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강 해

오바댜가 본 예수의 나라

아브라함-la 2023. 2. 5. 21:08

023,2,5 주일

본문 : 옵1:15-21

말씀 : 라인권목사

      엄동에 입춘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힘들고 어려운 일속에 축복의 봄을 예비해 두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오바댜서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선지자 오바댜는 이 짧은 성경 외에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는 선지자입니다. 본분을 보면 오바댜는 주전 586년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 되는 참상을 목도한 선지자입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불타고 약탈당했습니다. 부녀자들이 욕을 당하고, 어린아이들이 메어침을 당하고, 장정들은 칼에 죽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때에 형제의 나라인 에돔이 이를 기뻐했습니다. 환호하며 바벨론을 도와 유다를 점령하고 약탈을 감행했습니다.(10-14)

 

이스라엘과 에돔의 애증 관계

이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원한이 있었지요. 이 에서의 자손 에돔은 사해 남쪽에서 아카바만에 이르는 사막과 산악지역을 차지했습니다, 이곳은 구리 광산과 애굽과 북방의 제국들을 잇는 무역로가 지나는 트랜스 요르단을 장악하는 곳이라서 막대한 이득이 있는 곳입니다. 여기서 에돔은 이스라엘 보다 먼저 부강한 왕국을 이루었습니다. 이 에돔이 야곱에 대한 원한 때문에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길을 막았고, 계속하여 옆구리의 가시 노릇을 하다가, 다윗왕 때에 이르러 이스라엘에 복속이 되었습니다. 솔로몬 이후 유다가 약해지면 반역을 하다가 마침내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 되는 형제의 환난에 기뻐하며 유다를 점령하고 약탈을 한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의 애증이 원한과 갈등의 역사 가 되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이 아닌 형제이기 때문에 더 섭섭하고, 더 원수가 됩겁니다. 선지자 오바댜가 이 못 볼 꼴을 본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섭섭한지 예레미야는 애가서에서 이 에돔의 죄를 규탄하고, 에스겔서도 규탄하고 있습니다. 오바댜 선지자도 분노했습니다, 에돔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기를 원했습니다. 이 에돔은 사탄적이기 때문입니다. 후일 헤롯이 이 이두메인이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리고 이꼴에 선자자는 가슴 아팠을 겁니다. 긴 역사에서 형제가 서로 원수로 알고 증오하며 싸우는 것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나 모든 만국이 여호와를 경외하여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는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올까 갈망하고 사모했습니다,

 

오바댜의 묵시

하나님은 이 오바댜에게 환상 중에 에돔의 죄을 심판하시는 날을 보이셨습니다. 본서의 오바댜의 예언 대로 에돔은 저 유명한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티안 족에게 망하고 유대 광야 쪽으로 밀려나 이두메인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바댜에게 에돔에 심판이 임하는 그날에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날에 에돔의 근거지들이 야곱자손의 것이 됩니다.(19,20) 그날은 에돔 만이 아닌 시온산에서 “만국을 벌할 날”입니다. 만국을 벌하여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는 것을 보았습니다.(15,21) 이 날을 구약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합니다. 오바댜가 이 날과 그날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본 것입니다. 오바댜 선지자가 본 이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오바댜가 본 예수의 나라

첫째 여호와의 날은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구속을 이루신 구원의 날이자, 최종적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날은 원수에게는 심판이 선민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출애굽과 바벨론 포로와 귀환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따라서 이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날이며, 최종적으로 심판주로 다시 오셔서 세상에 심판을 당신의 백성에게는 구원을 베푸시는 날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 여호와의 큰 날이라고 오순절에 적용했습니다.(2:20,22) 그리고 주님께서도 이날을 재림에 적용하셨습니다.(마24:29-31) 에돔이 멸망한 유다를 탈취하는 날에 오바댜가 이 예수를 보고 이 심판과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게 선자자의 소원이요, 비전이요, 기도가 되었습니다. 

 

둘째, 만국에 이 심판이 행해지는 곳이 시온산이기 때문입니다.(21) 이 시온산은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하게 실현된 예루살렘입니다. 이 새 예루살렘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계시록은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새 예루살렘이라고 하셨습니다, (계21:1,2)이 시온산에 서신 이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계 14:1)“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시온에 세웠다는 다윗의 예언의 성취입니다.(시 2:6)예루살렘 최후의 날, 에돔이 박수를 치고 있을 때에 오바댜가 이 장차 시온산에 서서 만국을 심판하실 어린양 예수를 본 것입니다. 이 예수가 선지자의 소원이요, 바람이요 기도였습니다.

