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강 해/주기도문 강해

응답 받는 기도의 본

아브라함-la 2023. 9. 3. 22:28

023,9,3 주일

본문 : 마6:9-13

말씀 : 라인권목사

하나님의 은혜로 금년 여름을 건강히 나게 하시고, 9월을 맞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벌써 밤에는 긴소매 옷이 생각납니다. 이번 가실이 하나님의 사중 계획안에서 풍성한 추수가 있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세 가지 주제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과 같이 기도하지 않고 바로 기도할 수 있게“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참된 기도의 본으로 주기도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기도는 바른 기도 참된 기도의 모본인 것입니다.

 

참된 기도는 무엇인가?

이렇게 주기도가 참된 기도의 본이라고 할 때에 우리가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참된 기도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이걸 분명히 증거 하는 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주기도를 가르치신 동기입니다. 주님은 외식하는 기도를 거짓 기도, 헛된 기도로 여기셨습니다. 외식하는 기도가 왜 헛됩니까? 기도는 하나님 대면해서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인데, 외식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상대를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듣지 않으십니다. 응답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응답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나를 받아 주시는 겁니다. 나를 만나주셔 임재 가운데 있게 하시는 것이 응답이요, 나와 교제해 주셔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 응답입니다. 이게 기도요, 이를 시모 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게 일차적인 기도응답이요, 이 응답이 있어야 구하는 것을 응답받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께 기도를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기도할 때에 허공을 치지 않고 주님처럼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고, 주님처럼 응답받기 원해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처럼 하나님을 만나도록, 당신처럼 응답받는 기도를 하도록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주기도를 모범기도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기도는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응답이 없는 기도는 다 헛것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가 참된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은 이렇게 응답받는 기도를 하도록 응답받는 기도의 본으로 주신 기도입니다. 주기도는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하면 응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응답받는 기도가 참된 기도

우리 개혁교회 표준문서들은 이 응답을 강조합니다. 개혁자들이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에서 기도를 가르칠 때에 “기도가 무엇이냐”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왜 기도가 필요한가”로 시작하여 “하나님은 응답하신다”로 끝납니다. 하이델베르그문답 제129문 아멘이란 뜻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아멘”은 참되고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이런 것들을 소원하는 심정보다도 더 확실하게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들으십니다.“고 했습니다. 바르트는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구하는 사물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확정적이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응답이 없는 기도는 헛된 기도입니다. 참된 기도는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그러면 주기도문이 응답받는 기도의 본이라면 주기도문은 어떻게 응답받는 기도의 모본이 됩니까?

 

응답받는 기도의 양식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여기에 응답받는 기도의 양식이 있습니다. 주기도는 응답받는 기도의 양식입니다. 서류를 낼 때에 양식이 맞지 않으면 반려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법에서 보듯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양식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예배법을 정해 주십니까? 하나님이 받으실 예배가 어떤 예배 인지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예배하라고 예배의 형식으로 제사법을 주셨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의 양식”으로 주기도문을 주신 겁니다. 이 주기도문에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의 양식의 세 가지 모범이 있습니다.

 

첫째, 주기도는 어린아이의 간구와 같습니다. 주기도의 간구의 직접, 솔직함과 소박성에서 응답받는 기도 양식 본입니다. 주기도의 여섯 개의 간구는 소박하고 평이한 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도를 “오곡백과 무르익고 국화 향기 드높은 국향지절에” 우인대표 혼인축사하듯 합니다만, 주기도문에는 추상적이거나 고상한 시어나 강조적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살아계신 인격이신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이므로 과장된 언어의 기교나 우회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시기나 하듯 상투적인 술어를 쓰는 것은 서양식으로는 기도라는 빵에 잼을 바르는 것이며 우리식으로 사탕발림입니다. 기도는 정신이지 기술이 아닙니다. 기도는 간구입니다. 간구, 간청, 탄원은 어린아이 같이 직접적이고 솔직하고 소박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들으시는 참된 기도,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둘째, 주기도의 간구의 간결성이 응답받는 기도 양식의 본입니다. 이방종교는 기도를 많이 길게 오래 해야 이루어진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백일기도 합니다. 이런 영향으로 이방인 같이 오래 기도해야 응답받는 걸로 여기는 경향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말을 적게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희는 땅에 있으니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니라“ 주기도문은 “ 이 전 5:2의 주석입니다. 주기도는 여섯 개의 짧은 간구가 영문으로 66 단어, 한글로는 50 단어 149자로 되어있는 짧은 기도로 낭비된 단어가 없는 간결한 기도입니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절실하고 간절할수록 기도는 직접적이고 요점적이 됩니다. 바리새인의 기도가 장황한 것은 간절하지 못해서입니다. 세리는 절실하고 간절했습니다. 이 간결한 기도가 발리새의 장황한 마라톤 기도를 이겼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피니는 “진심과 믿음이 기도에 날개를 제공한다면 적은 기도는 큰 응답을 가져오며 또 빨리 가져올 수 있다, 짧은 말이 살아았는 마음에 우러러 나오는 것이라면 땅과 하늘 사이를 연결할 만한 길이가 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간절해서 간결한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셋째, 단순성과 포괄성에서 양식의 모범입니다. 주기도는 단순해서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천박하지 않습니다. 그 단순한 단어에 지금까지 헤아리지 못하는 깊은 진라가 있습니다. 심오한 것은 관념의 소관이지 언어의 소관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단순한 간구에 모든 것이 포괄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에 율법과 자연법이 요약되었듯이 주기도문은 모든 성경의 가르침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기도 깊은 묵상을 요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양식으로 기도하기를 배워서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를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순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여기에 응답받는 기도의 순서가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응답받는 기도의 순서의 본입니다. 첫째, 주기도는 먼저 찬양하고 간구하고 찬양으로 마치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응답받는 기도는 먼저 찬양하고 간구하고 찬양하는 순서로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 응답받는 기도는 먼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소원하여 하늘의 것을 간구한 후에, 땅에 있는 개인적인 필요를 구하는 순서로 드리는 것입니다. 셋째, 응답받는 기도는 땅에 것,, 개인적인 필요도 자신의 구원과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하여 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의를 구하면 땅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고 확약하셨습니다.(마 6:33)이 주기도의 순서로 기도하시면 항상 하나님과 만나 임재 안에 있고, 구하는 대로 받는 기도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정신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이 주기도에는 응답받는 기도의 정신이 있습니다. 기도의 힘은 입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올리는 그 정신, 즉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기도할 때에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네 마음에 믿으면 그대로 된다고 하신 겁니다.(막 11:23,24)이게 산을 옮기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이 “믿음과 신뢰”가 응답되는 참된 기도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는 아버지라는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이 신뢰가 응답의 확신입니다.(마 6:30,32눅18:7)

 

그래서 우리 주님은 모든 기도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시는 것을 감사하옵나이다,”(요 11:41,42)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불렀습니다. 주님은 “창세 전에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의식으로 아버지라고 불렀고, (요 17:23,24)복종의식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습니다.(눅22:42).,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는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하는 정신으로 간구합시다. 아버지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복종하는 믿음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셔서 예수님처럼 들으심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기도하시는데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지 못하고, 하늘의 이슬에 젖지 못하십니까? 간구하는데도 응답을 경험하지 못하십니까? 주님은 이런 우리가 기도할 때에 주님처럼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고, 주님처럼 응답받을 수 있게 응답의 본으로 주기도를 주셨습니다. 이번 주기도문 강해에서 주님께 이 응답받는 기도를 배우서 주님처럼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으시고, 주님처럼 구하는 대로 받는 응답받는 기도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