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땅에서 율법의 역할
021,9, 26, 주일
본문 : 신6:20-25
말씀 : 라인권목사
명절 은혜들 많으셨지요. 천주교는 사제에게 고해를 하면, 보속을 명합니다. 이게 주님의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만, 사제들은 일상의 자잘한 허물을 고해를 하면, 보속으로 일정한 기간에 콩을 신발에 넣게 했습니다. 딱딱한 콩을 신발에 넣고 걸으니 아프고, 불편합니다. 그래서 신도들이 꾀를 냈습니다. 삶은 콩을 넣은 겁니다. 콩은 콩이니까요. 무슨 말이냐면 보속을 번거롭게 여겼다는 겁니다.
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일입니다. 제가 목사이니 자녀들에게 이것, 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습니다. 특히 주일이면 하라는 것도 있지만, 티브이 보지 말아라, 외식 안 된다. 여행 안된다. 이러니 성가시게 생각해서 이렇게 해야 하냐고 불만이 많았습니다.
율법을 번거롭게 여기는 경향
오늘 본문도 이런 이야기입니다. 후일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고, 심지어 먹는 것도 가려야 하니, 이걸 불편하고, 번거롭게 여겨서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을 때가 있을 거라는 겁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서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종 됨에서 구출해 주시고, 가나안 땅에서 행복하게 살게 하시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게 하셨다고 설명해 주라는 것입니다.
이게 어린아이들만 아니라,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의 요구를 짐으로 알고, 번거로워하고, 번체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나 마음은 멀고, 성전의 마당만 밟고, 눈먼 것과 저는 것을 제물로 드렸던 겁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도 그렇습니다. 금식일이 되는 밤 12시를 치기 전에 달걀 하나를 깨 먹었다는 안수집사의 이야기에 교육위원회 좌석이 웃음판이 된 적이 있습니다. 주일성수나 경건 생활을 율법주의로 여깁니다. 복음주의자들은 율법을 복음의 자유에 반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행복을 누리는 조건
이런 우리 게 오늘의 본문이 우리에 분명히 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율법이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조건이 아니라, 가나안 땅을 누리는 조건이라는 겁니다. 즉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거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이 아니라, 구원과 함께 선물로 받은 축복의 땅, 즉 풍성한 삶을 누리는 조건입니다. 8절을 보세요,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함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10:13은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축복의 땅은 이 율법을 요구하는 땅입니다.측복!풍성한 삶은 이 율법의 요구를 이행함으로 누려지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축복의 땅에서 율법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행복을 누리는 길을 가르치는 기능
먼저 율법은 축복의 땅에서 행복을 누리는 길을 가르치는 기능과 역할을 하는 것이 율법이라는 겁니다. 전에 말씀드린 제 노트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좋은 노트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겨우 글을 쓰고, 메일 하고,인터넷이나 보는 컴맹 수준이라고 했지요, 왜 그렇습니까? 제가 정식으로 컴퓨터를 배워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켜는 법, 글을 입력하고 저장하고 출력하는 법, 인터넷 보는 것 배운 게 전부입니다. 즉 몰라서 못 써먹는 겁니다. 얼마 전에 글을 가운데 정렬하는 것 터득하니 저는 컴퓨터의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 기분입니다.
이렇게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축복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시내산과 광야에서 미리 율법을 주신 겁니다. 이 율법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과 예배하는 법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 관계를 규정하고 정의한 것이 첫 돌비입니다. 그리고 축복의 땅에서는 이웃들과는 이렇게 살아라! 이웃을 나 잘되려고 이용해 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행복을 섬기는 종으로 살아라, 이게 둘째 돌비입니다. 이게 축복의 땅을 누리는 길입니다. 이렇게 하면 항상 복을 누립니다. 들어가도 나가도 잘됩니다. 이걸 가르치고 배우게 하신 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이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믿고, 즐거워하고, 기쁨으로 순종하시므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땅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행복을 지키는 울타리의 기능
그리고 율법은 축복의 땅에서 누리는 행복을 지키는 울타리의 기능과 역할을 하는 겁니다. 율법은 긍정적으로 하라는 것보다, 부정적으로 하지 말라고 금지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십계명에서 제4, 5 계명만 적극적으로 하라는 것이고 나머지는 다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나 하지 말라는 것은 금지한 것의 적극적인 면을 하라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건 적극적으로 이웃의 생명을 보전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은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계율적이기 때문에 이를 불편하고, 번거롭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인생과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해에 우리 사회에 가장 충격적인 일은 정인이 사건일 겁니다. 이 사건은 우리 기독교인의 윤리적인 문제, 우리 사회의 아동 보호법과 복지법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결국은 성도덕의 헤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성도덕의 헤이가 사생아를 낳게 하고, 자신의 인생을 깨뜨리고, 그 죄 없는 아이가 학대를 당하게 한 거지요. 살펴보세요, 이렇게 모든 인생의 불행의 시작은 도덕과 윤리의 규범을 번거롭게 여기거나, 번폐로 알아서 무시하거나 떠나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람이 도덕과 윤리의 울타리를 넘어서 행복을 구하는 것은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과 자신의 행복을 자해하는 자해 행위입니다. 인생은 자신이 구하는 행복으로 자신과 자신의 행복을 자해하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율법은 행복을 지키는 울타리입니다. 마치 교통법규를 따라는 것이 안전하고 편하게 하는 것과 같이, 이 율법을 따르는 것인 인생의 실패, 불행을 방지하고 피하게 하고, 인생을 안전하게 하고, 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 풍성한 삶을 누리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축복으로 알고 즐겁게 순종하는 것이, 내 인생과 생명과 행복을 안전하고 자유롭고 편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이 사람은 성읍에서도, 집에서도, 들에서도 복이 되는 전천후 축복을 누리고, 시냇가의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율법 축복의 땅의 사용설명서와 정보지
따라서 율법, 즉 성경은 축복의 땅의 사용설명서요, 정보지와 같은 겁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정말 행복이 소원이면, 성경을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 동천리 시절에 양계를 하시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양계에 도가 트신 분입니다. 이분은 양계는 기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병아리를 넣을 때를 아는 거라고 합니다. 수요를 예측해서 병아리를 넣는 것이 수익이 많이 볼 수 있답니다. 그래서 일간지를 빠짐이 없이 자세히 읽는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성경이 축복의 땅의 사용설명서라면, 그 집사님이 신문 읽는 것과 같이 성경을 볼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 행복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서라도 성경을 읽을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은혜로 가족들은 매일 성경을 읽으셔서, 오늘을 행복하게 하는 행복의 길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성경을 읽으셔서, 내 인생과 행복을 자해하는 것을 피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성읍에서, 집에서도 들에서도 일에서도 행복이 넘치는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