 

셋째, 어린양 예수가 시온 산에 서는 그날 영적인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만국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하나님께 속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구속과 성령의 통치로 이루어진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는 날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는 날 만국에 천국이 이 루져서 그 나라를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본 겁니다.(고전 15:24)이 나라는 사랑의 나라요, 화평과 평화의 나라요, 영원한 기쁨과 의의 나라입니다. 계20장, 21장은 이 나라를 찬란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선민이 바벨론에 포로 되는 멸망의 날, 형제 에돔이 환난 당하는 유다를 탈취하는 날에 선지자가 이 예수와 예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이게 선지자의 꿈이요 비전이요, 이게 오바댜의 기도였습니다.

 

선지자의 기도가 우리 기도가 되어야

이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에돔과 이스라엘처럼 6,25의 참상을 겪고도 서로 증오하고 있습니다. 북은 핵무장을 하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하고, 남은 압도적인 전쟁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좌니 우니, 종북이니 하며 우리 사회에 분열과 증오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치는 이걸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추기고 국민들은 여기에 놀아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교회는 이런 증오를 하나님을 위한 일로 여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래서는 언제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이 올는지 아득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촌이 땅사면 배 아프고, 형제가 원수로 지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지자 오바댜처럼 ”나라가 임하시오며 “ 기도해야 합니다. 선지자의 소원과 비전이 기도가 우리의 소원과 비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날 시온산에 서시는 예수님은 이 사랑과 평화의 나라를 구하는 우리의 이 기도를 어떻게 이루어 주십니까?

 

”나라에 임하시오며 “ 어떻게 이루시나

첫째, 예수는 어린양으로 이 나라를 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이루시는 주이십니다. 여호와의 날에 시온 산에 서신 분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어린 양“이라고 하셨습니다, (계 14:1)이 어린양은 고난당하신 어린양이십니다. 이 어린양은 피 흘리신 어린양이십니다. 이 어린양은 죽으신 양이시며 죽었다가가 다시 사신 어린양이십니다. 여호와의 날은 이 어린양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이요, 부활하여 성령을 보내시는 날이요, 그날에 어린양의 피로 구원이 임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신 날을 요엘의 예언이 성취된 날을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라고 하셨고, 이 날이 후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받는다고 하신 것입니다.(행 2:20,21)

 

어린양 예수는 양 같은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해

이 날, 다윗의 장막을 일으키시는 날에 에돔의 남은 자가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합니다.(암9:12) 에돔과 야곱이 한 주를 섬기는 한 백성이 됩니다. 어린양의 피, 십자가의 사랑의 사랑으로 거듭난 사람은 모든 사람과 형제가 되게 하고 원수도 사랑하는 예수님 같은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어린양의 피는 예수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예수님처럼 원수를 축복합니다. 스데반이 그랬습니다. 프렌치스코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게 어린양 예수의 피의 능력입니다. 어린양 예수는 이 사랑과 평화의 사람을 만들어 화목을 이루십니다. 이 사람이 개인 사이에 화목을 이루고, 민족을 화목하게 하고 나라와 나라를 싸음을 그치고 화목하게 합니다. 이 사람이 가는 곳에 이 땅에 평화의 나라가 임합니다. 우리가 착각해선 안됩니다. 이념과 체제, 종교가 평화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공평한 세상을 만들자는 공산주의가 실패하는 것은 이 사람이 안 돼서입니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재능을 펴는 가장 좋은 이념이며 제도이나 실패하는 것은 이 사람이 되지 못해서입니다.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1572년 성 바돌로매 축일에 일어난 7만의 위그노 대학살을 축하하는 떼 데움이라는 성가를 부르게 하고, 기념메달을 주조했습니다. 꼭 예수님을 십자가로 보낸 대제사장 같습니다.

