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진한 젊은이가 음녀의 유혹에 빠지는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이 묘사한 후에 간통에 빠진 치명적인 결과를 경고하는 지혜자의 경계입니다. 음녀의 유혹을 따르는 것은 마치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생명을 빼앗기는 파멸을 초래합니다.
자신을 음녀의 유혹에 굴복시키는 순간 그는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일차적인 죽음이며 파멸입니다. 그리고 자기혐오와 죄책감이 따라옵니다. 간음은 자신의 몸에 죄가 있게 하는 죄이기 때문에 순간의 환락이 지나가면 죄책이 오고, 그 죄에 빠진 자신이 부정하고 가증해집니다. 이것이 자중감을 잃게 하여 자신을 타락에 방임하게 됩니다.
따라서 간음은 성령을 근심케 하고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잃게 합니다. 끝까지 회개치 않으면 영혼을 잃을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바세바와의 범죄 후에 다윗은 쇠퇴기에 접어듭니다. 회개했어도 전과 같을 수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현실적인 파멸이 닥칩니다. 폭풍 같은 환락이 지나가면 음녀에게 코가 꿰입니다. 그래서 재산도, 명예도 지위도 가족도 잃게 됩니다. 미투 운동으로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는 것을 온 세상이 목도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간음에 빠지는 것은 이 무서운 죄를 죄로 알지 않고 로맨스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간음을 로맨스가 아니라 파멸케 하는 죄로 아는 것이 이 무서운 유혹에서 자기를 구원하는 길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