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오가 기쁨의 축복의 대상이며 본받아야 할 직분자의 모델이라면 디오드레베는 결코 본받지 말아야 하며 출교해야할 심판거리로 교회의 근심과 암적인 직분자입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교회 안에 이 디오드레베류의 직분자가 간혹 있습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것이 디오드레베의 정신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항상 지도자연하는 것입니다. 항상 자신이 주도권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에 자신이 주인공이여야 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영향력아래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른이고 주인이며 왕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디오드레베 근성이라고 부릅니다.
이 디오드레베 근성은 자신을 권위아래 있는 것을 참지 못하게 합니다. 심지어 사도요한을 사도로 대우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최고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를 중상하여 비방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대적하여 비방하는 것이 천사와 다른 사탄의 근성입니다.
이 근성이 사도들에게서 오는 전도자들을 받아드리지 못하게 했고, 대접하는 이들을 교회에서 내쫓는 기막힌 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안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하면 자기가 빛을 잃고 입장이 곤란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안하면 다른 사람도 못하게 하고, 하면 미워하여 교회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봉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있게 비켜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안 하거나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는 것입니다. 이게 최소한의 봉사입니다. 그런데 디오드레베근성은 내가 안하면 다른 사람이 하면 안 되고 큰일 납니다. 교회에 이런 목사, 장로, 집사, 권사가 있는 것은 재앙입니다.
사람은 권한을 가지면 행사하려고 하고 주장하려는 근성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누구에나 어느 정도 디오드레베근성이 있습니다.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 안에 있는 이 디오드레베근성을 인식하고 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 작업을 하는 양 만큼 자기가 죽고 주님이 내 안에 사시게 됩니다. 그 만큼 옛사람이 죽고 새 자기가 살고 만들어집니다. 그만큼 주님의 형상을 이루게 되며, 그 만큼 쓰임 받고, 진정으로 교회와 주님의 인정을 받고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직분자는 자신에게도 복이요 교회에도 복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신과 교회를 복되게 하는 직분자가 되려면 소극적으로 디오드레베를 본받지 말고, 이런류의 사람은 우리교회에는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보따리를 싸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내 안의 디오드레베 근성을 죽여 주며 가이오와 같은 축복 받는 직분자를 힘써 닮아야 합니다. 이 방법으로 디오드레베가 아니라 가이오와 같이 인정과 사랑과 축복 받는 직분자가 되시기를 주님도 기다리시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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