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자신이 영생을 받았음을 확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확신하지 못하면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되며, 이 기쁨이 없으면 온전한 헌신과 봉사를 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확신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고 이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 내게 영생이 있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이렇게 믿는 내게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내게 영생을 주신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받으실 것도 확신하고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게 됩니다. 이 담대함이 기도한 것을 받으신 줄로 믿는 기도응답의 확신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이 확신을 가지고 서로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할 사랑의 의무를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게 구원이 있어도 범과성이 있어서, 시험에 직면하고, 그 시험에 넘어지는 경우가 실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이 죄의 유혹을 이기도록, 시험에 빠진 형제가 회개하고 회복하도록 서로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형제가 회개하고 살아나는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이 사랑의 의무에 예외가 있다고 하십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는 자들을 위하여서는 기도하라고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를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는 죄, 또는 회개치 않고 믿지 않는 죄라는 해석은 결과론으로는 맞지만 본문의 의미는 충분히 살리지 못한 단편적인 해석입니다.
여기서 사도가 말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는 주님이 주신 마18:15-18절의 원리에 따라서 끝까지 죄를 고집하여 출교한 교인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당시 교회 안에 들어와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하는 영지주의 이단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신 예수를 부인하게 하는 자들은 양심에 화인 맞고, 사탄의 화신이기 때문입니다.
왜 사도가 이런 자들을 위해서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하실까요? 그것은 마치 광야에서 고라당이 출교당해 죽었을 때에 백성들이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들을 죽었다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 같이 하는 철없는 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민16:41,42) 사랑을 오해해서, 또는 은혜와 사랑을 빙자해서 교회의 치리를 못 마땅하게 여기고, 출교자들과 교제를 계속하려는 교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런 자들을 위하여 기도해도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교제를 단절하고 이방인과 같이 여기라는 것입니다.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만이 출교자와 이단의 죄악에서 양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얼마나 성결하고 성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신실하게 치리하고 있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이 교회를 회복해야 합니다. 성직자들이 이 치리를 부당하게 해서 치리하는 교회의 왕권을 잃은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혼을 사랑하는 교회의 권고와 치리를 받지 않고 다른 교회로 가버리는 세태를 탄식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는 교회가 죄를 멸하고 성결을 지키는 일에 하나가 되어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에서 기도응답의 확신으로 연약한 형제를 위하여 기도하면 주님이 약속하신대로 하늘에서 풀 줄로 믿습니다. 이 푸는 기도가 두 사람만 합심해서 기도해도 그 중에 주님이 계시는 참된 교회임을 확신케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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