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노년의 환난을 이기는 노년의 신앙
아브라함-la
2023. 5. 29. 09:43
023,5,28, 주일
본문 : 시71:5-18
말씀 : 라인권목사
고려 후기에 우탁이라는 성리학자가 있었습니다. 유명한 시조 ”탄로가“가 이분의 시입니다. “한손에 가시 들고/ 또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라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저도 세월을 먹고사는 인생이라서 이제 별수 없이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노년에 없어야 하는 게 고생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노구에 병이 옵니다. 자식에게 배신 당하기도 하고. 파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노년을 비관에 빠져 지내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도 노년에 환난을 당했습니다. 70인경은 이 시를 다윗의 시로 보고 있습니다. 다윗이 노년에 아들 압살롬의 난을 당했습니다. 이 환난은 참 부끄러운 환난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겠다고 난을 이르켰으니,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이를 원수들은 하나님이 다윗을 버린 것으로 이해했습니다.(11) 하나님도 다윗을 도울 수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다윗은 사람들에 이상한 징조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7) 이게 다윗의 노년의 환난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노년의 환난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이 노년의 환난에서 찬란하게 살아났습니다. 그게 다윗의 신앙 때문입니다. 노년의 환난이 다윗의 믿음의 진가를 드러나게 했습니다, 이 시편은 이런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노년의 환난을 이기는 다윗의 노년의 신앙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노년의 환난에서도 구원을 바라는 신앙
노년의 환난을 이기는 신앙은 노년에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신뢰하여 구원을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다윗은 노년의 환난에도 하나님께로 피합니다. 주를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 반석과 요새로 믿습니다.(1-3) 이 고백은 다윗이 골리앗에게 나가던 소싯적 고백과 동일하지만, 소시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다윗의 황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늙자 아들 압살롬이 반역합니다. 책사 아히도벨까지도 압살롬에게 가담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변하는 겁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처럼 늙고 병들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하고 병들고 버림받을 때에 구원이 되십니다. 노년의 환난이 이걸 절감하여 노년의 환난에도 하나님을 피할 구원의 반석으로 신뢰하여 건지심을 확신한 겁니다. 이 믿음 대로 하나님이 구원이 되어 주셔서 다윗은 노년의 환난을 이기고 재기했습니다.
이게 사도 바울의 경험입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 변명할 때 함께 한 이들이 다 떠났지만 주께서는 항상 자기 곁에 서서 구원이 되셨다고 했습니다.(딤후 4:16-18) 이 하나님이 노년의 소망이며 위로이고 힘입니다. 그러므로 노년에도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 구원의 반석으로 신뢰하고 구원하심을 확신합시다. 구원의 은혜는 강한 자가 아닌 약한 자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한 자의 구원이십니다. 약하면 안고 업고 가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사 46:4) 그러므로 노년에도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구원으로 확신하고 노년의 환난에도 구원하실 것을 확신합시다. 병들어도 그 병고 쳐 천국가게 하십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노년의 어려움도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노년의 환난에도 기도하는 신앙
노년에 환난을 당한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믿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 기도 합니다.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 하나님께 애소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주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을 신뢰한 것입니다. 양의 소리를 아는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은 이 기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원수 앞에 머리를 들게 하셨습니다. 이 기도하는 믿음이 노년과 노년의 환난에도 평안을 누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능력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늙고 병들어도 이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 교회에 기도 많이 하시는 믿음 좋은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분이 교회에서 자기를 받아 줄 사람을 구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내 여생을 축복하셔서 건강히 주님께 가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나는 짐이 되지 않을 터이니 나를 받아 줄 분이 없냐고 했습니다. 이 말에 한 젊은 부부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부모님도 안 계셔서 외로운 처지니 우리가 그 할머니를 모시자고 했습니다. 한 가족이 되어서 가정 예배를 드리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날도 퇴근해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가정 예배를 드리고, 할머니는 할머니 방으로 부부의 방으로 갔습니다. 이튼 날 아침에 할머니가 식탁에 나오지 않으셔서 들어갔더니 할머니는 이미 천국에 가셨습니다. 장례를 모시고 유품을 정리하는데 유언장이 나왔습니다. 그 유언장은 자신의 막대한 유산을 기도 응답을 믿고 자기를 받아 준 부부에게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이라서 노후의 일이 걱정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내가 늙어도 기도하라신 하나님은 늙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약속에 신실하십니다. 기도하면 응답하십니다. 늙어 백발이 되어도 이 기도가 있습니다. 늙어 쇠약해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걱정되면 낙심 말고 기도합시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노년에도 구원이 되실 줄로 믿습니다.
