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위덕왕이
신라의 진흥왕의 시주로 지었었다는
천년고찰 선운사 뒤뜰 산기슭에는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수령 오백 년의 동백나무 3천 그루쯤이
늘 푸른 동백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선운사 동백을 두고
저 서정주는 이렇게 읊었습니다.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 보러 갔더니
동백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서정주의 이 "선운사 동구"는
선운사를 사람들에게
꼭 한 번 들르고 싶은 곳이 되게 했습니다.
섬진강 시인 천용택이 화답하여
"선운사 동백꽃"을 썼고
가수 송창식도 그의 노래 "선운사"에서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고 재치 있게 불렀으니요.
저도 그랬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발행한
"한국의 발견 한반도와 한국사람"
전라북도 편에서
이 선운사의 동백꽃을 두고
서정주가 노래한 선운사 동구 시비가
이 사찰 들목에 서있음을 알았습니다.
선운사 동백꽃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를 두고 시를 쓸 정도였는지
그 유명한 동백꽃이 꼭 한번 보고 싶었던 겁니다.
팔십년대 말 오월에 경노 행사로
교회 노인들을 모시고
처음 선운사를 찾았을 때
제일 먼저 이 서정주의 시비를 찾았습니다.
지금은 사찰 입구에 공원을 조성해서
좀 번잡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아주 고즈넉했습니다.
신록이 우거지는 도솔천 선운사 고랑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더덕향이 가득했으니요.
선운사 들목에서 다리를 건느지 않고
고창 쪽으로 나가는 길은
그냥 농로에 불과해서 차가 빠질까
조바심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후로 여러 번 이 선운사를 다녔습니다.
초가을에 만개하는 꽃무릇과
가을 단풍에 반해서입니다.
그러나 정작 선운사 동백꽃은
오늘에 이르도록
제겐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이 선운사 동백은 여타의 동백과 달리
개화기가 사순절과 고난주간인
3월 말에서 4월 초순이므로
일정이 도무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선운사 동백꽃을 이 봄에 드디어 찾았습니다.
고창 학원농장의 보리밭을 보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선운사로 달려왔건만
동백은 이미 철 지나 겨우 끝물이 남았는데
그것마저 성한 것들은 얼마 되지 않고
땅에 떨어진 동백꽃은 퇴색하여 마르는
흉한 꼴을 하고 있었지요.
동백은 세 번 핀다지요.
한 번은 허공의 동백 가지에서 붉게 피고
한 번은 땅 위에서 땅보다 붉게 피어나고
한 번은 그걸 보는 이의 눈동자와 가슴에서
붉게 붉게 핀답니다.
저는 가지의 동백도 보고 싶었지만
땅에서 핀 동백을 더 보고 싶어 했는데
저렇게 참담한 꼴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진실한 사랑"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꽃말의 질푸른 잎에 빨간 동백꽃!
이 동백이 그 붉은빛이 한창일 때
모가지째 뚝 뚝 떨어져
땅 위에서는 하늘을 향하여
피보다 붉게 피어나는 동백,
오르지 그 한 분을 사랑하여
끓는 피를 바친 순교자의 표상이지요.
전 땅에서 하늘을 향하여 빨갛게 피는
이 동백꽃을 두고
동백꽃 같은 순교자를 노래하고 싶어
그토록 선운사 동백을
꼭 한 번 보고자 했던 겁니다.
미당이 너무 일러 선운사 동백꽃을 볼 수 없었다면
시인이고 싶은 전 너무 늦어
선운사 동백꽃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으니
그와 난 피장파장인 셈입니다.
지난겨울의 기록적인 한파 때문인지
푸름을 잃고 붉은 빛을 한 동백잎과
불에 덴 듯 한 동백꽃이
피지 못한 사람을 보는 양 안쓰러웠습니다.
그래도 건강을 잃지 않은 푸른 동백숲은 좋았습니다.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아서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를 차용해서
이렇게 읊어보았습니다.
선운사 골짜기로
미당이 읊은 동백꽃 보러 천리길 왔건만
동백은 철 지나 떨어져 말랐고
끝물로 겨우 남은 것만
꽃보려던 내 소원 인양
시지 않고 남았습니다.
오백 년 수령에 푸른빛 잃지 않는
저 동백 숲처럼
늙지 않는 서정만
푸르게 푸르게 남았습니다.
그날 선운사 동백꽃은 제게 '희망과 소원은 언제나
현실보다 아름답다'는 걸 새삼 절감케 했지만
선운사 고랑의 고목 숲에 오르는 초록빛이
이 서운한 마음을 충분이 보상해 주고도 남았습니다.
연둣빛이 숲을 물들여가고
연두로 물든 숲은 흐르는 물에 초록물을 드리고
은빛으로 빛나는 여울에 초록이 비췬 시내 물은
내 마음을 연두로 물 드렸습니다.
전에 어머님을 모시고 이곳에 왔을 적에
좋아하지 않던 아들 녀석마저
이 초록으로 물드는 숲길은 좋았는지
이곳이 좋다고 했습니다.
가을 단풍이 곱고 화려해서 좋다면
이곳의 봄의 신록은 싱그럽고
향기로와서 좋았습니다.
연두로 마음까지 물들여 가는
향긋한 숲길을 걸어 나와
다리 건너 절 초입에 남은 동백꽃과
푸른 꽃무릇 잎 위에서 시들어가는
동백꽃과 이별했습니다.
그리고 서정주의 시비 앞에 서서
조용히 "선운사 동구"를 읊조리고는
아는 체하며 아들에게 미당이
이 시를 쓴 내력을 말해주고는
한 바탕 웃고 공원을 나와서
유명한 풍천장어집에서 저녁을 하곤
동백꽃 지는 선운사에서
제 육십 대의 마지막 봄을 여의고 왔습니다.
이제 제 남은 나그네 길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제 주인께서 저의 노년의 삶과 신앙을
떨어져도 기품 있는 동백꽃 같게 하시기를
기도하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그날 동백꽃 지는 선운사에서
저는 제 남은 나그네 길을 어찌 가야 할지
그 노년의 인생을 보고 온 셈입니다.
선운사 들목에서
어둑어둑 지는 빛에 출발해서
집에 도착하니 밤 열 시가 조금 넘고 있었습니다.
아! 참 길 좋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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