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에 굴복한 한국교회 여로보암의 우상에 굴복할 것인가?
백낙청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을 “이 땅의 기득권이 만든 헛것”이라고 규정했다, 나는 이걸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우상”으로 재해석한다, 우상은 금송아지가 아니라, 그 금송아지를 만들게 한 여로보암의 정치적 탐욕과 그 정치적 이득을 공유하려는 백성들의 탐욕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이야말로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우상인 것이다.
국민의 힘은 윤석열 검찰총장 청문회로 그 누구보다도 윤석열의 비리와 가족의 비리를 잘 알고 있는 집단이며, 박근혜를 구속한 원수와 같은 사람임에도, 왜 경륜과 도덕성이 있는 홍준표 같은 이들을 제치고 대통령 후보로 세웠을까?
촛불 혁명은 이 땅의 기득권 세력에게 자기들의 기득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촛불 혁명에 숨을 죽이고 있던 기득권들은 촛불 정부에 역공하려는 발화점을 모색하다가, 검찰 개혁을 두고 광화문에 집결해 적개심을 폭발시켰고, 국힘은 코로나 방역을 선방해서 세계가 인정한 코로나 방역을 실패로 몰아간 데서 보듯 오르지 촛불이 세운 정부를 무너뜨리는 일에만 매진했던 것이다.
이런 기득권들의 열망에 가능성을 보게 한 것이 바로 윤석열이다. 윤석열이 검찰 개혁하려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 검찰 개혁과 문재인 정부를 긴 시간 혼돈 속에 몰아넣는 걸 본 기득권은 환호성을 울리며 광화문에 모였다. 여기서 윤석열은 대권의 가능성을 보고 대권에 도전했고, 기득권은 윤석열에게서 촛불 정권을 궤멸할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이렇게 윤석열은 기득권 세력의 탐욕과 윤석열의 권력에 대한 탐욕이라는 이 "헛것을 실드 쳐주는 엘리트 카르텔"이 빗은 우상인 것이다.
이 윤석열은 한국교회에는 온전히 여로보암의 금송아지이다.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문재인 정부를 반대할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인 명분이 차별금지법이었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라는 죄를 합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동성애 문제로 문재인을 반대했다면, 그 한국교회는 윤석열을 결코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동성애는 도덕적인 문제이지만, 무속과 신천지 문제는 종교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한국교회가 무속인을 멘토 둘 뿐만 아니라, 이단 신천지가 비호하는 윤석열을 문제도 삼지 않고 지지하는 것은 동성애 반대가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임을 자인한 것이다.
그러면 왜 한국교회는 동성애 문제로 문재인을 반대했을까? 그것은 동성애를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승만 시절부터 구축해 온 기득권을 지키는 합법적인 수단으로 동성애 문제를 정치적 쟁점화시켜서 문재인 정부를 반대한 것이다. 그래서 동성애를 반대한 한국교회가 윤석열의 무속과 신천지 비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윤석열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 사람들이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와 비도덕은 따지지도 않고, 지지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백낙청은 이를 꿰뚫어 보고 “윤석열은 기득권이 만든 헛것”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무속과 신천지의 비호를 받는 윤석열을 지지하는 한국교회의 행태는 기득권을 지키려고 예수를 죽이려는 일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친구 된 것과 같을 뿐만 아니라,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죄인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 바울 신학자 김세윤은 “3월 9일은 신앙 고백하는 날이다. 하나님의 나라인지 사탄의 나라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3월 9일은 한국교회에게 우상을 심판하는 날이거나, 아니면 바알에게 무릎을 꿇는 날이 될 것이다. 슬프게도 신사에 굴복했던 우리 한국교회는 이제 기득의 탐욕이라는 우상 앞에 다시 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