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강 해/주기도문 강해

주기도문의 기능

아브라함-la 2023. 9. 11. 10:53

023,9,10, 주일강론

본문 : 마6:9-13

말씀 : 라인권목사

하나님의 사중계회 안에 있음을 축하드립니다. 주기도문은 형식과 순서와 정신에 있어서 주기도문은 응답받는 참된 기도의 본입니다. 여기서도 주기도문이 응답받게 바로 기도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주기도문의 이런 기능을 공부하며 우리 기도를 바로 세우시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주기도문의 기능을 생각할 때 우선 부정적으로 주기도문은 무슨 마술적인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천주교는 묵주기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모송으로 시작해서 주기도문과 다른 기도문들을 주문을 외듯 묵주를 돌리면서 기도하는 것을 묵주기도라고 합니다. 이는 기도문의 내용만 다를 뿐 기능면에서는 불교가 염주를 돌리며 기도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묵주만 아니라, 주기도문 반지도 있습니다. 명동성당 근처에 이런 용품을 파는 매장은 “주기도문 반지는 그 자체로 나만의 힘을 담아냅니다. 이 반지를 착용하면 일상의 스트레스와 혼란에서 벗어나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도 기적을 이루는 십자가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기독교미신입니다.

 

이렇게 주기도문에 마술적 기능이 있는 것 같이 여기는 경향이 천주교만이 아니라, 우리 개신교 안에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검색해보니 이런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추석에 가족이 벌초를 간 후에 집에 남아 있던 부인이 공연히 마음이 불안해서 주기도문을 무조건 외웠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기가 주기도문을 외우던 그 시간에 아이 둘이 장난하다가 일메타 오십이 넘는 산소 아래도 떨어졌는데 날카로운 그루터기가 아닌 벌초한 풀더미에 떨어져 다친 곳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이 위력적이다. 불안하면 마음에 평안이 올 때까지 무조건 주기도를 외우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기도문을 주문 외우듯 합니다. 주기도문을 이런 식으로 사용해서 루터가 말했듯이 주기도문을 기독교의 최대의 순교자로 만들고, 가장 불쌍한 순교자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단언컨대 주기도문의 기능이라고 할 때에 주기도문은 주기도문 자체에 이런 마술적인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주기도문을 주실 때에 주님께서 주기도문에 담기게 하신 주기도문의 기능은 어떤 것이 일까요?

 

첫째, 주기도문은 세상과 육신으로 기우는 우리 영을 하늘과 하나님께로 올려주어 신령한 세계에 있게 하며 신령한 삶을 살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는 땅에 있는 우리와 우리의 마음과 영을 하나님과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게 합니다. 그리고 이에 따르는 간구들은 하나님과 하늘의 일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내가 하는 일, 하려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합니다. 임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게 합니다. 그런데 육신에 있는 우리는 하루를 살다 보면 하나님도 천국도 하나님의 뜻도 까맣게 잊고 오직 세상과 육신에 골목해 있습니다, 찬송 한 번 못하고 하루를 지냅니다. 영의 사람은 쇄하고 육이 성합니다. 이러면 우리 영이 곤합니다. 이런 우리를 주기도는 하늘로 올려줍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안식과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합니다. 천국과 천국의 일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땅에 것이 아니라 위엣것을 구하는 신령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간구할 때에도, 하나님과 하늘의 것을 위하여 양식을 구하고, 용서를 구하며, 보호를 구하게 됩니다.  이 주기도문은  땅엣 것, 땅에 일 육신의 일에서도 하늘을 보게 하고, 하나님을 보게 하고, 하늘의 이슬에 젖게 하고, 천국의 일과 소망을 새롭게 해 줍니다. 이게 주기도문의 기능입니다. 이 기능은 마술적이고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주기도문을 아는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을 사유함으로 드려서 육신의 사람을 영적인 사람이 되게 합시다. 주기도문으로 몸은 땅에 있어도 영은 하늘에 있는 사람이 되게 합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천국으로 이 땅을 사는 신령한 성도가 되게 하시를 축복합니다.

 

