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6,12, 주일강론
본문 : 삼상7;5-14
말씀 : 라인권목사
샬롬입니다. 지난 화요일 코로나 백신을 접종했습니다. 열이 있어서 고생을 좀 했지만, 오늘 이렇게 강단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로나의 위험에서 안전 하려면 백신이라는 작은 아픔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 작은 아픔을 지불 하셔서 이 땅이 코로나에서 안전해지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주일은 ‘한나’라는 한 여성이 기도로 경험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셨는지를 말씀드렸는데,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공동체가 미스바에 모여서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침노한 원수 블레셋을 물리치게 하셔서, 미스바와 센 사이에 기념비를 세우고 “에벤에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고 이름했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를 바치기 위한 예배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게 예배는 기도를 목적으로 하는 예배가 있고, 예배는 큰 틀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바치는 것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5절을 봅시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고 합니다. 이 집회는 예배로 모이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 모임이라는 것은 6절의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라는 말씀과 9절의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라는 말씀이 입증합니다. 즉 제단을 쌓고, 거기에 물을 붓고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예배로 모인 겁니다.
그런데 이 예배는 목적이 있는 예배입니다. 5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즉 기도를 바치기 위해서 예배에 모여서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블레셋의 압제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게 되어서 블레셋의 손에서 건져내달라는 기원, 회개, 간구와 부르짖음을 예배로 올린 겁니다. 이게 모든 예배의 정신입니다. 우리가 주일예배로 모였을 때에, 먼저 구원이 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으로 나오지만 동시에 오늘과 내일에 요구되는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예배로 바치려고 나옵니다. 예배는 감사와 함께 이 기도를 드려서 오늘과 내일을 은혜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간구를 드리는 목적예배
그래서 예배에는 이 간구를 드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목적예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미스바 집회로 블레셋에서 독립하려는 은혜를 구하는 회개와 간구와 부르짖음을 바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일에 예배로 간구를 바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를 설립하면 설립 예배를 드립니다. 성도들이 사업을 시작하면 개업 예배를 드립니다. 자녀를 낳거나. 입대하거나 결혼하면 예배를 드립니다. 이걸 고사 지내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도 인간도 모르는 소치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어쩔 수없음으로 하나님만 보고, 그 은혜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요,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예배로 은혜를 구하게 하셨습니다. 그 예배의 간구로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경험하여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예배로 은혜를 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바칩니다. 간구를 드리는 목적예배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이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배로 드리는 기도는 이스라엘 공동체로 하여금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알게 하셨습니까?
간구를 드리는 예배로 알게 된 하나님
첫째, 예배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전사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경험케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여서 회개와 간구와 부르짖음을 예배로 바칠 때에, 하나님께서 침범하는 블레셋과 친히 싸우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이게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백성들을 치는 원수를 자기 자기 원수로 삼아 싸우시는 이스라엘의 전사가 되어주신 것입니다. 이게 “만군의 여호와” 즉 “야웨 쯔바오쯔”입니다. 쯔바오쯔는 군대 전사라는 뜻인데 이 용어가 하나님과, 천군 천사와 이스라엘 군대에도 쓰이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일체가 되어 자기 원수로 삼아 친히 싸우는 전사가 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이스라엘이 미스바의 예배로 드린 기도로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고 돌을 세운 겁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 이 하나님을 믿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삼상17:45)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이 경험이 개인적으로 여호와는 나의 방패요, 산성이요, 바위시라고 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은혜를 구할 때는 예배로 기도를 바칩시다. 예배로 간구를 바칩시다. 예배로 부르짖음을 바칩시다. 이 예배의 기도로 하나님을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싸우시는 전사로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예배로 드리는 기도는 신정국의 삶의 방식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삶의 방식을 배우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무엘과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은 참 어쳐구니 없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이자 위기를 느낀 블레셋이 침공해왔습니다. 적군이 쳐들어오고 있는데 기도나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나가 방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울이 사무엘이 오기전에 자기 손으로 제사를 드린 이유가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 되었습니까? 그 때에 하나님이 나섰습니다. 하나님이 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승리하여 에벤에셀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 신정국은 사는 것, 안위, 성패, 승패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는 것을 이로써 배운 겁니다. 은혜로 축복으로 된다. 하나님이 안위, 승리이시다. 이걸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걸 터득하고 깨달아야 진짜 하나님을 믿음으로 사는 이 자유하고 안식이 있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건 기도 응답으로 알게 됩니다, 이 은혜! 이 응답을 아는 사람만 예배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 은혜라는 하나님의 삶의 방식을 배우고 경험하고 깊게 알아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이 예배로 바친 기도가 이스라엘을 관념적인 신앙과 예배에서 벗어나 참된 신앙과 예배자가 되게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 섬기는 법을 알게 된 것입니다. 본문의 에벤에셀은 이스라엘의 영욕의 장소입니다. 에벤에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긴 치욕의 자리입니다.(삼상4:1) 그런데 지금 같은 장소에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대승을 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옵니까? 이게 관념적인 신앙과 실제적인 신앙의 차이입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도 백성들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상태에서 법궤만 모시면 승리할 줄 아는 관념적이며 미신적인 신앙이었을 때는 법궤가 있어도 패하고 법궤마저 빼앗겼습니다. 이후 블레셋의 압제로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은혜의 필요성을 절감한 겁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회개합니다. 간구와 부르짖음을 예배로 드렸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들을 받으시고, 법궤를 빼앗긴 그 치욕의 에벤에셀에서 블레셋을 파하게 하셨습니다.
이 응답이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아!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고 죄를 지으면 상대를 안 하시는구나! 그래서 법궤를 빼앗긴거구나! 이렇게 과거에 법궤를 빼앗긴 것이 관념적이고 미신적인 신앙 때문임을 깨닫고 실제로 회개하고 우상으로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는 예배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으로 산다! 이걸 깨닫고 이걸 기리고, 이걸 기념하기 위해서 돌을 세우고 에벤에셀이라 한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만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제 목회 초기에 고물을 취급하는 남편이 구속된 권찰이 있었습니다. 보석금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심방가서 기도하자고 하고 저는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권찰은 기도하려 오지 않습니다. 일주일 후에 전에 남편에게 돈을 빌려 갔다가 사라진 사람이 찾아와서 돈을 갚아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기도한 저는 아! 하나님의 역사다! 이렇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권찰은 그걸 모릅니다, 그러므로 기도합시다. 예배로 간구를 바칩시다. 이 응답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 즉 도우심을 경험합시다. 그래서 실제로 하나님을 믿고, 이 믿음으로 예배하고 기도합시다. 이로 예배와 기도로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능력이 되심을 더욱 깊이 알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신앙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전쟁도 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우리의 삶의 방식은 노고가 아니라 은혜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실제로 경험하여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기도 응답을 통해서입니다. 응답을 받았을 때에 ‘아! 하나님이 도우셨구나!’ 이렇게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실제로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배가 회개와 간구와 부르짖음을 바치는 예배가 되게 합시다. 이 예배와 기도로 오늘과 내일의 삶에“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 고 간증하고 기념비를 세우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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