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이슬처럼 맺히는 교훈

부활의 현장

아브라함-la 2013. 4. 2. 18:34

     부활하신 주님이 당신을 나타내 보이신 현장은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문들이 닫혔는데”라는 말씀에서 보듯 공개적인 장소가 아니라 내밀한 개인적인 자리이다. 아담에게서 보듯 죄책은 감추고 숨으려고 하고, 큰 고난과 실패도 달팽이와 같이 자기를 감추려는 경향을 가지하며, 절망하여 좌절한 사람들 역사 동일한 현상을 가진다.

 

 

주님을 배신하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께 등을 돌렸다는 죄책감과 주님을 따르는 일과 사도로서의 소명과 인생을 실패했다는 실패감과 더불어 다시는 주님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인생에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다는 절망과 두려움이 제자들을 방안에 숨게 만들었다. 이 죄책과 실패 감과 절망은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밀한 자리이다.

 

 

놀라운 것은 바로 자리가 부활의 현장이라는 사실이다. 부활의 주님은 그 자리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그 가운데 서시고 거기서 말씀하셨다. 거기서 사죄의 평강을 주시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그들을 다시 세워 주시고 그들에게 있는 권세를 재확인해 주셨다. 이 내밀한 개인적인 부활의 체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나가게 하고 거기서 부활의 권능을 주장해 나가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인생과 삶의 문제의 자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는 부활의 현장이다. 이것이 부활체험이 개인적으로 내밀하게 이루어지는 이유이다. 이 부활 체험은 전적으로 은혜의 결과이다. 부활을 믿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그들에게 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소망이 있고 부활은 우리 인생과 삶의 비결이자 능력인 것이다. 부활은 이렇게 미래적 사건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사건이고 삶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세상이라는 공개적인 삶의 현장을 부활의 현장을 만들고 체험하게 하는 능력이 된다. 부활은 일어나 개방하고 나가서 부활을 전하며 주장하고 나가게 하고 그때 죄와 사망과 귀신에게서 풀리고 병든 자가 일어나는 부활의 권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개인적인 부활의 현장과 세상이라는 또 하나의 부활의 현장을 가진 사람이며, 거기서 부활의 권능으로 살아가고 살리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오늘도 부활과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개인과 세상에 유일한 소망이신 이유이다.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14:19) 이것이 부활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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