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귀환자들의 율법의 실패와 예수

아브라함-la 2022. 8. 21. 15:19

022,8,21, 주일

본문 : 느5:1-5  말씀 : 라인권 목사

평안입니다. 이제 밤이면 서늘한 기운을 느낍니다. 가을이 오는 소리는 한 해가 기우는 소리입니다. 더욱 깨어 있고 분발함으로 금년의 기도를 이루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할 때의 이스라엘의 형편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성전이 515년에 재건되고 성벽을 재건할 때가 445년이니 성전을 재건하고 70년 후입니다. 이때의 백성의 일부가 극심한 빈곤에 빠져서 심지어 자식을 동족에게 종으로 파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5)

 

이런 극심한 빈곤에 처한 이유는 첫째, 과도한 세금 때문이었습니다. 토지를 팔아서 빚을 내서 왕에게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4) 둘째는 여기에 흉년까지 들었습니다. 저당을 잡히고 곡식을 구해야 했습니다.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실정이 된 것입니다.(3) 셋째 이런 어려운 때에 귀환한 가진 사람들이 고리대금을 하고, 그래서 빚 때문에 자식을 종으로 넘기게 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11,8) 이게 꼭 포로 직전의 이스라엘의 상태입니다. 해방되어서 돌아올 때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돌아왔는데, 끼니를 잇기도 어렵고 자식이 빚으로 넘어가니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습니까?

 

율법에 실패하고 있는 귀환자들

이게 율법을 따르지 않는 현상입니다. 13장을 보면, 느헤미야가 잠시 왕에게 갔다 와보니, 성전 재건과 성벽 제건을 방해하던 원수 도비야가 대제사장과 결탁하여 성전 뜰에 큰 방을 만들었습니다, (5) 그리고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서 레위인들이 자기 밭으로 도망했습니다.(10)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15) 그리고 이방인과 혼인해서 선민의식과 신앙이 혼합되고 있었습니다.(23) 이렇게 율법을 떠날 때에 일어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이 경제적 불공정을 당하는 불의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이렇게 율법 순종에 실패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됩니다.

 

율법에 대한 귀환자들의 태도

첫째는 바벨론 포로로 인한 각성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는 그들이 하나님께 징벌을 받았다는 깊은 인식을 가지게 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율법을 떠나서 포로 되었다는 깊은 각성을 한 것입니다. 둘째는 이들은 이런 각성에서 율법 위에 새 이스라엘을 세우려고, 안정된 바벨론을 포기하고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참 이스라엘입니다. 셋째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두 번에 거친 대대적인 개혁운동을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에스라와 협력해서 저 유명한 수문 앞 광장의 회개 운동, 개혁을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포로라는 매와 교훈으로도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겁니다. 포로로 해방이라는 기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함을 경험해도 안됩니다. 바벨론의 안정을 포기하는 경건과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재건하는 헌신과 열정으로도 안되더라는 겁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두 번에 거친 대대적인 회개 운동 개혁으로도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꼭 이렇습니다. 축복을 경험하면서도 순종하지 못합니다. 매를 맞고, 교훈을 받고 결심하면서도 못합니다, 회개하고 결단하면도 다시 넘어집니다. 요즘 개혁이 화두입니다. 개혁 개혁해도 안됩니다. 이렇게 귀환자들의 열심과 헌신으로 안 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귀환자들의 열심으로도 안 되는 이유

이걸 선지자 선지자 예레미야가 ”마음“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0) 즉 개혁이 피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귀환자들이 진심이 아니었나요. 아닙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과 그 나라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왜 율법을 못 지킵니까? 그게 인간의 타락한 마음 때문입니다. 렘 17:9를 봅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이 마음은 원해도 현실에 직면하면 그 마음이 변합니다. 안식일이나 십일조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나 이웃보다 수입이 우선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이 거짓됩니다. 이게 율법에 실패하게 합니다. 이걸 사도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라고 한 것입니다.(갈 2:16)

 

