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39

인생! 얼마나 양심적일까?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의 행위, 의도, 성격의 도덕적 의미를 올바르고 착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관련지어 파악하는 도덕의식.”  브리테니커사전의 양심에 대한 정의입니다. 이 양심이 인간에게 존재한 다는 것이 인류의 인류 됨 일 것입니다. 제가 양심의 정의를 떠올리는 건 양심이 무엇이냐? 와 그 기능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양심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를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로 이전하면서 전에 채소를 기르던 공간을 주차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공간에 세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심각한 주차 사정을 고려해서, 모두 여섯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작은 주차공간이지만 이웃과 나누기로 했습니다. 주일과 수요일 외에는 현관 앞을 제외하고 주차할 수 있다는 주차 안내판도 내걸었습니..

광고가 만드는 베스트셀러

“ 이 책 사야겠다!” 국내 한 유명 대형서점이 발행하는 신간정보 가이드북 뒷 표지에 실린 광고를 보고했던 생각입니다. 이렇게 결정하고 우선순위에서 몇 번이나 밀리던 그 책을 드디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그 유명한 대형 서점에서 직원이 찾아온 그 책을 받아 들고 몇 페이지를 훑어 본 순간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사고 싶던 마음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책을 찾아온 직원의 수고가 미안하지 않았다면 나는 단연코 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책은 광고를 보고 내가 생각하고 기대한 종류의 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끔 화려한 광고를 보고 구입한 책을 보는 순간 속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요즈음 베스트셀러는 광고가 만든다는 엄연한 사실을 저는 그런 식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씁쓸한 마음을..

사라지는 화분들

오래전에 제가 섬기는 교회에 화훼를 하는 교우가 계셨습니다. 이 형제가 가끔씩 농사하는 화분을 봉헌 하셨는데 한번은 깜찍한 노랑 미니장미꽃 화분하나를 선물했습니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미니 장미는 희귀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장미를 좋아하는 제가 이 미니장미를 얼마나 애지중지 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이 미니장미가 사라졌습니다. 어느 길손이 제 허락도 받지 않고 가져간 것이 분명합니다. 작년 봄 초화를 사러 화원에 들렸다가 예쁜 미니장미를 보고 옛일도 그리워서 두 개를 함께 사다 길렀습니다. 기르기가 좀 까다로운 식물인데 금년에 꽃을 기대할 만큼 자라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이 미니장미 화분이 둘 중 생육상태가 더 좋은 것 하나와 춘란하나가 동시에 사라졌습니다. 미니..

하지 단상

어저께가 낮 시간이 14시간 35분이나 되는 하지였습니다. 이제는 유일한 밤 예배인 삼일기도회 시간에도 훤해서 밤 예배가 아니라 낮 예배 같은 느낌이 듭니다. 따라서 새벽기도회 시간도 새벽이라는 느낌이 아니라 아침이라는 느낌입니다. 이제 열대야가 시작되어 잠을 설치면 더욱 밤이 짧게 느껴지고 일어나기 힘든 아침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새벽기도하시는 분들은 일 년 중에 이때가 가장 일어나기가 힘들 때가 아닐까합니다. 돌아보면 망종 지나 이 하지 무렵이면 시골 사람들은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빴습니다. 보리가 익어갈 무렵이면 신록을 막 벗어난 가랑잎을 베어다 논 구석에 부려 두었습니다. 마늘과 감자를 캐고 감자 밭에 심었던 완두콩과 강낭콩을 거두었고, 논과 밭의 밀과 호밀과 보리를 베고 타작해야 했습니다. ..

첫날의 해를 보는 마음으로

새해의 첫 일출을 보려는 이들로 해돋이 명소들은 해마다 북새통을 이룹니다. 바다위로 장엄하게 떠오르는 새해 첫날의 해를 보며 두 손을 모아 기원하는 모습은 진지하고 경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해를 보며 기원하는 것보다 해를 지으신 분께 기원하는 것이 지혜롭지 않나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새해를 맞아 소원을 비는 마음이야 다들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비는 소원들이야 각기 다르겠지만 누구나 비는 소원하나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입니다. 이 소박한 소원대로 이 땅의 모든 이들이 다들 몸과 마음까지도 건강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는 세 가지로 유명합니다. 그의 가난을 기반으로 대성한 인생역전이 유명하지요. 그는 거부가 되는 조건은 가난이라고 기자에게 답변한 적이 있습니다. 그..

여름날의 추억

이른 아침 노트북을 켜놓고 자판 앞에 오랫동안을 앉아있었습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잡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아침햇살이 찬란히 숲을 비취자 매미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무심히 매미소리에 젖어 있다가 문득 ‘저 매미 이름이 뭐지?’라는 질문이 일어났습니다. 각시매미, 스르라미, 여기에 이르자 더 이상의 매미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땐 매미소리만 듣고도 어떤 매미인지를 알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매미소리를 들어도 그냥 매미가 우는구나!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 순간 내가 참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살아왔다는 생각과 더불어 어렸을 적 여름날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때쯤이면 고향의 시내는 해마다 범람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땔감으로 민둥산이 된 산지를 오일육 직후 국토..

가물었던 그해 여름 밤의 추억

요즘은 “칠년대한 가뭄 날에 비 안 오는 날 없다”는 옛 사람들의 말이 참 실감나는 때입니다. 방송들은 연일 굴삭기로 개울 바닥을 파는 모습을 보도하며 이번 가뭄을 “젖은 수건의 물을 쥐어짜는 형국”이라고 요란을 떨고 있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가뭄인데도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먼지도 잦지 않게 비를 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서 소나기가 장대 같이 내려 메마른 대지를 흠뻑 적셔 주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물을 구하기 위하여 개울을 굴삭기로 파는 모습을 시청하다 문득 어릴 적 가뭄이 들었을 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고향은 유등천 상류인 버드내가 휘돌아 나가는 물이 풍부한 지역이어서 웬만한 가뭄에는 물 걱정 하지 않는 동네입니다. 이런 고장이지만 한 해는 보통 가뭄이 아니었던지 상보 뜰 지역에서 개울을 파서 ..

붕어빵, 호떡이 그리운 거리

동짓달 빙월이 중천입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이면 가끔 생각나는 것이 호떡입니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날 종종걸음을 치다 노점의 호떡 굽는 냄새에 끌려 호떡 한 봉지를 사들고, 뜨거운 설탕물이 흐르는 호떡을 호호 불며 데이지 않게 조심히 먹던 그 맛의 추억은 이 땅을 살아온 보통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추억일 것입니다. 이 길거리 간식의 족보를 따지면 호떡은 " 호떡"이라는 명칭과 "호떡집에 불났다"는 말에서 보듯 개화기에 청군을 따라 들어왔던 화교들에게서 유래된 간식거리로 알려졌고, 풀빵-붕어빵등-류는 국치와 더불어 왜인들에게서 유래한 것같습니다. 국민학교 운동회 날 이 풀빵 장사가 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풀빵은 국화꽃 모양이 찍혀 나오기 때문에 국화빵이라고도 불렀습니다. 70년대에 들어서며 크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