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내 영혼의 수상록

추억의 고구마 통가리

아브라함-la 2013. 11. 10. 21:38

지난 주간 순창의 동기목사가 고구마를 보내셨습니다. 그 주간에 정원을 돌보는 저를 보신 형제가 농사한거라며 고구마 한 박스를 가져오셨습니다. 순창의 목사님께 답례로 맛좋기로 유명한 우리지역 이천 쌀을 조금 보냈더니 이 쌀을 받으신 목사님! 상품성이 없는 거라며 또 큰 박스에 고구마를 보내셨습니다. 고구마 좋아하는 저는 횡재한 셈입니다. 좋아하는 고구마가 많이 들어 온 것은 좋은데 갑자기 고구마가 많아지자 고민거리도 생겼습니다. 그게 보관할 곳이 마땅치 못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보관할 곳을 고민하다가 고구마 통가리가 생각나며 고구마에 대한 어릴 적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고구마는 보리를 베어내고 심지만 고구마 농사는 사실상 늦겨울에 시작 됩니다. 비닐이 나오기 전에는 겨울이 꼬리를 내릴 즈음 윗방 윗목에 통나무를 가로놓고 왕겨를 채워 자그만 화단처럼 만들고, 고구마를 줄을  맞추어 여러 줄을 묻어두고 가끔 물을 주어 싹을 티 웁니다. 훈훈한 방안에서 고구마 싹이 올라와 자라는 풍경과 내음은 정겹기만 했습니다. 늦봄이 되면 이것을 울안에 옮겨 심어 줄기를 길러둡니다.

 

보리를 추수하고 비가 내리면 이 고구마 줄기를 잘라다 밭에 심습니다. 비를 맞으며 고구마를 심던 일, 비을 맞으며 고구마를 심던 밭둑에 빨갛게 익어 가던 산딸기 빛깔이 지금도 선연합니다. 이렇게 고구마를 심고  뿌리를 내린 후에 두 번 정도 김을 매주면 덩굴이 밭을 덮게 됩니다. 이때부터 고구마가 들었나하고 파보다 드디어 초가을 처음으로 햇고구마를 캐다 쪄 먹는 것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서리가 내리기전 하는 고구마 수확은 실은 고된 작업이지만 줄줄이 달려 나오는 고구마는 힘 드는 것을 잊게 해주었지요. 이렇게 수확한 고구마는 방안에 통가리를 만들어 저장합니다. 그 시절은 고구마가 간식거리가 아니라 양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방안에 고구마 통가리가 하나씩 있는 것이 흔한 시골 풍경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고구마는 끼니에 빠지지 않습니다. 밥을 해도 쌀을 아끼려 고구마가 들어가고 죽을 쑤어도 들어갑니다. 점심 한 끼는 고구마가 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고도 틈만 나면 통가리에서 고구마를 꺼내다 구워 먹고 깎아 먹기도 했지요. 그렇게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것이 고구마였습니다.

 

 

 

 

고구마의 추억하면 우리 집에는 빼놓을 수 없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지요. 어느해인가 그해는 고구마를 두 밭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고구마 농사는 정말 잘되었습니다. 이십가마도 훨씬 넘게 거두어 방안의 통가리에 다 저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버님께서 윗방 토방 밑에 땅굴을 파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굴에 고구마를 가득채우시곤 봄에 먹는다며 입구를 아예 흙을 이겨 발라버리시고 가마니로 덮어 두셨습니다. 

 

드디어 정월보름이 지나 방안의 통가리의 고구마가 소진어 땅굴의 고구마를 먹기 위해서 아버님이 개봉을 하셨는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입구를 흙으로 발라버렸기 때문에 공기가 통하지 않아 땅굴속의 고구마는 마치  살짝 설익은 것 같이 쌩겨버렸던 겁니다. 어머니의 대경실색하여 아버지를 탓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그 많은 고구마 절반도 더 버런 것 같습니다. 아무튼 토방에 굴파고 고구마 두는 집은 마을에서 우리집뿐이고 그래서 그해부터 우리집 땅굴 고구마는 밤마실 하던 아이들의 고구마 설이의 표적이 되어버렸지요. 가끔 고향집  생각이 나면  그 고구마 땅굴이 지금도 있을까 궁금해 질때가 있습니다.  

 

 

 

 

 

도시로 나왔을 때 본디 촌뜨기라 그런지 제일 먹고 싶은 것이 고구마였습니다. 거리의 군고구마 수레 앞을 지날 때 나는 군고구마 냄새가 얼마나 좋던지 그렇게 먹고 싶을 수가 없었습니다. 군고구마 냄새! 이걸 모른는 이는 고구마를 논하지 말아야 할겁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렇게 맛있고 좋아하던 고구마가 지금은 있어도 잘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쪄 놓아도 한 개 먹으면 그만이고 못쓰게 된 냄비에 구어도 한 두 개먹으면 끝입니다. 고구마를 찌어 놓으면 일주일 내내 있기 일쑤입니다. 저 같은 사람도 이런데 하물며 요즘 아이들이랴 싶습니다.

 

이렇게 근대화와 더불어 잊혀졌던 그 고구마가 요즈음은 건강식품으로 다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고구마 값이 쌀값을 넘어섰다는 보도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 우리는 건강식품은 다 먹고 자란 셈입니다. 배고픈 줄 모르게 사는 지금 방안에 고구마 통가리만 두고도 행복했던 시절을 왜 우리는 그리워할까요? 그것은 지나가면 소중해지고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참된 행복은 많은 소유보다는 내 손으로 수고하고 그렇게 소득 되어 진 것을 족히 여기는 데 있기 때문은 아니까요?

 

 

 

 

 

 

 

그러고 보니 추억은 고구마 통가리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위를 타는 지금 마음이라는 방에 추억통가리 하나를 두어보시지 않겠습니까? 추억은 꺼내서 찌고 굽고 깍아야 제맛이고 더욱 맛있어지고 행복해지게 해주는 것입니다. 금년 겨울 통가리에서 고구마 꺼내 먹듯  추억통가리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을 꺼내다 겨우 내내 쪄 드시고, 긴 겨울밤 도란도란 모여 앉아 화로 불에 굽기도 하고, 깎아 드시기도 하신다면 추위가 일찍 오며 변덕 많을 거라는 올 겨울이 따뜻하고 행복한 겨울이 되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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