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7,16, 주일
본문 : 말3:7-12
말씀 : 라인권목사
하나님의 사중계획안에 있음을 축하드립니다. 지난 해에 창세기부터 성경의 한 책에서 하나씩만 예수님과 그 구원을 만나는 강해를 해왔는데, 오늘 구약의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에 왔습니다. 이 말라기서는 성전을 재건하고 거의 한 세기가 되려는 때의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합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성전 건축을 중단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보내서 재건하는 성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여 이전 영광보다 더하게 하신다는 격려하게 하셨습니다.(학 2:8) 이 격려로 일어나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그러나 약속한 여호와의 영광은 성전을 재건하고 거의 한 세기가 되도록 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낙심케 했습니다. 이렇게 낙심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낙심할 때 일어나는 영적 현상
낙심할 때 제일 먼저 일어나는 현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겁니다.(1:2) 신앙이 회의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예배가 번폐로 여겨집니다.(1:13) 더러운 떡과 눈먼 것을 드립니다. 예배가 형식만 있게 된 겁니다. 이것이 언약의 말씀을 떠나서 사회적 불의와 이혼이 성행하게 됩니다.(2:14)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헌물을 폐지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폐하니 성전예배를 유지 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때에 말라기 선지자가 임하여 회개하여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언약의 복을 주신다는 것이 오늘의 말씀의 맥락입니다.
돌아보면 십일조는 언제나 이스라엘에게 시험이 되었습니다. 조상적부터 이 규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7) 온전한 십일조가 시행된 적이 드뭅니다. 히스기야의 개혁 때에 십일조가 회복 된 정도입니다.(대하 31:5-8) 이렇게 물질은 시험이 됩니다. 아담이 받은 첫 시험도 물질이고, 예수님께 대한 사탄의 첫 시험도 물질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약 성도들에게도 여전히 십일조가 시험됩니다. 없어도 시험이고 있어도 시험이 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이 십일조를 온전케 해야 하고, 이 시험에서 십일조를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시험이 되는 십일조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시험이 되는 십일조를 온전케 하는 예수
제2성전에 약속한 여호와의 영광과 만국의 보배는 예수입니다. 성전을 재건한 이스라엘이 낙심하여 십일조가 시험이 된 것은 이 예수를 보지 못해서입니다, 그들은 예수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솔로몬의 성전에 했던 쉐키나로 여기고, 찬지를 진동시킬 만국의 보배이신 예수를 이스라엘의 현세적 번영으로 알아서 낙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2 성전에 임할 만국의 보배와 여호와 영광은 예수님이십니다. 말라기는 그 성전에 임할 하나님의 영광이신 예수를 맞도록 회개하여 십일조와 헌물을 회복하여 성전예배와 이스라엘 공동체를 유지하라는 겁니다. 이 예수를 보아야 십일조가 온전해집니다. 예수가 율법의 완성이라는 점에서도 예수께서 십일조의 완성이시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십일조가 온전해지게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십일조의 시험에서 구원이 되시며, 십일조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먼저 십일조는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신 14:23) 이 십일조의 목적이 예수님으로 온전해졌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농장에서 사과가 처음 익은 것을 손자가 발견했습니다. 손자는 자기 아버지에 알리고, 아버지는 자기 아버지 김용기 장로에게 알려서 온 가족이 모여 그해 첫 열매를 감사했답니다. 기쁜 일에 먼저 부모를 생각한 겁니다. 이게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수입이 있으면 이게 어디서 어떻게 왔나? 하나님께로다, 이렇게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겁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이 십일조의 목적이 예수님으로 완전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아들 예수를 본 것이 아버지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요 14:9) 영생은 아들과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요 17:3)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물을 것이 없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요 16:13,23)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십니다.(롬 8:15) 예수님의 구원으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타락한 마음이 새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본성이 되게 하셨습니다.(렘 31:33) 이 사람은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게 됩니다.(고전 10:31) 이렇게 예수님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성도가 하나님이 받고 싶어하시는 십일조요, 온전한 십일조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성도가 인색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계산하고 따지겠습니까? 아직도 십일조가 시험이 되면 이 예수를 만나십시요, 이 예수로 수입의 십에 일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온전한 십일조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예수님에게서 하나가 아닌 전부가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사실 십일조는 열에 하나만 아니라,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전부를 드린다 표로 열에 하나를 하나님의 것으로 성별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로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고, 은혜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게 십일조의 신앙이며 정신입니다. 이스라엘이 이걸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조상적 부터 십일조가 시험이 된 것은 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할 만큼 하나님이 감격이 되지 못해서입니다. 조상의 하나님이지 오늘 나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하나님이지 오늘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오늘의 구원으로 믿지 못한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인색한 마음이 든 것입니다. 이게 이스라엘에 계속해서 십일조에 넘어진 이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피로 사셨습니다.(고전 6:20) 생명도, 소유도, 재능도 다 주의 것이 되게 했습니다.(롬 14:7,8)"내 생명도 주예수께 바칩니다" 이렇게 자기 전부를 드린다는 표로 인간의 수고와 노력의 결정인 돈을 예물로 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물은 이 자신입니다.(고후 8:5)이 예수의 은혜가 초대교회로 하여금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이가 없게 했습니다.(행 4:32) 예수로 열에 하나가 아니라 전부가 다 온전히 주의 것이 된 것입니다. 이게 신약성도의 특징입니다. 이게 십일조의 완성이지요. 이게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전부가 다 주의 것이 되게 예수를 만난 사람은 행운입니다. 그에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만나시되 전부가 주의 것이 된 온전한 십일조 성도가 되도록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예수님이 성화라는 십일조의 구원목적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십일조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성화를 목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처음 익은 곡식이 거룩하면 떡덩이가 거룩합니다. 이렇게 열에 하나를 드리면 전부가 거룩해져서 거룩한 양식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양식을 먹으니 우선 의식이 경건해 집니다. 삶도 거룩하게 삽니다. 이 구원이 십일조의 목적입니다. 이걸 레위기가 강조합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하시려고 먼저 제사장과 제물을 구별합니다. 그리고 먹고 입는 것도 구별하고, 시간을 구별케 하셨습니다. 한 주간은 안식일로 거룩해지고, 일 년은 삼대절기로, 안식년은 희년으로 성화가 절정을 이룹니다. 이 맨 마지막에 물질을 구별하는 것이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이걸 변경하거나 바꾸지 못하게 하셨습니다.(레 27:30-34) 사람은 물질로 삽니다, 그래서 물질이 성화되어야 거룩해집니다. 십일조로 소득한 물질 전부가 거룩해졌습니다. 밥도 국도 김치도 거룩해졌습니다. 이 거룩한 양식을 먹으니 삶이 거룩해져서 하나님을 닮는 겁니다.
