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은혜로 묵상

술 취함의 위험

아브라함-la 2022. 6. 22. 23:46

읽을 말씀 : 23:1-35, 찬송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31)

 

잠언 23장은 음식을 탐하지 말라는 경고로 시작해서 술 취함의 위험성을 유머스럽게 풍자함으로 마칩니다. 형식은 해학이지만 술의 무서움과 취함의 비참함은 결코 웃을 수 없게 합니다.

 

술은 재난과 근심, 분쟁과 원망 까닭 없는 상처와 음란과 광기의 충혈된 눈을 가지게 하는 사회적 문제의 요인입니다.(29-30) 음주운전 하나가 개인과 사회가 지불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생각한다면 음주가 일으키는 사고와 질병과 범죄의 피해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것입니다.

 

31절은 이 술의 강렬한 유혹을, 32절은 그 술의 치명적인 파괴력을 33-35절은 술 취한 상태와 알코올 중독 상태에 대한 풍자입니다. 헛것을 보고, 구부러진 말을 하고, 육체와 정신상태가 파도를 타고 돛대 위에 누운 것 같으며, 겁 없이 휘젓고 다니다 상처를 입어도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이렇게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은 자신의 알코올 중독을 해결-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을 잊는-하는 방법으로 다시 술을 찾습니다.(35) 이렇게 결국 술이 사람을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술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단호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술을 복음주의자들이 아디아포라adiaphora,문제”로 규정해서 신앙과 상관이 없는 일로 만들어 버린 것은 복음주의자들의 단견이고 이는 순전히 교리주의의 결과입니다. 성경은 아디아포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이 아디아포라의 근거로 주장하는 우상의 재물을 먹는 문제에서 성경은 분명한 기준을 두셨습니다.

 

첫째, 그것이 육정영에 유익한가? 둘째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는가? 셋째. 그것이 덕이 되는가? 넷째,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먹는 것도 이 기준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경건하며 성숙하고 자유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이 기준에서 술과 담배는 먹을 수 있는 것입니까? 주초 문제가 구원 문제와 상관이 없으니 해도 상관이 없도 안 해도 별거 아니라는 것은 이 성경의 기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술이 보편화 되게 일조한 이 일방적 복음주의자들은 그 책임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술이 아닌 성령에 취하고 지배되어야 거룩한 성전임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