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2,16,주일
본문 : 사58:13-14
말씀 : 라인권목사
한 주간 평안들 하셨지요? 다시 추위가 왔는데 한 주간 강건들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새해 들어서 신앙생활의 기본을 확립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요즘은 인기 있는 주제는 아니지만 주일을 성수하는 문제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안식일을 주신 목적
우리가 주일 성수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안식법을 주신 것은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안식일이 아닌 우리 사람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막2:27) 안식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시라, 우리 인간입니다. 안식일은 육체라는 한계가 있는 인간에게 일주일에 하루를 안식하게 하신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그리고 안식법은 예배를 위해서 한 날을 예배일로 구별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로 하나님을 만납니다. 마치 육신이 휴식이 없으면 안 되는 것 같이 예배 없이는 안 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예배의 날을 주신 하나님의 배려이고 축복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영원히 안식하는 나라를 바라보고 추구하여 천국중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히4:11)이렇게 해서 우리를 거룩하고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이 안식 법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안식법이 시험이 되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요구하는 대로 주일을 성일로 지키는 것이 왜 부담이 되고 시험이 될까요? 저는 우리에게 성수주일이 부담이 되고 시험이 되는 것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부담이 되고 시험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 안식법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담이고 시험이 될까요? 그것은 인간에게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닌 생존의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일해야 삽니다. 지금 현대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실직이지요. 왜 실직을 두려워합니까? 일에 생존이 걸려서입니다. 일해야 삽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하루를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생존에 위협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대인들과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 누가 더 안식법을 지키는 것이 시험이 될까요? 흔히 구약은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안식일 지키는 것이 쉬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시험이 되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비가 내려야 파종이 가능합니다. 기다리는 비가 늦게 내린 경우 하루가 급합니다. 그러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시험이 되지 않겠습니까? 때를 놓치면 일 년 농사 망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식일 만 있는 게 아니고 절기를 세 번 지키고, 안식년도 지키라니 얼마나 부담이 되고 시험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사야시대에는 안식일 지키는 것이 유명무실해진 것이고. 이것이 바벨론 포로 된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안식하지 않아서 그 땅이 안식년을 지키는 것 같이 황무하게 하셨습니다.(대하36:21) 이렇게 안식법은 부담이 되고 시험이 되는 것입니다.
안식법에 축복을 약속한 뜻은
저는 바로 여기에 오늘 본문의 성수주일의 축복을 약속하신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분명 성수주일이 부담이 되고 시험이 됩니다. 그러나 성수주일 하지 않으면 거룩한 백성으로 살 수가 없고, 가나안 땅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수주일을 응원하시고, 격려하시려고 안식일을 지키는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를 응원하는 성수주일의 축복이 어떤 것입니까?
첫째, 여호와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복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즐거움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즐거움이 됩니다. 하나님이 기쁨, 평안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쁨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오는 기쁨입니다. 율법 중에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한 것으로 치부할 것이 십일조와 주일성수입니다. 사실은 이 별것 아닌 것이 순종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왜 중요합니까? 인간은 감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기쁨이 있어야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돈 많아도, 건강해도, 잘 되어도 기쁨을 모르면 그 인생은 삭막합니다. 기쁨이 정서를 안정케 하고, 삶의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땅의 높은 곳에 올리시는 복입니다. 이 말은 새 번역에서 영화롭게 하신다. 현대어성경은 장애물을 제거해 주신 다로 번역했습니다. 여기에는 회복의 의미가 있습니다. 12절이 이를 증거 합니다. 황폐한 곳을 다시 세울 것이며, 이스라엘이 황폐해져서 이스라엘의 영광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것을 안식일을 지키면 회복하게 하십니다. 말하자면 명예회복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회복되면 영화롭게 되고, 그렇게 되도록 가로막는 것을 하나님께서 제거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원수를 제거해서 자기 백성을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거룩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영광이입니다.
셋째, 야곱의 업으로 길러주시는 복입니다. 야곱의 업은 우선 야곱처럼 길러주신다는 뜻입니다. 그가 형에서를 피해서 도망할 때에 지팡이와 보따리 하나였는데, 돌아 올 때는 두 떼나 되었습니다.(창32:10)이걸 산업과 자녀의 복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 야곱의 업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말씀합니다. 역사가 이 구원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섭리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업으로 누리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야곱의 업은 궁국적으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안에 구원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안의 풍성한 구원의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이 축복은 지금도 증명되는 사실입니다. 주일이 있는 개인과 사회와 나라 어느 쪽이 좋습니까? 성수주일에 철저한 청교도를 따라 사업의 부흥이 네델란드에서 불란서로 영국으로, 미국으로 갔습니다. 이게 성수주일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되어도 성수 주일합시다.
그러면 이 축복이 약속된 성수주일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성수주일은 날, 시간을 성별하여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출31:13) 즉 성화의 길이요, 방법입니다. 마치 첫 열매를 구별하면 전체 밭이 거룩해지는 것 같 같이, 안식일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날로 지키면 나머지 6일이 함께 성별되어 거룩해져서 거룩한 시간을 사는 것입니다. 이게 십일조의 원리입니다. 열에 하나를 성별하면 나머지가 다 거룩해져서 거룩해진 물질을 먹고, 입고, 사용하니 삶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일 첫 날을 성별해서 하나님께 드리면 한주간이 거룩해집니다. 그래서 거룩해진 날 시간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음으로 성수주일 하셔서 시간을 거룩하게 하셔서, 거룩한 시간을 살고 쓰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성수주일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 배지이기 때문입니다.(출31:13-17,겔20:20) 왜 하루를 안식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표입니까? 우리는 하늘 백성, 천국백성입니다, 천국은 안식하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안식이 있어야 하나님의 백성이고 천국백성이며 이게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안식이 없으면 고백이 안 되는 것입니다. 성수주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입니다. 이 정체성을 고백하고, 주장하고, 지켜내는 것이 성수주일입니다. 그래서 주일 성수 때문에 순교도 한 것입니다. 죽어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고백, 이 기백, 이 신념이 분명한 성도가 세상을 이기고 해내는 사람이 되게 한다고 믿습니다.
셋째, 성수주일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고 산다는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은 일이 생존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일안하면 죽는 줄로 아셨습니다. 사람이 일을 하지 않으면 손해 같고 불안합니다. 이게 일반은총의 범주의 삶입니다. 이것은 삶이 노고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는 것이 일이 아닌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 주심에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시면 건축자의 수고가 헛되고,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으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입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삽니다. 주일성수는 이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신앙고백으로 하루를 일을 쉬고 예배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이 신앙을 고백해 나갈 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김제에 목사님 자녀들의 교육을 책임져주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가뭄이심해서 차례 물로 모를 내는데 주일에 걸렸습니다. 주일에 모내지 않으면 일 년 농사 폐농입니다. 그런데 모내지 않았습니다. 벼대신 수숙, 즉 조를 심었습니다. 벼와 조는 그 값이 비교가 안 됩니다. 다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조가 얼마나 잘 되었든지 낫이 아니라, 도끼를 가져갈 정도가 되었답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렇게 생존을 걸고 신앙고백을 하는 성도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안식년을 지키면 삼년 치를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즐거움이 되어 주시고, 그를 영화롭게 하시고, 야곱의 업으로 축복해서 높이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되게 하시고, 살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주일성수가 부담이 되고, 시험이 될 때에 이 믿음, 이 신앙고백으로 성수주일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시험이 될 때 이 믿음으로 성수주일하시면 하나님이 통과라고 하십니다. 이게 순교신앙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OK, 내가 책임진다! 내가 기쁘게 하리라, 내가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나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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