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은혜로 묵상

평등 그리고 자녀 교육

아브라함-la 2022. 6. 21. 22:41

읽을 말씀 : 22:1-29, 찬송 327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2)

 

복음만 인류를 평등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평등은 하나님의 창조에 기인하는 본래적인 것입니다.(2)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므로, 그 인권의 존엄과 평등은 천부적인 권리입니다. 이 천부적 권리는 복음으로 그 정신이 온전히 드러나고 확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은 인간의 역사에서 이 천부의 권리를 대대로 냉혹하게 무시해 왔습니다. 심지어 근세에까지도 기독교 국에서 조차 노예제도가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타락한 세상은 인격이 아닌 돈과 소유에 의해 한 사람의 인격과 처우가 결정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7)

 

그러나 진정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욥과 같이 자신과 종이 동등한 인간으로 알아 그 인권과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기를 잊지 않습니다.(31:13-23) 욥에게는 하나님의 재앙과 위엄에 사로잡혀서 사회적 약자들을 억울하게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는 이익을 위하여 가난한 자를 학대하지 못하고, (16) 약한 자를 탈취하고 곤고한 자를 압제하지 못하고(22) 신용과 신뢰를 깨는 부정직으로 이익을 취하지 않습니다.(28)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정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공의를 어기고 약자들에게 불의를 행함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이며, 거국적이거나 세계적인 투쟁과 혁명을 불러오게 되는 것입니다.(8-10) 교회가 이 불평등을 지지할 때 세상에서 타도의 대상이 된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평등을 천국에 반하는 사탄적인 것으로 알고 미워하고 대처하는 것이 기독교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돈으로 인격을 결정하는 이 더러운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가를 지불하기를 무서워하는 게으름을 경계하고(13) 자기 일에 능숙한 전문가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29)

 

그리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이 근실한 자녀교육, 훈계의 의무를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인격 형성기에 자녀에게 인생의 근본적 가치관을 형성케 하고(6) 마음에 얽힌 죄성을 징계의 채찍으로 뽑아 주어야 합니다.(15) 즉 매는 실수가 아닌 악심이나 악성에 쓰는 것입니다. 자녀의 마음의 악성을 빼주는 것이 사랑이며 인격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