 

이게 예수께서 칼과 창이 아닌 십자가와 말씀과 성령으로 한 이유입니다. 종교나 이념이나 방법이 평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 예수님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북의 증오와 형제간의 증오에서 사랑과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하는 어린양 예수를 봅시다. 이 어린양 예수의 피의 은혜에 사로잡혀 사랑과 평화의 사신으로 분단 조국에 섭시다. 프렌치스코의 기도처럼 평화의 도구가 됩시다. 우리가 이 사람이 되고 이 사람으로 살 때에 주님은 이 사람으로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 원수 된 형제와 이웃에 평화의 나라가 임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 어린양 예수는 구원받은 당신의 백성들을 불과 불꽃이 되게 하셔서 죄와 죄악 된 세상을 불사르게 하시므로 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하십니다. 18절을 보세요. 야곱 족속은 불이 되고, 요셉 족속은 불꽃이 되게 하십니다. 이 불이 지푸라기처럼 에돔을 사르게 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어린양의 피는 한 사람을 순한 양 같이 되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자가 되게 한다는 겁니다. 이 사람은 사랑과 화평의 사람만이 아니라, 의의 불입니다. 정의 불꽃이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미워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의 열심히 미워하는 자입니다. 사회적 불의를 하나님의 열심히 미워하고, 사탄과 사탄의 일을 미워하는 자입니다.

 

이 불이 루터에게 붙어 비텐베그대학 성당 문에 95개 조항을 붙이게 했습니다. 이 불이 월버포스로 하여금 평생을 노예무역 매매금지와 싸우게 했습니다. 이 불이 링컨과 미국인들이 자기들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는 인종의 인권을 위하여 전쟁을 하는 나라가 되게 했습니다. 어린양 예수는 이 불로 이 땅의 죄를 멸하십니다. 이 불로 불의를 멸하십니다. 이 불로 악을 멸하고 의와 희락과 평강의 나라를 오게 합니다. 예수는 이 불을 던지러 오셨습니다, 예수는 이 불이 붙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불이 우리 마음에 붓기를 기도합시다. 자유, 인권 평등은 공짜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은혜로 성도는 이 정의 불꽃인 줄로 믿습니다. 불의와 악을 태우고 죄와 사탄의 역사를 태우는 불이 되어 예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어린 양 예수는 시온 산에 임하셔서 심판하시므로 사랑과 의와 평화의 나라를 우리에게 이루어 주십니다. 이 예수님의 재림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걸 확신하고 소원할 때에 우리는 세상의 불의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이 분이 시온 산에 서실 것입니다. 그날에 철장으로 심판하실 겁니다. 이게 계시록의 목적입니다. 시온 산에 서실 주님을 보고 박해의 불의 중에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걸 믿을 때에 우리는 인위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됩니다. 종교개혁 때 재 세례파가 농민혁명을 이르킨 것은 인위적 열정주의로 하나님의 심판을 사람이 하려고 한 것입니다. 동천리 시절 부근 침례교회 집사라는 분이 우리 교회 주보를 보고 전화를 했다며 자기네 교회 목사를 제게 고발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께 이 일로 하나님께 기도했느냐고 물었더니, 이분 제게 이랬습니다. ”기도 한다고 될까요? 이렇게 하나님의 개입을 믿지 못합니다,그래서 하나님이 하실 심판을 자기가 하려는 겁니다. 이게 분열과 싸움을 이르킵니다. 실제로 재림을 믿으면 주님이 하실 것을 기다립니다. 이 믿음이 다윗 처럼 자연스럽게 은혜로 이 땅에 하나님의 의를 세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실 재림과 심판을 믿을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고 승리를 확신합니다. 세상은 논외로 치고 교회가 화평치 못한 형편입니다.  하물며 이 세상이겠습니까?  이게 재림을 사모케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의를 위해서 싸워도 이 땅에서 완전한 의와 평화와 사랑의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린양 예수가 시온 산에 서는 날 비로소 그 나라가 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악하고, 교회들이 사랑을 잃을 때에 재림 예수를 사모합니다. 그 천국을 기다립니다. 이 어린양 예수가 약속대로 다시 오셔서 시온산에서 심판하여 새 하늘 새 땅이 임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예수로 충분합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당신의 피로 당산 같은 사람이 되게 하셔서 이 땅에 사랑과 평화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이 예수의 마음, 예수님을 닮기를 소원합시다. 이 사람이면 형제간에 화평을 이루기에 충분합니다. 이 사람이면 야곱과 에서 같은 이 민족이 화해하고 통일을 이루게 할 줄로 믿습니다, 이 사람면 전쟁이 그칠 날 없는 이 세상에 천국이 임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어린양 예수께서 시온 산에 서시는 날 새 하늘 새 땅이 임하는 것을 보게 하시고, 거기서 새 노래로 어린양을 찬양하는 날을 맞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