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일상속의 아름다움

깊어 가는 가을 끝물 코스모스

아브라함-la 2022. 9. 30. 17:27

꽃무릇은 가을의 전령이랄까요.  여름내 질 푸르던 꽃무릇이 잎이 사위고 몇 주간이 지나면 푸른 꽃대가 올라오고 만나지 못하는 사랑이 사모함으로 빨갛게 피어납니다.  이렇게 꽃무릇이 피면 가을입니다.   제 조그만 정원 고욤나무 아래 화려하게 피어난 꽃무릇이 참담하게 시들면  이미 한 가을입니다. 

인근에 코스모스 길이 조성 되고 걷기 대회를 한다는 현수막이 내 걸렸었지요.  가을 하늘 아래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정취가 그리워졌습니다. 그런데 그만 코로나에 걸려 버렸습니다. 4차 접종도 했고, 유럽도 다녀와서 코로나는 내게서 지나간 것으로 여겼지요.  그래서 몇 년 만에 안부를 전해 온 하와이에 사시는 집사님께 탈없이 코로나도 잘 넘겼다고 했지요. 그 말하고 딱 한 주 만에 코로나에 감염되어 꼭 한 주간을 앓고 한 주간을 격리해야 했습니다. 입이 방정이랄까요. 이렇게 내일 일을 모르는 게 연약한 우리네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기운을 차린 날 오후 4시가 넘어서 그 코스모스 길을 찾았더니, 이미 코스모스는 지고 끝 물만 엉성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성긴 꽃 속에서  아직은 푸른 씨방들이 따가운 가을 햇살에 씨앗을 익히고 있는 풍경이 쓸쓸하고 헛헛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냉패를 당한 느낌을 극복하려고 눈을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추석 전에  수확한 논은  벼 그루에서 자라 오른 새싹으로 푸르렀고,  꾀꼬리 빛으로 익어 가는  들은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 황금  들판을 흐르는 한 줄기 시냇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기러기 서너 마리가 물 위를 낮즈막하게 나는 게 평화로웠지요.

그 꾀꼬리빛 논을 배경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가냘픈 코스모스 꽃을 폰카에 담았습니다. 가냘픔에도 태풍에도 꺾기지 않은 코스모스!  봄날부터 긴 여름의 폭염에도 청순을 잃지 않은 코스모스!  그 작은 꽃에 우주를 담고, 꽃이 지면 까맣게 내일의 꿈을 익히는 저 가녀린 꽃이 인생보다 위대해 보임은 무슨 탓일까요? 서둘러 봄에 피지 않고, 한 해가 기우는 시절에 피어나는 코스모스는 그 인고의 시간에 무엇을 기도 하며, 무엇을 기둘려 왔을까요.

  이 해인 수녀의 시 <코스모스>가 생각났습니다.

몸달아 기다리다

피어오른 숨결

오 시라라 믿었더니

 오시리라 믿었더니

 

        눈물로 무늬 진  연분홍 옷고름

      남겨 주신 노래는

        아직도 맑은 이슬

 

뜨거운 그 말씀

           재가 되겐 할 수 없어

      곱게 머리 빗고 고개 숙이면

       바람 부는 가을 길

     노을이 탄다.

 목필균 시인은 이렇게 코스모스를 읊었습니다.

내 여린 부끄러움 

색색으로 물들이고 

온 종일 길가에서 

서성이는 마음

오직 그대를 향한 것이라면

그대는 밤길이이라도 밟아 

내게로 오실까?

아! 나도 금년 가실이 가기 전에 코스모스를 두고 시 한 편 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가실이 더 깊기 전에 갈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밭을 찾겠습니다. 거기서 나이 칠순이 되어서도 가을이면 더욱 흔들리는 내 영혼을 도투와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