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7계명의 적극적인 요구

아브라함-la 2013. 6. 30. 20:14

 

 

 

출20:14                                                                                                       말씀 : 라인권목사

할렐루야! 한 주간 어떠셨습니까? 내일부터 칠월이 시작되는데 주의 은혜로 강건들 하시고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7계명은 혼인관계를 깨지 못하고 보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간음은 사형에 처하지만 약혼전의 간음에 대하여는 혼인하게 했다는 것이 이를 분명히 입증 합니다. 7계명은 성적인 순결이 하나님의 백성 된 표징이라고 합니다. 세상은 성적인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별된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순결이 하나님의 백성 된 표징이 됩니다. 7계명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는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음욕에 불타면 체면도 양심도 하나님도 없게 됩니다. 오직 자기 정욕만 있습니다. 그래서 간음은 결국은 영적인 간음이 되고 이 영이 간음의 뿌리이지 동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간음을 문화로 여기게 하는 사탄과 싸워야 하고 육신의 정욕을 복종시켜서 혼인관계의 순결과 영의순결을 동시에 보존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주의 깊게 들으셨다면 마음에 이런 질문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음욕까지 죄로 보시고 영의 순결까지 요구 하시는 것을 볼 때 인간의 성적인 본성 자체를 죄로 보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성적인 욕구는 가능하면 억제하고 금욕하는 것이 유익하고 영적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감수성이 예민하신 분들은 혼인도 하지 않고 동정으로 주님을 섬겨야 하겠다는 마음이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인간의 성욕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겨서 스스로 거세를 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오리겐이라는 알렉산드리아 교부는 실제로 거세를 했습니다. 바울도 혼인하지 않고 오직 주님과 복음만을 위하여 헌신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의 사역자들은 사제가 될 때 순결을 서약하고 혼인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냅니다. 독신을 더 거룩하게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우리의 성적인 본능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1, 왜 하나님은 사람을 성적인 존재로 지으셨냐는 것입니다. 즉 성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물론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원리를 적용하면 간단합니다만 우리의 성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해서 성을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창1:26-28, 2:18-25절입니다.

 

