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 19, 주일 강론
본문 : 삼하7:27-29 말씀 : 라인권목사
평안들 하셨지요, 기도해 주셔서 잘 다녀왔습니다. 이번에 말로만 듣던 저 콜로세움과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보았습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층계를 보고 소문보다 더 하다고 했습니다만, 베드로 대성당이 그러했습니다, 베드로 대성당이 큰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웅장하고 화려한 한 줄은 몰랐습니다. 베드로 대 성당만이 아니라, 피렌체와 밀라노의 대성당들은 입을 다물 수 없게 했습니다.
이 대성당들을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게 이 대성당들은 예배를 위한 것이기보다 교황이나 군주의 권위를 위한 건축물이라는 점입니다. 파리에서는 성당이 아닌 궁전들을 보았는데, 성당과 궁전이 동일했습니다. 요즘 교회가 인테리어를 호텔 풍으로 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배보다 사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 이런 현상을 나타낸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이 대성당들은 예배 용도보다 관광용이 된 것입니다. 예배 중심이 아닌 교회는 결국 이렇게 관광지가 될 수밖에는 없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성전들을 보며 왜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런 공력을 들여서 크든 작든 성전을 짓는 가를 깊이 생각하게 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이 그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오늘의 본문은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고, 성전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셨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제사와 성전이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성전 설계도를 친히 성령의 감동으로 그렸고, 성전을 지을 모든 물자를 충분하게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성전 예배를 체계화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에게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강하고 담대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단지 성전의 시공자에 불과하고 다윗이 지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이렇게 성전이 필요 없게 되는 줄을 알면서도 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성전 예배를 체계화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려고 한 이유
첫째, 성전은 지상의 하나님의 주소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두신 성전에 계시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성전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게 성전의 필요성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이걸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 압니다. 그럼에도 성전이라는 하나님이 집이 필요한 이유는 육신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자기들 가운데 계시는 것을 육신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만 안심이 되고, 만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게 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는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집보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성전이 이렇게 좋고 유용했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 하고 성전을 건축을 준비한 것입니다,
둘째, 따라서 성전은 하나님의 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성전이라는 형식으로 임재해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악 된 자기 백성 가운데 함께 계시기 위해서 성전이라는 제도를 주시고 당신을 낮추어 그 제도 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게 구약의 성육신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성전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죄악 된 자기 백성들과 자리를 함께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시고 필요한 은혜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성전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을 사모하고 성전을 지으려고 한 것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성전은 성육신하실 그리스도의 전형이므로 그리스도를 맞게 하는 준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성막과 성전이라는 사람이 지은 구조물에 당신을 나타내시고 친히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어 성전이 하나님의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하나님의 몸인 성전은 육신이라는 장막을 입고 세상에 임마누엘 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예표요, 전형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는 이 성전과 제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게 하고, 바라게 해야 합니다. 오실 그리스도를 맞게 하는 것이 성전의 의미입니다. 이 그리스도가 학개가 말한 보배와 영광입니다.(학2:6,7,9) 이게 오늘 본문의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이 그리스도를 보게 맞게 하려고 성전을 건축하게 한 것입니다. 예수는 이렇게 좋은 성전보다 더 좋은 예수십니다. 그러면 예수는 그 좋은 성전보다 얼마나 더 좋으십니까?
성전보다 좋은 예수
첫째, 예수는 성전보다 더 좋은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십니다. 구약의 성전은 일반 백성은 직접 하나님께 나가지 못하고 제사장을 통해서 나갑니다. 하나님의 좌소인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일 년 단 한 번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고, 창조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육신)이십니다.(히9:11) 이 더 좋으신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로 성전이며 그 성전의 휘장인 당신의 몸을 머리부터 발까지 찢어서, 성소가 아닌 하늘에 들어가셔서((히 9:24)그 휘장 사이로 새롭고 산길이 되셨습니다.(히10:20)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직접 제사장의 중보 없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게 되었고 우리가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이게 만인 제사장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셔야만 하게 되셨습니까? 사제가 필요 없습니다.. 직접 예수의 피와 이름으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둘째, 예수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는 더 좋은 성전이십니다. 구약의 성전은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에 한정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장소와 의식이 필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예배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제물을 이끌고 먼 예루살렘을 가야 합니다. 이게 참 불편한 일입니다. 이 불편이 “산당”을 만들게 한 것입니다. 후에 이 산당이 우상 숭배의 진원이 되었습니다. 엄격한 제사법을 지켜야 합니다. 의식적인 예배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성육 신해서 오셔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십자가에서 단번에 제물이 되시므로 신약의 예배는 장소와 의식이 아니라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가 되었습니다. 이걸 수가성 우물가의 대화에서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수가성의 우물가의 여인은 우리가 어디서 예배하느냐고 물었지요, 이때 주님은 “이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하나님은 영이니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1-24) 하셨습니다. 이게 호세야가 말한 바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호14:2) 신앙고백과 찬송이 제물입니다.