이 거룩함이 예수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단번에 드려서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단번에 사죄, 칭의 새생명으로 자녀되게 하여 성령의 처음 익은 거룩한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구원하셨습니다.(롬 8:23,29)예수는 하나님을 닮는 구원의 본이십니다.(벧전 2:21)예수님 처럼 되는 이 소망을 가진 자는 아들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요일 3:2,3)이렇게 예수는 한 사람을 하나님처럼 되는 온전한 십일조가 성도가 되게 하십니다. 물질만 성별하는 십일조만이 아닌 십일조가 목적으로 하는 아들의 형상을 이루는 온전한 십일조 를 드립시다. 이 온전한 십일조 성도들이 시장에 가면 ‘저기 은혜로교회 교인 오신다.’고 하는 진정한 부흥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넷째,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는 십일조의 목적이 온전해졌습니다. 십일조의 용도는 성전 예배와 이스라엘 공동체의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온전한 십일조가 있을 때에 성전 예배가 부흥하고 예배가 부흥하면 이스라엘이 흥하고, 예배가 쇠고하고, 십일조로 사회적 약자를 사랑하게 하신 하나님의 공의가 쇠하면 이스라엘이 쇠한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나의 창고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신 뜻입니다. 이 온전하다는 말은 영어로 all, 즉 전부입니다. 이 전부라는 말은 열에 하나의 전부도 뜻하지만, 예배를 위해서 드리는 십일조만 아니라, 종별적으로 가난한 자를 위해서 드리는 매삼년의 십일조도 드리라는 겁니다.
이 십일조의 용도는 신약에서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교회가 신령한 복음을 준 예루살렘 본부 교회의 어려움을 물질로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셨고, (롬 15:25,27) 사도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사역을 위하여 드리는 것을 향기로운 예물이라고 하셨습니다.(고후 11:8,9, 빌 4:14-19)십일조의 용도가 그대로 신약교회에 적용되었습니다. 심지어 사도바울은 십일조의 축복의 신학까지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인색함이 아니라 즐겨내는 자를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고후 9:7)봉헌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충성의 척도라고 한 겁니다. ”하나님이 능히 너희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빌 4:19절은 ”그 영광 가운데 풍성함으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연보를 은혜, 복이라 했습니다.(고후 9:5) 그러므로 나의 수표장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역은 빈곤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드림의 의무를 예수님이 기쁨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 사랑을 아는 이는 예수님과 그 나라를 위하여 아끼지 않습니다. 실제로 초대교회는 자기 재물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소유를 교회의 필요에 쓰도록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행 4:33) 예수의 은혜로 마케도니아 교회들은 많은 환난 중에서도 기쁨으로 자원하여 넘치게 했습니다.(고후 8:1-5 )이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영광에 동참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십일조의 목적이 온전해졌습니다,
사실 교회 안의 은혜받은 성도들은 거개가 십일조 이상을 합니다. 각종 헌금만 해도 십일조 될 겁니다. 심지어 건축헌금도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많은 수의 교회가 아니어도 이점에서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없습니다. 다 십일조 이상을 하십니다. 우리 장로님은 다른 교회 어려운 사역자를 돕기도 하십니다. 이런 교회는 작아도 큰 교회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세상 사람이 "경끼"하는 물질을 십일조 이상으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예수님과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라는 전부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은혜로 우리도 전부로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재물을 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내 생명도 드리기를 소원하는 성도가 된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예물에 대하여는 사도 바울이 마케도니아 교회들에 그래듯이 저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 교회에 이 예수의 은혜가 더욱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이 복된 드림이 더 받으심직하게 하려고 이 은혜를 권합니다. 제 중심을 다해서 이 은혜로 즐겨내는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셔서 하늘 문을 여셔서 쌓을 곳이 없는 복을 주셔서 모든 일에 넉넉하게 하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시고, (고후 9:8) 그 영광 가운데 풍성함으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빌 4:19)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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