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은혜로 묵상

예루살렘을 비통해 하심

아브라함-la 2022. 2. 9. 22:56

- 자신이 거절당함이 아니라 거절하는 완악함과 그 받을 심판을 비통해 하심이 주님을 십자가로 가시게 했습니다.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게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함이 몇 번이야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23:37)

 

주님의 이 예루살렘에 대한 비통한 애가는 앞부분의 바리새주의에 대한 주님의 맹렬한 정죄가 분노의 영이 아닌 이 슬픔의 영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읽게 해 줍니다. 이 애끓는 마음이 없이 성에 차서 정죄를 퍼붓는 것은 죄인이 죄 중에서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 것입니다. 이 마음이 없는 이는 들었던 정죄의 돌을 내려놓지 않으면 자신이 그 돌에 맞아야 할 날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에 대한 주님의 비통은 당신이 거절당한 비통이 아니라, 당신을 거절한 예루살렘의 완악함과 그것이 초래한 임박한 멸망을 비통해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에 거쳐 예루살렘에 오셔서 그들을 당신의 은혜 안에 두시려고 애쓰셨지만 그들은 선지자를 죽이던 그 패역으로 주님을 배척했으므로 이제 임박한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애가에는 거절하는 백성을 품으시려는 주님의 자비로우신 손길이 절절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얼마나 그들에게 닥친 멸망을 예고하여 그 멸망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하셨는지! 돌 같이 굳은 종교에 지쳐있고,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시온의 딸들을 자기에게 부르셔서 쉬도록 당신의 멍에를 그들에게 메우고 싶어 하셨지는 가 절절하게 묻어 나오고 있습니다.(11:28-30)

 

이 주님, 자기들의 왕을 죽이기로 모의한 그 집인 성전과 그 백성은 그 왕이 입성할 때에 무리가 외치던 그 주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주님을 보지 못하는 그들은 임박한 심판으로 인한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주님을 원치 않는 죄와 그 죄에 예비되어 있는 심판의 불을 보는 사람은 이 주님의 비통한 눈물이 있을 것입니다. 이 비통과 슬픔을 아는 사람이 주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마음을 닮을 것이며, 이 가슴이 있는 사람은 주님처럼 원하지 않는 백성에게 나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죄와 종말을 보는 그리스도인의 가슴이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