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1,4, 신년주일
본문 : 엡1:3-14
말씀 : 라인권목사
새해를 축하드립니다. 새해가 되면 ”잘해보자!“라는 새해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고칠 것을 고치고 잘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기도원에도 가고 노력해 보지만, 다시 세모가 되면 금년이 작년 같아서 실패감과 죄책에 빠집니다. 이런 마음으로 송구영신 예배와 신년 예배에 나오면 영락없이 비전을 가지라, 버리는 것에 인생의 성패에 달려있으니, 성장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니 스트레스가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새해에 무엇을 더 고쳐야 할까? 어떤 신앙인이 되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께 찬송이 될까? 이런 고민을 하고 추구하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오히려 새해가 되면 이런 고민하는 것이 건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그런 고민과 추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패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왜 매년 송구영신 예배와 신년 예배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결단하지만, 변화가 없고 실패를 거듭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본문은 이 문제를 분명하게 규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1, 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를 긍정적으로 말하면 되지 못한 줄로 알아서 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미 된 줄로 알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12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의 “되게” 라는 말 “에이나이” “존재하다”는 뜻으로 목적어가 찬송이 아니라, 존재를 규정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 존재 자체가 찬송이 되었다는 겁니다. 나머지 3, 6, 14절의 찬송은 이렇게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찬송하고 그걸 이루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겁니다. 이렇게 본문은 전체가 이미 된 것을 강조합니다.
이미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고,(3) 택함 받았고, 구속받고 아들이 되고, 성령의 인침 받았습니다. 다 완료형입니다. 여기에는 동작 없습니다. 요구도 없습니다. 찬송하라는 요구나 명령이 아니라, 이미 존재를 찬송으로 만들었다는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하나님의 찬송이며 기쁨입니까? 습3:17입니다.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이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우리는 잘하건 못하건 찬송이요, 성패와 상관이 없이 하나님의 기쁨이며 찬송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지금 안된다고 손이 늘어지셨습니까? 실패해서 코가 댓자나 빠져 있습니까? 그건 자기를 된 사람으로 알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되지 못한 존재로 알고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전제를 바꾸어 자기를 된 사람으로 합시다. 자기를 찬송이 된 존재로 아는 사람에겐 성공과 승리와 성화는 따논 당상입니다. 자신을 영광의 찬송이 된 사람으로 알면 자존감이 있고, 이게 자신을 구별하게 하고, 확신으로 하고, 이게 분발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싸움은 승리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겨놓은 싸움을 싸우는 겁니다. 그러므로 올해는 전제를 바꿉시다. 안돼서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찬송과 영광이 된 사람으로 알고 찬송하며 나갑시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되게 하십니다. 새해는 하나님이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된 줄 알고 흔들려도 찬송하고, 넘어져도 찬송하고, 실패해도 찬송하며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 작은 것을 붙잡고 큰 것을 보지 못하고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의 관심은 “한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이르는가?”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바울은 더 큰 그림을 보고 있습니다. 9절을 봅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여기서 바울은 경륜, “오이코노미아”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흩어진 것을 하나로 모아 집을 완성해 가는 관리 계획을 뜻합니다. 이걸 10절이 설명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교회를 이루어 하나의 교회로 천국에 이르게 하신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이 큰 것을 보고, 붙잡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성도 개인의 상태나 불완전성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이 큰 하나님의 경륜을 잡을 때 하나님이 주어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정하고 선택하시는 것도 하나님이 주어시고, 죄인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구속함도 주어는 하나님이시며, 만물이 한 교회가 되게 하는 일도, 기업의 보증이 되는 것도 주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지금 미완성이고 문제가 있는 교회라도 이 하나님의 경륜으로 흠도 티도 없는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 하나의 교회로 천국에 이를 것을 확신하고 소망을 가지고 찬송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게 바울이 승리한 이유입니다.
이점에서 우리 은혜로교회는 축복받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중계획>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중계획은 이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실제적 방안입니다. 이 경륜을 이루게 구원하시고, 거룩한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약속의 땅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새해 소아적인 것에서 벗어납시다. 새해 내 계획이 아니라 이 큰 하나님이 경륜이라는 큰 계획에 붙잡혀 나갑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어가 되어 주셔서 부흥케 하시고, 우리의 모자람이나 부족함에 낙심하지 않고 찬송하며 헤쳐나가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3,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힘써야 한다는 겁니다. 본문에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문자적인 것만도 8번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주셨습니다. 선택과 예정이 그리스도 안에서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도, 사죄가 그리스도 안에서며, 하나님의 경륜도 그리스도 안에서요. 찬송이 되는 것, 기업의 보증으로 인침도 그리스도 안에 섭니다. 즉 하나님의 경륜이 성취되어 하나님이 영광과 찬송을 받게 하시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의 중심이시고 주어이십니다.
이 말씀의 주석이 요15장의 포도나무 비유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15:5) 가지는 원 둥치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이게 원리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doing이 아니라, being이라고 합니다. 즉 믿음이란 무엇을 하는 것보다 그리스도께 자신을 마음 놓고 맡기고 그 안에서 쉬는 겁니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가 하시는 겁니다. 이걸 은혜로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새해가 되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고치자, 바꾸자, 행하자, 결단하자! 이렇게 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 안에 거함”입니다. 내가 사니 그리스도가 나타날 수 없는 겁니다, 지금 새해가 찬송이 되게 하는 신앙의 핵심은 ‘더 잘함’이 아니라 주님께 더 깊이 맡겨짐’입니다.
그러므로 새해 방법을 바꿉시다. 새해 “잘해볼까?”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을 사모합시다. 할 수 있다는 자기, 하려는 자기를 버리고 내 안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되시게 합시다. 우리가 새해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스스로 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대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욥이 그랬습니다. 욥이 마지막에 도달한 자리가 그리스도 안입니다. 말이 사라지고, 변론이 멈추고, 설명이 끝난 자리 그 자리에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섰을 때 욥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 되었습니다.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믿는 일에 매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해는 우리의 삶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흔들려도 찬송이며, 넘어져도 찬송이고, 실패를 거듭해도 찬송입니다. 새해 우리는 너무 계획에 집착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경륜을 능히 이루실 전능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새해 하나님의 사중계획을 잡고 마음 놓고 자신을 그리스도께 의탁하여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 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5,7) 예수 그리스도! 그만이 우리의 힘이요 능력이요 소망이며 생명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하고 찬송하며 나가면 열매를 많이 맺는 제자가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새해는 밝습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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