둘째, 주기도문은 하늘과 땅, 영육이 균형이 이루는 기도와 신앙이 되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주기도문은 하늘에서 시작하여 하늘에서 마칩니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 이런 것을 하늘에 속한 것, 위엣것, 영에 속한 것, 신령한 것이라고 부릅니다. 주기도문은 이 신령한 세계에 있게 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유혹과 위험이 있습니다. 이 유혹과 위험을 잘 입증하는 것이 변화산에서 주님의 변화를 체험을 세 제자들입니다. 주님이 해와 같이 빛이 나십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와서 주님과 이야기합니다. 이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너무 황홀하고 좋았습니다. 그리스도인 이 산 위의 경험을 알아야 합니다. 주기도문은 이 하늘로 올려 주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세계가 너무 좋아서 그 상태로 영원히 있기를 원했습니다. 초막 셋을 짓고 여기서 살자고 했습니다.(마 17:4) 이게 신비주의입니다. 이 신비주의는 현실을 외면하는 염세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산 위의 경험이 제자들을 신비주의와 염세주의에 빠뜨린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주님은 십자가에 갈 수 없습니다. 사명을 잊었습니다. 삶을 잃은 겁니다. 이게 신비주의와 염세주의의 함정입니다. 이것이 신앙인 줄로 알아서 신비주의에 빠지거나, 현실을 외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정도 외면하고 은사집회를 찾아다니고, 기도원을 전전합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하늘에서만 머무는 게 아닙니다. 하늘에서 시작하여 땅으로 내려옵니다. 어디까지 내려옵니까? 양식까지 내려옵니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말같이 양식은 가장 현실적 이것이며 육신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기도는 더 내려갑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도 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주기도문은 이 자신의 현실과 실상을 직시하게 하고 구하게 합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하늘만 보다 웅덩이에 빠지는 천문학자 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과 땅에 것이 균형을 이루게 합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은 하늘의 것을 간구한 다음 이 세상의 삶을 위하여 육신의 것, 땅엣 것을 구합니다. 양식을 물질적인 것입니다. 사람이 용서가 필요한 것은 거의가 물질, 듯 돈에 관련이 있고, 그래서 보호도 필요합니다. 이 물질을 구하게 하셨는데 이 물질은 선악과와 같이 돈을 의지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유혹과 위험이 있습니다. 빈하면 빈해서 물질을 의지하고 부하면 부해서 돈이 신이 됩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이 유혹을 이기게 합니다. 주기도는 양식이라는 물질적 필요에서 용서라는 영적이며 정신적인 필요로 올라가고, 하나님이 지키셔야 한다고 하나님을 방패와 산성으로 삼게 하나님으로 올라갑니다. 이렇게 주기도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의 유혹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즉 땅엣 것을 구하고 살면서도 땅엣 것 육신의 것에 함몰되게 않게 땅엣 것에서 하늘의 것, 영의 것으로 올려줍니다. 그래서 우리 기도가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신령한 것과 물질적인 것이 균형을 이루게 합니다. 기도가 균형을 이루면 신앙과 삶도 영육이 조화를 이룹니다, 몸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을 알고 해야 합니다. 이번 주기도문 강해로 주기도문이 우리 기도와 신앙이 영육이 조화롭고 균형 잡힌 신앙인이 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주기도문은 기도자를 하나님 앞에 서는 참된 기도자로 세워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기도자가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에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하고 부릅니다. 이걸 기도의 부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는 자녀라는 인식으로 하나님께 나갑니다. 이게 참된 기도자입니다, 그리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는 자기를 예배자로 인식케 하는 것이요, “나라가 임하하시오며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시민이자 하나님의 뜻을 이룰 하나님의 종이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시민과 종으로 나가서 구하는 겁니다. 이게 참된 기도자입니다.

 

그리고 양식을 구합니다. 양식으로 사는 존재이지만 그 양식이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먹여야 먹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산다는 겁니다. 은혜 주셔야 사는 사람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오직 은혜 아니면 안 되는 자기로 나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된 사람의 기도를 상대합니다. 이 참된 기도자로 세우는 것이 주기도입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합니다. 이 기도는 범과 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가 아니면 사함 받을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를 용서한 것 같이 내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며 사죄의 은혜를 구합니다. 이렇게 죄인이 되어 통회하는 심령으로 나가게 합니다. 통회하는 심령, 이 사람이 참된 기도자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을 세리를 받으신 것  같이 받으십니다. 이게 주기도의 기능입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보호를 구합니다. 이 기도는 나는 천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유혹에 약하여 시험에 들어 영육이 악한 일에 빠져서 믿음과 구원에 손해를 보고, 하나님과 천국과 천국의 일을 손해 볼 위험이 있으니 이 약한 나를 지켜달라는 탄원입니다. 나를 온전히 하나님과 천국만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소서! 이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다고 송영으로 기도를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시작하신 이게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이루게 하시는 겁니다. 이게 "대게"라는 말을 쓰는 이유입니다.  이 사람이 참된 기도자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은 주문외우듯 할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하고, 깊은 묵상으로 합시다. 그래서 주기도문이 나를 참된 기도자가 세우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은혜로 가족여러분! 주기도문은 땅에 있는 우리를 하늘로 올려 주어 마치 변화산 위의 제자들 같이 신령한 세계에 있게 합니다. 주기도는 하늘과 땅이, 육과 영이 균형을 이루게 해 줍니다. 주기도문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기도자로 세워줍니다. 그러므로 이번 강해로 주기도문을 더욱 깊이 배웁시다. 그래서 주기도문이 우리를 더욱 신령하게 하고, 균형 잡히게 하며 참된 기도자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주님처럼 임제안에 기도하고 주님처럼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기도자가 되시기를 주기도문을 주신 주님으로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