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내 영혼의 수상록

행운의 신약 성도

아브라함-la 2013. 5. 14. 22:04

 

 

 

 

  예수님도 섭섭하시고 노여우실 때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이 듣지 않을뿐더러 주님의 권능을 바알세불을 힘입은 것이라고 비방하면서도 표적을 구할 때 그러셨습니다.“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시며 심판 날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 하게 될 것인데 그 까닭은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는데 너희는 솔로몬보다 더 큰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마12:42) 주님의 근심과 노여움이 이렇게 묻어나는 말씀도 드물지 않나 합니다.

 

 

이 말씀에서 주님이 언급하신 스바 여왕은 우리 신약성도들이 받은 복의 풍성함을 여실히 읽을 수 있게 하는 인물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 와서 그는 감격하여 이렇게 찬양했습니다.“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왕상10:8) 그녀는 솔로몬의 앞에서 언제든지 항상 솔로몬의 지혜를 들을 수 있는 솔로몬의 사람들은 축복 중에 축복을 받은 행운아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약성도들이야 말로 행운아들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스바의 여왕은 지혜를 들으려 땅 끝에서 불원천리하고 왔지만 복음은 우리 입과 마음에 있습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말을 들으려 왔으나 우리는 솔로몬과는 비교가 안 되는 주님께 듣습니다. 스바 여왕은 단 한번 들을 수 있었으나 우리는 항상 들을 수 있습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왔고 성경이 우리말로 번역 되어 누구나 읽을 수가 있고 사도의 사역을 계승한 사역자들이 항상 우리 곁에서 말씀할 뿐 아니라 진리의 성령께서 친히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운의 신약성도”입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이 놀라운 축복을 축복으로 알지 못해서 자신이 스바 여왕도 부러워할 행운아라는 감격을 누리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왜 이런 비극이 있을까요? 그게 아일러니 하게도 “항상”들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지혜의 말을 항상 듣기 때문에 솔로몬의 말을 듣는 것이 일상이 되어 귀한 줄을 모른 솔로몬의 신하들은 스바 여왕의 감격에 비로소 자기들의 행운을 깨달았을 겁니다. 유대인들도 이런 이유로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고 주님께 들을 수 있는 걸 행운으로 여기지 못했습니다.

 

 

“항상”은“일상”이 되게 합니다. 일단 “일상적”이 되면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것에 대한 감격을 잃어버립니다. 초신자 때에 크게 은혜 받다가 신앙 년조가 깊어지고 직분이 커질수록 은혜 받지 못하는 것이 비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건 아주 심각한 영적인 병입니다. 믿음은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며, 일상에서 귀중성을 깨닫고 감사와 감격을 느끼는 겁니다. 그러므로 항상 듣는 말씀에서 감격을 느끼는 이가 진정한 신약성도라고 믿습니다. 옥토와 같이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항상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져 있는 이가 참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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