성한 삶이라는 축복과 단일성을 이루셔서 축복이 화가 되는 데서 구원받으시고, 선물 받은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행복한 성도로 사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