공예배는 우리의 생명줄이지만 인생은 교회에 모여서 예배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상이 있거나, 노년이 되면 모일 수 없습니다. 요한처럼 유배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병상에서도 노년에도 하나님을 신령한 예배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 중에 우리 부부가 숙소에서 간단한 주일예배를 드리고 교회와 여정과 일행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알프스는 기상이 급변하는 지역입니다. 알프스 산록에 들어갈 때에 흐려지더니, 비가 내리다가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그러나 인터라켄 지역에 이르니 맑아져서 융프라우흐를 차질 없이 올랐습니다. 가이드가 우리 가운데 한 분이 영적 기가 세고 기도하는 분이 계셔서 날씨가 이렇게 좋다고 했습니다. 듣기 싫지 않았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제물 되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는 영으로 예배할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구속의 감격으로 마음껏 예배합시다. 언제 어디서나 이 예수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로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예수는 성전보다 더 좋은 임마누엘이 십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이므로 다윗은 사울의 박해로 성전에 나가지 못할 때에도, 그 성전을 사모하는 것만으로도 갈한 영혼이 충만해지고,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으로만 임마누엘 하신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신성으로 편재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땅끝까지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마28:20)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임마누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약 성도는 단지 임마누엘을 경험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아예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3:16-17)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신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전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임마누엘을 경험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우리를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이 되게 하셨습니다. 함께해 주시는 정도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셨습니다. 에펠탑을 처음 세웠을 때에 철로 탑을 세우는 것을 건축가들만 반대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문학가 모파상은 에펠탑을 안 보려고 교외로 이사를 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모파상이 에펠탑 2층 안의 레스토랑에 자주 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파리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장소가 에펠탑 안에 있는 거라고 했답니다.
우리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그리스도-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공기 중에 살기 때문에 공기의 귀함을 모르는 거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마치 먹고 쉴 때에도 공기 중에 있고, 일하고 잘 때도 공기 중에 있는 것 같이 우리는 만유에 충만하신 예수로 먹고 마시고, 일 하고 삽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겁니다.(행17:24,25) 예수 안에 있어서 예수를,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는 예수 안에 있어서 그와 함께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2:20) 근동 사람들에 함께 먹는다는 것은 배신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친구이며 동지이며, 피난처가 되십니다. 이렇게 예수는 성전보다 좋은 임마누엘이십니다. 두려워 맙시다, 염려하고 근심하지 맙시다. 예수님이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성전입니다. 어떤 형펀이든 예수 안에 있습니다.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할 것입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예수는 이렇게 하나님을 만남에 대하여 아는 일에 충족하십니다. 예배에 대하여 충족이시고. 임마누엘에 대하여 충족이십니다. 이거면 우리 인생이 충족입니다. 이 예수가 다윗의 복입니다. 이 예수가 복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아들 예수로 이 충족한 인생이 되게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를 믿음으로 소득 합시다. 그래서 이 험하고 핍절한 세상에서 늘 하나님을 만나시고, 온전한 예배와 임마누엘의 충족한 인생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아멘 -
'강 론 > 강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다윗의 죄책과 예수 그리스도 (2) | 2022.07.25 |
|---|---|
| 인간의 곤경에 충족하신 예수 (0) | 2022.07.21 |
| 부부의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 (0) | 2022.05.22 |
| 따르는 반석이신 예수 (0) | 2022.03.06 |
| 지도자를 위한 목사의 기도 (1) | 2022.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