새 영을 주시는 새 언약의 예수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새 언약을 주신 이유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시고 성전을 주시고, 그것을 가르칠 제사장을 주셔도 마음이 부패해서 안됩니다. 선자자를 보내시고, 바벨론 포로라는 징벌로 각성케 해도 안 됩니다. 부패한 마음은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는 헌신과 회개의 결단도 피상에 그치게 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이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 언약을 주십니다.(렘 31:31) 이 언약은 애굽에서 나오던 때와 같이 율법을 돌판에 새겨 주는 것과 같이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법을 그 백성 속에 즉 마음에 기록하여(33)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인 율법이 본성이 되게 하십니다. 이 새 언약이 예수입니다. 하나님은 독생하신 아들 예수로 새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첫째, 예수는 육신으로 율법 아래 나셔서 모든 율법의 의를 이루시고, 율법을 순종치 못하는 우리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대행과 대행으로 율법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게 하셨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죄로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사람 예수의 순종으로 생명과 의에 이르렀습니다.(롬 5:18) 이 은혜로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구속의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했습니다. 이 은혜가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해서 사는 하나님의 법 율법이 마음에 새겨지게 했습니다. 이 예수가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 예수가 율법을 이루는 능력입니다. 이 예수가 들어오면 율법을 이룹니다. 이 예수로 새 사람이 됩시다. 이 예수로 율법에 성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율법을 살 수 있게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가 죽었습니까? 율법을 범한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사활로 구원받는 이가 여전히 율법을 살 수가 없다면 그 구속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의 구원은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살 수 있게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롬 6:4를 봅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 마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결단이나 헌신으로 안 되나 이 예수는 말씀을 순종케 하는 충족한 능력이십니다. 이 예수로 우리는 순종할 수 있습니다.

 

셋째, 결정적으로 예수는 죽으심과 부활로 예수의 영이신 성령을 주셔서 우리 영이 거듭나서 새 영과 새 마음을 되는 새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이걸 에스겔은 더 구체적으로 예언했습니다, (겔 36:25-27) 맑은 물, 즉 그리스도의 피와 말씀과 성령으로 사죄를 주시고, (25)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셔서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율례를 행할지라 “ 고 하셨습니다. 이걸 중생이라고 합니다. 이 중생을 루이스 벌콥은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중생이란 새 새명의 원리를 인간 속에 뿌리시고 영혼의 지배적인 성향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

 

이게 무슨 말이냐면 사람은 죄로 주격인 영이 죽었습니다. 이 상태가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었도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도리어 우상과 죄를 따르는 것입니다.(롬 1:28)이게 영이 죽은 것입니다. 이 영이 하나님과 틀어져 있어서 그 뜻을 떠나게 합니다. 이 영을 예수가 성령으로 거듭나 새 영 새 마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싫어하는 본성이 죽고 하나님을 찾아가는 영이 살아난 것입니다. 이 성령이 큰 자나 작은 자나 하나님을 알게 되어 물을 필요가 없게 됩니다.(요 14:20, 16:13,23) 이 영은 예수의 영이라서 예수가 아버지의 뜻을 원하고 순종함 됩니다.(요 15:10) 이 순종을 하면 육의 소욕이 죽고 영의 소욕이 살아납니다. 이 순종이 사람과 물질과 환경과 화목하게 합니다. 사람도 물질도 환경도 사건도 다 나를 돕습니다. 모든 것이 선을 이룹니다. 내가 되고 잘됩니다. 그래서 대우가 달라십니다. 이게 축복입니다. 이게 말씀 순종의 축복입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예수가 율법의 실패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율법의 실패로 십자가 앞에 나갑시다. 율법의 실패로 예수를 봅시다. 성령으로 거듭나기를 사모합시다. 거듭난 새 영을 따라서 판판이 율법에 실패하던 우리가 판판이 율법이 이루어지는 승리를 경험하여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 되고 -주 예수 내 마음에 오심“ 소리 높여 부르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