 첫째 성은 함께 함에 그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창1:27절은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고 합니다. 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짓되 남녀로 지었을까요? 여기에 대하여 칼 바르트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계시는 분이 아니시라 삼위 하나님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삼위로 계신다는 것은 함께 하신 다는 것입니다. 같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단일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의사도 함께, 목적도 함께, 의지도 함께 이렇게 단일성을 이루시는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인간도 하나님과 같이 함께 하는 존재가 되게 남녀 양성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성은 함께 살고 같이 나누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게 성경과 세상 철학이 다른 점입니다. 여러분, 나의 반쪽이라는 말이 있지요. 이는 플라톤의 말입니다. 그의 향연에 인간은 본래 남녀가 하나인 “안드로진”이었는데 인간이 신께 잘못하여 벌 받아서 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반쪽이 자기 반쪽을 찾아가는 것이 에로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남녀로 지었습니다. 이 다른 양성이 한 몸이 되 것이 성의목적이라고 하십니다. 즉 철학과 같이 내게 꼭 맞는 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참된 성애는 다름을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질적인 것을 함께하고 같이하는 것입니다. 이성이라는 것은 그냥 옆에 있어 주어도 행복한 것입니다. 혼자되신 권사님들 지금 내 곁에 돌아가신 영감이 계시기만 해도 좋고 위로가 되고 안식이 되겠지요? 아내와 남편이 그냥 함께 함이 기쁨이요 행복이요 안식입니다. 이게 성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현대의 성지상주의는 성의 왜곡입니다. 그렇다면 나이 많아서 성적인 능력이 없을 때는 진정한 부부가 아닙니까? 늙어서 인생의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안식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함께를 가꾸시는 것이 6계명을 적극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축복의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혼인해도 자녀를 갖지 않으려는 풍조가 팽창해져 가고 있습니다. 살기가 어렵고 세상이 소망이 없어 보여 이런 세상에 자녀를 살게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나라가 일제아래 있을 때나 그리고 6,25를 당할 때 만일 우리 부모들이 세상을 비관해서 사랑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휴전동이입니다. 이땅에 포연이 가득한 시절 만일 이런 세상에 자녀를 두어서 무엇하냐하고 부모님이 사랑을 나누지 않았으면 지금 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포로된 백성들에게도 혼인하여 자녀를 낳고 거기서 번성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렘29:3-7) 그래서 유대인들은 혼인을 반드시 할 것으로 믿습니다. 성경을 팔아서 혼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경건주의 운동하는 신자들은 이 명령을 문자적으로 순종합니다. 이것이 자연적인 성장입니다. 그러므로 성을 거룩하게 여기고 번성의 축복의 수단으로 믿으시를 바랍니다. 건강하고 경건한 자손을 위하여 경건하고 아름다운 성을 가꾸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로, 인간의 성은 성적인 즐거움을 위한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부부관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부부생활을 할 때에 아무 감정이나 느낌이 없이 번식을 위하여 짝 짓기를 합니까? 만약 아무런 감정이 없이 한다면 그것은 죄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몸으로 예배합니다. 그러나 몸을 드리면서 예배와 합당한 마음-회개함, 순종함-믿음이 없다면 범죄행위 인 것 같이 부부관계에서 행위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죄악입니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코제트의 엄마 팡틴이 쫓겨나서 부두에서 몸을 파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은 추하다 못해 아주 야비합니다. 이 장면이 처음 나올 때는 장래가 어수선했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이 계속되자 장래는 숨소리 하나 들리기 않게 엄숙해졌습니다. 거기서 사랑이 없는 성이 어떻게 인간성을 말살하는 지가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간음해서 안 되는 이유이고 강요된 성이 안 되는 이유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성을 지으신 것은 성적인 기쁨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2, 그러면 성경은 이 성과 성적인 본능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첫째 성은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답고 거룩한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창1장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어떻게 지으셨다고 합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1:27) 그리고 28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진리는 하나님은 사람을 남녀 즉 성적인 존재로 지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 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따라서 거룩하신 하나님 내셨다면 그것은 다 거룩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복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려면 성적본능이 발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적본성을 지으시고 그 성을 축복하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물질과 육체와 성적본성이 죄악 되고 악하다는 것은 헬라의 영육이원론의 철학이지 성경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이 선한 것 같이 하나님이 지으신 성도 선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혼인을 귀하게 여기고 침소를 거룩하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만물을 감사함과 믿음으로 받으면 다 거룩한 것과 같이 성적 본능도 그 자체로는 거룩합니다. 그러므로 성을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믿고 감사함으로 사용하여 더욱 아름답고 성별되게 가꾸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을 성경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관계로 예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관계가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입니다. 이 거룩한 관계를 부부관계로 비유한 것입니다. 이걸 가장 잘 보여주는 성경이 호세아서입니다. 2:19,20을 보면“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든다고 하셨습니다. 렘2:2절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신혼 때의 사랑” 즉 허니문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약교회와 주님의 관계를 신랑 신부라고 하시고, 신약성도의 구원의 완성을 계시록은 혼인잔치라고 하셨습니다. 아가서는 이사랑 예찬입니다. 한구절만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 팔로 나를 안는구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아2:5-7) 성경은 이렇게 부부의 성을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예찬합니다. 그러므로 성과 성적본능을 추하고 더러운 것으로 여기는 것은 세상철학이지 성경이 아닙니다. 성과 성적본능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감사하고 귀한 것이니 더욱 거룩하게 가꾸어가시므로 7계명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그래서 성경은 부부는 부부간에 성적인 책임을 다하고 누리라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고전7:3,4은“남편은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부는 배우자에게 성적인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4절은 쉽게 말하면 성을 자기만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를 위하여 봉사하라는 뜻입니다. 현대에 많은 부부들이 성적인 부조화로 갈등하고 심지어 이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성은 내 것이 아니라 배우자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을 배우자의 것으로 봉사하면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방하지 말라고 합니다. 기도할 때도 합의하여 분방하라고 합니다. 성경은 책임만 다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부부의 성을 누리라고 하십니다. 잠5:15-19을 봅시다. 너는 네 우물과 샘을 마시라고 하십니다. 그 물을 타인과 나누지 말라고 하시고, 네 샘으로 복되게 하고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고 그 품을 족히 여기고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부부의 성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서로의 성을 즐거워하고 족하게 여겨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간음하지 말라는 적극적인 의미입니다. 7계명의 적극적인 요구는 부부의 성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라는 것입니다. 팀 라하이라는 가정사역자가 있습니다. 이분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목사님이 상담하는 중에 남편에게 유혹을 받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집에 캐딜락이 있는데 퍼브릭카를 보겠습니까?” 우리 한국식으로 말하면 집에 에쿠스가 있는데 티코를 보겠습니까? 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집에 흐르는 샘이 있는데 구정물을 마시려고 하겠습니까? 아내, 남편의 품을 족히 여기면 사탄이 틈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성을 가꾸고 개발하고 만들어 가십시오. 부부의 사랑의 띠를 굳게 하여 타락한 성의 유혹에서 승리하시고 행복부부로 사시므로 7계명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3, 그렇다면 자기와 이웃의 이 아름답고 거룩한 성과 혼인관계를 우리는 적극적으로 지켜주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자기와 이웃의 정조와 가정의 순결을 적극적으로 지키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혼전순결을 굳데 지키므로 자신과 이웃의 성과 가정의순결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총신에서 가르치던 김성수목사는 혼전순결을 사랑의 발전기라고 했습니다. 혼전순결 상실하면 죄책감으로 성령 충만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부부관계가 온전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배우자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혼인관계가 아닌 성을 죄로 여겨 자신과 이웃의 정조와 가정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혼인의 정조를 굳게 지키고 이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다윗의 경우를 보십시오. 다윗이 밧세바와 죄를 범한 후에 하나님은 그 집에 음행과 칼이 떠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사람이 숯불을 품고 어찌 데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타락한 전병욱목사의 교훈이 이것입니다. 따라서 이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음행의 연고없이 이혼하면 간음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은 이혼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이혼은 세상 사람의 풍속이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없는 일입니다.