노년에도 사명감을 갖는 신앙
그리고 노년의 환난을 이기는 신앙은 노년에도 사명감을 갖는 신앙입니다. 18절을 봅시다.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게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능력을 다 전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늙어도 사명감을 가진 것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이 신앙이 노년의 환난을 이기고 승리하여 그 입에 찬송이 가득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도 동일합니다.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도 자기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이 이방인이 듣도록 하게 하시기 위하여 내 곁에 계시고 강건케 하시고 모든 악한 일에서 건지신다고 하셨습니다.(딤후 4:17.18) 이게 삶의 의지를 갖게 합니다. 이게 적극적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리빙스톤은 “내게 사명이 있는 한 나는 죽지 않는다”라고 한 겁니다.
왜 노쇠하면 삶을 포기할까요? 자기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생각하면 사명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여깁니다.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삶의 의지와 건강도 쉽게 무너지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자기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살 자로 아는 것입니다. 이게 사명감을 가지게 합니다. 이 사명감이 늙어도 삶의 이유를 찾게 합니다. 자식이 다 구원받는 것 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 통일되는 것을 보아야 눈을 감을 수 있다! 교회가 부흥하는 걸 보아야 하겠다! 이렇게 살아야 할 의미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신앙이 노년의 환난도 이기게 하고, 보람 있고 향기로운 노년의 삶이 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지난 4월 노회가 양주에서 모였습니다. 양주 인근 지역 광능내에 큰 집이 있습니다. 사촌 장형이 4년 전인가 아내를 사별했습니다. 팔십이 넘었는데 건강이 여의지 못합니다. 이런 분을 코로나로 삼 년을 뵙지 못해서 노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심방했습니다. 제가 간다고 하니 좋아서 고구마를 구워 놓고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이분이 가나안 성도이지만 믿음이 깊은 분입니다.
건강을 말하다가 지금 배가 아픈데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나쁜 병이라면 수술 안 할 건데 갈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약 나쁜 병이면 병이 깊어지기 전에 스스로 당신 생명을 결정하겠다는 겁니다. 이분 돈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사는 아파트도 우리 교회만 한 평수입니다. 딸이 독신이기는 하나, 돈 잘 버는 효녀입니다. 그런데 병 때문에 딸에게 짐이 될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당신의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생명을 결정하게 다는 겁니다.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또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형님께 94세를 향수하시고 돌아가신 아버님 이야기 기를 해드렸습니다. 아버님은 시간 시간 늘 자는 듯이 가게 해달고 기도하셨는데 그대로 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무서운 생각 말고 하나님을 바라고 기도하라고 권하고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해 드리고 왔습니다. 이게 오늘의 말씀을 드리는 동기입니다.
저도 이제 정년을 맞았습니다. 저도 노후가 걱정될 때도 있습니다. 이 땅의 거개의 노인들이 노후를 걱정하는 중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늙어 백발이 되어도 구원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노년의 환난이 있다 해도, 우리에게는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죽지 않고 꼭 살아서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 신앙이 노년의 환난도 이기고 다윗 같이 찬송하는 노년이 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 신앙이 아브라함과 같이 여한 없는 족한 노년이 되게 할 것을 믿습니다.
라이트라는 스코틀랜드 목사가 여러 교구를 목회하다가 24년을 어부들을 목회했습니다, 사역을 마치는 주일 마지막 강론을 하고, 성찬식으로 평생의 사역을 마치고 늙은 몸으로 강단을 내려오니 만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날 밤 이 신앙을 고백하는 시 한 편을 썼습니다. “때 저물어 날 어두니/ 구주여 나와 함께 하소서/내 친구 나를 위로 못할 때/ 날 돕는 주여 함께 하소서/ 이 육신 쇠해 눈을 감을 때/ 십자가 밝히 보여주소서/ 내 모든 슬픔 위로 하시고, 생명의 주여 함께 하소서.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