셋째 우리안의 죄악 된 욕망을 용납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싸우셔서 십자가에 못박는 훈련를 해야 합니다. 주님이 네 눈 범죄케 하면 뽑고 손이 실족하게 하면 찍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마5:29-30)장난치지 말고 죄로 단호하게 처리하라는 뜻입니다. 로멘스니 예술로 여기면 안 당합니다. 단호하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십시오.

넷째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하나님을 최고의 행복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간음은 마음에 하나님이 없을 때 따라오는 열매입니다. 7계명은 1계명의 시금석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더 사랑하는 것이 간음입니다. 그러므로 부부의 성의 기쁨보다 하나님을 더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부의사랑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합일의 사랑의 맛보기입니다. 부부의 합일이 기쁨이면 하나님의 장막이 우리를 온전히 덮을 때에 우리는 얼마나 충만한 기쁨을 누리겠습니까?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이세” 이 상태에서 음행을 품겠습니까? 영적인 간음이 육적인 간음의 뿌리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하심과 같이 우리 영까지 거룩해지고 깨끗해지기를 소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7계명의 요구에 얼마나 부족합니까? 우리는 얼마나 추합니까? 그러므로 7계명은 우리를 십자가 앞으로 나가게 합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부르짖어 기도하게 만들고 주님처럼 되기를 내 소원이 되게 하십니다. 실족하면 화가 있지만 실족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영육간에 순결하게 하시도록 주님께 맡깁시다. 그래서 흠도 티도 없는 정결한 신부로 주님 앞에 서시는 순결한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은 흠도 티도 없는 정결한 신부로 기필코 우리를  주님 앞에 서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게 7계명의 의도이자 축복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